2021 세종포럼 제6차 세미나-사진가 이준표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0 03: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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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사진으로 말하다’
매그넘 작가들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 하지만 때론 한 장의 사진을 설명하는 데 천 마디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일시 : 2021년 10월 6일(수) 오후 5시
장소 : 미디어시시비비 스튜디오

 

발제자 : 이준표(사진가)

EBS 및 스카이라이프 외주 제작 PD

동강 사진박물관 전시

평창올림픽 사진전 입상

서울시 건축사진전 입상

 

프롤로그:

지난 시절의 사진 한 장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의 표정이며 옷차림에서 삶을 읽어낼 수도 있고, 배경에 나오는 그 옛날 물건은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때론 이 물건들은 귀중한 사료가 되기도 합니다. 추억을 덤으로 주는 옛 사진은 숱한 사연을 품은 이야기 덩어리가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서양인이 카메라에 담은 최초 조선인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베아토의 사진에는 당시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졌던 멸시와 조롱, 우월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 1832-1909129)는 이탈리아 태생의 영국 사진작가이다. 이후 영어식으로 펠릭스 비토(Felix Beato)라고 자칭했다. 1863년부터 21년간 요코하마에서 살았다. 동아시아의 사진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작가 중 한 명이며, 또한 초기의 종군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1871,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821일 미국 상선이 대동강에서 소각된 사건)의 보복을 위해 미국 해군은 조선에 원정하여 신미양요를 일으켰다. 베아토는 그곳에서도 종군 사진사로 있었다. 그때 촬영된 사진은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 187199일자를 통해 보도되었으며, 확인되는 한 조선 최초의 사진이었다.

 

 

#1 CG: 한국 최초의 사진

 

 

상투를 튼 조선인이 맥주병을 한 아름 끌어안고 미소 짓고 있습니다. 두 팔 아래에는 미국 주간지가 있고, 그 위로 담뱃대가 가슴을 가로질러 있습니다. 1871년 미군 함대가 강화도를 무력 침략한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함에 동승한 종군 사진가인 펠리체 베아토가 찍은 사진입니다.

 

조선의 상투는 중국의 변발, 일본의 존마게와 함께 동양의 비위생을 대표하는 코드였습니다. 담뱃대 역시 서양인들에게는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비위생적이고 게으른 조선인이 미 해군이 버린 빈 맥주병과 영자신문을 주워 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서양이 우위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서양 사진사에서 최초의 전쟁사진가로 통하는 그는 신미양요의 전 과정을 찍은 사진 50장을 묶어 사진첩을 펴냈습니다. 이 사진첩은 서양인이 이 땅에서 촬영한 최초의 한국인 사진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신미양요 당시 약탈한 수자기(帥字旗)’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미군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또 다른 양상의 베아토 사진은 수습되지 않은 조선군의 시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상품화된 전쟁 사진 속에서 정교하게 연출된 구경거리였습니다.

 

 

이 사진은 수습되지 않은 조선군 전사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 시신은 전투 개시 첫날, 초지돈대(강화 5진의 하나. 길상면 초지리. 사적 제225)에서 베아토에 의해 찍혔습니다.

 

이틀 간 벌어진 광성보 전투를 기록한 사진에는 시신의 모습을 재배치하여 연출한 흔적이 보입니다. 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이 두 장 있는데, 한 장에서는 시신이 모로 누워있으나 다른 한 장에서는 시신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습니다. 시신의 얼굴을 보이게 해 전쟁의 참혹성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패전국에 굴욕감을 배가하기 위한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베아토는 1857년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 항쟁의 현장을 촬영하며

영국군에 패해 죽은 반란군의 유골들을 마당에 흩뿌려 사진을 연출한 전력이 있습니다.

 

 

 

#2. CG: 조선을 장승을 세계에 알린 사진

 

다음은 구한말에 독일린 헤르만 산더가 찍은 사진입니다.

 

개항 이후 한국에 들어온 서양인들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휘말린 제국의 현실을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이 땅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타자의 눈으로 완성한 기록을 통해 조선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06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여정 중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을 조사하고 있는 헤르만 산더를 찍은 사진입니다.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나쁜 영의 팻말 곁에서라는 긴 제목을 가진 사진이기도 합니다.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잔더(Hermann Sander 18681945)

일본 주재 독일대사관 무관이었다. 1906년과 1907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서울, 부산은 물론 오지인 함경북도 성진과 길주를 여행하며 당시 풍속과 일상을 담은 사진을 찍고 풍속화를 모았다.

