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세종포럼] 한국 외교 이대로 괜찮은가?-[下]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1-05-29 03: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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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2021세종포럼 제1차 세미나] -2021.05.20

[제3부] : 일본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미워한다
[제4부] : 러시아를 여전히 경시한다
[제5부] : 국제관계를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 2021세종포럼 제1차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는 박병환 유라시아전략문제연구소장

 

한국 외교 이대로 괜찮은가? -[下]

[1] : 중국에 휘둘리고 있다

[2] : 미국을 서운하게 하고 있다

[3] : 일본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미워한다

[4] : 러시아를 여전히 경시한다

[5] : 국제관계를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 편에서 이어짐

 

 

 

 

[3] 일본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미워한다

 

우리는 일제 치하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정부 또는 기업이 배상과 사죄를 하지 않는다고 일본을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국가 간 관계에서 한 나라가 상대방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그에 따라 배상한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집권화된 국가 내부에서도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 국가의 사법기관이 피해자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 국가는 그래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데 분권화되어 있는 국제사회에서는 주권국가에 대한 강제적인 사법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는 주장이 있다. ICJ 법관들의 다수는 과거 식민제국주의 국가 출신들이어서 법관 개인적으로 공감한다고 해도 한국인들이 희망하거나 기대하는 판결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징용 배상 문제는 배경보다는 법리적 측면만 따지게 되므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징용 배상 문제가 일단 정리된 이상 피해자들이 기대하는 판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사과에 대해 미온적인 또는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독일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독일 지도자로서 나치 독일의 죄과에 대해 참회하는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독일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 지도자들이 전면적으로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후 독일의 지도층은 나치 독일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던 군국주의 지도자들 중 일부는 사면되거나 심지어 정계에 복귀하는 등 기본적으로 군국주의 세력이 제거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치 독일이 범죄를 저지른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독일이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부인할 경우, 전후 최강국이 된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이 독일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하고 자국민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왔다. 독일의 행동을 양심이 아닌 계산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일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서남부의 나미비아가 독립하고 나서 독일에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지만, 독일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독일 사회가 도덕적으로 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문제와는 달리 나미비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나? 한마디로 나미비아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아도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201512월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이어서 2018년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확정되자 한국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 부품 등의 수출을 규제하였고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파기를 시사하였다. 현 여권에서는 죽창가를 부르고 이순신 장군을 들먹이며 일본 때리기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그런 와중에 여권 인사가 일식집에서 회식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대일 인식은 오로지 감성의 차원으로만 치달았다. 박근혜 정부 때에도 한일 관계가 냉각되어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와 양국 관계는 악화를 거듭하였다. 이 와중에 애꿎은 일부 우리 기업들만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올해 1월에 나온 위안부 배상 판결에 대해 현 정부는 징용공 판결 때와는 달리 곤혹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더욱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어느 국가를 다른 나라의 국내 법정에서 피고로 하여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을 들고 나왔다.

 

최근 징용 배상 판결 이행과 관련하여 피고 일본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감정평가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징용 배상 판결을 뒤집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18년 모 여권 인사가 이제는 지지 않겠다라고 하였는데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WTO에 제소하였으나 시원하게 해결되었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우리 뜻대로 파기하였나? 도대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휘둘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 집권당은 국민감정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챙겼는지 모르겠으나 국가적으로는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는 결과를 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징용공 배상 판결이 나오기 전에 예견된 것이다. 현 정부가 그러한 예상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이보시 고이치 신임 주한 일본 대사는 지난 2월 부임하여 4월에 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는데, 강창일 신임 주일 한국 대사는 지난 1월에 부임하여 4개월만인 525일 일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으나 아직 스가 총리는 물론 모테기 외상 예방도 못하고 있다.

 

징용공 및 위안부 문제는 무 자르듯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계속 한·일 간 이슈로서 쥐고 있으면서 일본에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도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고 어느 정도 도덕적 죄의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독도 문제는 어떤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나 교과서에서 일본 땅이라고 할 때마다 외교부가 나서서 항의한다고 하는데, 우리 내부를 둘러보자. 정부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들면서 독도를 우리 땅으로 표시하지 않는,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져도 현 정부는 내버려 두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과연 끊어버리고 싶은 끈질긴 악연일까? 수천 년 양국 관계를 볼 때 갈등보다는 평화와 교류의 시기가 훨씬 더 길었다. 역사적으로 거친 바람은 오히려 북쪽으로부터 더 자주 불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6.26 전쟁 당시 국군이 침략자 중공군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 엄청난 희생을 치른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 속에서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을 표방하면서 중국을 의식하여 동맹인 미국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일본과의 경제 교류도 매우 중요한 데 왜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만을 들먹이며 자해행위를 하는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이 역설하였듯이 양국 관계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일본의 사죄를 받고 싶다면 어설프게 감정을 폭발시킬 것이 아니라 와신상담하여 일본보다 더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4] 러시아를 여전히 경시한다