 

헤르만 산더는 보병 중위 신분으로 1905년 주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도교에서 러일전쟁의 주요 격전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 관련 자료와 여행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조선 방문에서 한양과 북한산성, 수원, 원산, 성진, 길주 등을 여행하면서 한국에 관한 많은 자료를 남겼습니다.

 

 

특히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승 사진입니다.

사진은 여행의 동반자로 고용한 일본인 사진가 나카노가 찍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수집한 사진 335매가 여행 일정 순으로 정리되어 사진첩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구한말 우리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사진은 촬영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설명까지 담고 있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우리 문화를 새롭게 접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산더가 1907년 찍은 수원향교 사진입니다.

 

 

19073월 촬영한 사진 중에는 전당포 앞 길거리에서 갓을 수선하는 갓 쓴 노인의 모습.

 

 

뾰족한 북악산 아래 광화문과 그 앞의 널찍한 비포장 거리가 담겨 지금의 광화문과 크게 비교됩니다.

 

 

그해 9월 서울에서 북한산으로 가는 첫 고개인 무악재의 옛 모습도 생생합니다. 지게를 지고 고개를 오르는 남자 저 뒤로 등짐을 진 소도 보입니다. 무악재로 추측되는 고갯길입니다.

 

 

노쇠와 모자를 파는 가게

 

 

널뛰기

 

 

상가

 

 

흙담 쌓기

 

1906년부터 1907년은 극동아시아 전체에 있어서 격변과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의 사진 속에는 100년 전 그 지역에서 격변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풍속의 역사적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노인과 당나귀

 

 

제재소

 

 

#3 CG: 매그넘(Magnum)이 본 한국

 

매그넘이 한국을 기록했습니다. 프레즌트 코리아라는 이름 아래, 2006년 한겨레 창간 20돌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작업에는 매그넘의 사진가 20명이 참여했습니다.

1년 반 동안 한국의 풍경과 종교, 의식, 교육 등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매그넘은 로버트 카파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 로저 4명이 1947년 크고 새로운 도전이라는 의미로 창립했습니다.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도사진가들로 구성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이다.

 '매그넘''커다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창립 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라는 기치를 내걸었으며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해왔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의 사진가들이 1947년에 설립했으며, 속한 회원들의 작품저작권을 지키고 사진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설립 취지였다. 또 사진작품들을 언론사에 판매하는 목적이 있는 사진통신사이기도 했다. 언론사의 전속 사진가와 다르게 자유로운 자신의 입장과 방향을 추구할 수 있어 작품에서도 자신들의 개성과 특징이 잘 드러났다. 매그넘은 까다로운 회원 가입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인도, 대만, 이란이 회원을 배출

작가들은 평균 보름 정도 한국에 머물렀으며, 짧은 작업 기간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들은 독자들이 매그넘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국이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느끼기를, 그리고 한국인들과는 다른 매그넘의 시각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CG: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 하지만 때론 한 장의 사진을 설명하는 데 천 마디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매그넘 작가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아주 공손하고 친근감이 넘쳤고, 변화에 민감하며 미국식을 좋아하면서도 자신들의 뿌리를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건강하고 좋은 외모를 가지고 안 다닌 곳이 없는 존재라고 평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종교사진 전문가인 아바스(Abbas)는 그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을 한국의 종교 사진으로 채웠습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부터 원불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와 무속신앙 현장들을 담았습니다.

 

CG: “한국에는 많은 신이 있다. 기대가 되는 작업이다.”

매그넘의 아바스가 던진 말입니다.

 

 

포항 한동대. 점심시간에 기도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쌍계사. 스님들과 신도들이 머무는 수풀이 우거진 불교 사원의 모습

 

해인사 호국팔만대장경 법회. 수백 년 된 불경 목판을 머리에 이고 옮기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입니다.

 

 

서울. 여성 무당이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의 죽은 어머니와 접신 중인 모습입니다.

 

서울 성균관. 전통 복식을 갖춘 은퇴한 유학자의 모습입니다.

 

 

서울 약현성당. 부활절 미사를 보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부활절 예배 모습입니다.

 

 

아바스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주요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토착종교나 샤머니즘까지 폭넓게 다뤘습니다. “지루한 기독교나 가톨릭보다 무속신앙이 훨씬 흥미롭고 포토제닉했다는 아바스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무속신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한 서양 사진사가 조선을 왜곡시킨 맥주병과 상투 그리고 시신 재배치 사건, 한 독일인의 눈에 비친 정겨운 구한말 조선 민초들의 모습과 풍습들, 21세기 매그넘 코리아에 담긴 한국 청소년들의 역동적 모습과 다양한 종교적 의식까지, 사진을 통해 서양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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