 

북방정책을 표방하고 소련과의 수교를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한국 외교의 지평과 한국인의 대외 경제활동 무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성과가 있었다. 지난 30여 년간 한·러 간 경제협력과 교류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은 사실이나 그 잠재력을 생각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대러시아 정책에 있어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오로지 정권 홍보를 위하여 명칭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며 말의 성찬을 펼쳐왔다. 그리고 러시아를 단순히 북한 관련 정보를 얻는 채널로만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결과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되고 한국의 진정성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는 러시아에 대해 과거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에는 한국 대통령이 주변 4강 중 러시아는 맨 나중에 방문하거나 때로는 취임 다음 해에 방문하였는데 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2017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여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계기에 신북방정책을 천명하고 양국 간 협력 분야로서 가스, 전력, 조선, 북극항로, 철도, 항만, 일자리, 농업, 수산 분야 등 소위 9개 다리(nine-bridge) 전략을 제시하였다. 또한, 대통령 직속으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고 유력 정치인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대러 협력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하자 문 대통령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계기 방문 시 러시아 정부는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러 이후 19년 만에 한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이하였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극동 러시아 지역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을 도모하는 플랫폼 기능을 하는 포럼이며 푸틴 대통령이 매번 참석하고 중국, 일본 등 비중 있는 나라의 지도자들도 참여하는 무게 있는 의견교환의 장이다. 특히 아베 총리는 재임 중 매번 참석하여 대러 협력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한국은 20184차 포럼에는 이낙연 총리가 대리 참석하였고 20195차 포럼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참석하였다. 이런저런 이유 또는 사정이 있었겠으나 문 대통령의 관심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취임 초기에 철도 연결, 가스관 건설, 전력망 연결 등 해묵은 메가 프로젝트 이야기를 반복하고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창설을 거론해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어 상당한 홍보 효과를 이미 거두었다고 판단한 결과는 아닐까?

 

게다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송영길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다고 1년 만에 자리를 내놓고 후임에는 골드만삭스 출신으로서 1년간 IMF 사무소장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북방 경협 관련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임명하였다. 북방경제협력위 자문위원 면모를 보면 러시아를 비롯한 북방 지역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다수이다. 이러다 보니 대러시아 경협 추진의 컨트롤 타워 및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단지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의 현황을 취합하여 보고하는 일에 그치고 있다.

 

·러 경협을 주로 남··러 삼각협력이라는 틀에서 접근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와 같은 유엔의 대북제재 상황에서 철도, 가스관, 전력망 등 메가 프로젝트를 거론하는 것은 공허하거니 무의미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러 협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러시아는 단지 러시아 시장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에 속했던 지역까지 포괄하는 의미가 있다. 그간 한·러 간에 서비스투자 분야 FTA 협상이 진행되어 왔는데 좀 더 밀도 있는 협상을 통해 조기에 타결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수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유라시아 지역 시장 개척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FTA는 이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극동 러시아 지역 개발 협력은 단순히 경제적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고 향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이 지역은 인프라 부족, 인구 정체 등으로 아직도 본격적인 경제발전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인들의 평화적 잠식이 진행되고 있어 러시아 정부가 큰 우려를 하는 지역이다. 그 결과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여 단기적으로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겠으나 이 지역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생각할 때 긴 안목에서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있어서 중국을 우선하고 러시아는 별 볼 일 없는 듯이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에 대한 지원도 석유, 가스 등 에너지를 수입하는 중국과 수출하는 러시아 가운데 어느 나라가 더 능력이 있을까? 러시아는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작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러·북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 대통령 특사가 왔을 때 문 대통령은 러시아 측의 말에 대해 별로 경청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중국 생각뿐이라서 그런가? 한반도에서 현상 유지만을 선호하는 중국과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하거나 나아가 통일된 상태를 선호하는 러시아 가운데 한국은 어느 쪽을 중시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러시아가 중국과 입장이 다른 것은 자신의 국익에 관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이 거의 동맹 수준으로 밀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양국 간 긴밀한 협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앞으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도 양국이 같을 수 없다. 중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북한에서 쿠데타나 김정은 실각 등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한국의 우군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중국군의 북한 진입을 견제함으로써 북한 내부 사태가 외세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수습되도록 도울 수 있다.

 

한국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동북아시아라는 좁은 틀에서만 러시아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 규모 면에서는 중국이 러시아를 앞서고 있겠지만 종합적인 국력에서는 양국이 비등하며, 군사력과 우주항공산업에서는 러시아가 우위에 있다. 최근 중국이 화성 표면에 탐사 장비를 착륙시켰다는데 러시아에서는 이미 소련 시절에 달성한 일이다. 후발주자로서 한국이 우주항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러시아가 여러 면에서 적합한 파트너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향후 동북아시아의 세력 판도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글자 그대로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하는데 현 정부도 그런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5] 국제관계를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부터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서 어설픈 지정학 타령을 하며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한미동맹으로부터 이탈하려는 행보를 보여 왔고 현 정부에 들어서 그러한 경향이 심화되었다. 마치 ·중 관계를 별개의 단선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움츠러드는 모습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사이 패권경쟁은 단지 미·중 관계로만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가 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러·, EU·, 인도·중국, ·중 관계 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판세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관계들은 한국에도 아니 한국과 중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제관계를 단선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특히 조선 시대에 중국과의 관계라는 단선 구조만을 경험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의 시대(Pax Sinica)가 실제로 도래할지는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단순히 중국의 GDP가 지속해서 증가하여 언젠가 미국을 추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중국은 엄청난 수의 농민공, 지역 격차, 부패,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등 내부적으로 복잡하고 풀기가 힘든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믿을만한 우방은 북한, 파키스탄 정도이며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는 사실 동상이몽 관계이다. 나머지 국가들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국제사회 전체를 놓고 벌이는 경쟁과 대결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경제성장은 경제성장일 뿐이다.

 

작금의 정세를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이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집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최근 7년간 공들인 EU-중국 투자협정이 무산되게 되었다. 중국의 거칠기 짝이 없는 전랑(戰狼) 외교가 일부 힘이 약한 나라들에는 통하였는지 모르지만, EU 같은 큰 덩치에는 먹혀들지 않았다. EU가 신장 위구르 문제로 중국에 대해 제재를 결정하자 중국은 EU의 결정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과 의회 조직에 대한 맞불 제재로 보복하였다. EU는 즉각 중국과의 투자협정 비준 절차를 중지하고 투자 협력 파트너를 중국에서 인도로 바꾸어 인도와의 협상 개시를 선언하였다. 인도는 현재 중국과 히말라야 지역에서 군사적인 대치 상태에 있다. 이미 군사적으로는 일본과 호주는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이 미국의 남중국해 군사작전에 합류하고 있다. 이러한 견제는 중국의 굴기를 발목 잡을 수 있다. ·중 사이 패권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의 경쟁에서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군사적 대결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러·중 관계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예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지속해서 군사행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서북방면 즉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처하는 데 있어 러시아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경제·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대러시아 제휴를 강화해왔다. 러시아도 미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만큼 공동대응 차원에서 중국과 밀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오래전부터 중국위협론이라는 담론이 있었다. 19세기 이후만 보더라도 러·중 관계는 갈등이 더 많았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했던 냉전 시절에도 양국 관계가 좋았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는 소련의 몰락 이후 비로소 회복되었으며 러시아에서는 현재 러·중 관계를 제휴’(entente)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한 관계가 동맹’(alliance)으로 발전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중 사이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러시아는 중국을 돕기보다는 방관할 가능성이 더 크며 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할 수도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도 잠재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군의 아프간 철군과 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다. 이제까지 중국은 미군의 해외 주둔에 대해 패권 유지를 위한 제국주의라고 비판해왔는데 지난 414일 바이든 대통령이 51일부터 9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전면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중국은 환영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 신장 지역과 인접하고 있으며 알카에다, 탈레반, IS 등 과격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온상이며 신장 위구르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ETIM)도 이곳에 은거하고 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게 되면 이 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며, 신장 위구르족 말살 정책을 이유로 이미 중국에 대해 성전(聖戰 Jihad)를 선포한 이들이 신장 지역의 상황을 매우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철군 발표와 동시에 교묘하게도 ETIM은 제재대상 테러단체 목록에서 제외하였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미국의 고도의 방책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 국제사회 주요국, 그리고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예의주시하며 대중국 정책을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익을 생각할 때 이기는 쪽에 줄을 서야 하는 법이다. 리는 100여 년 전 국제정세에 어두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여 나라를 빼앗겼는데 그러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중국에 대한 저자세에서 벗어나 중국을 다루는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왜 현 정부는 중국을 혼자서상대하려고 하는가? 동맹을 추구하는 것은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마찬가지이며 약자의 경우 더욱 절실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중국의 눈치를 보고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만을 생각하며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행동이 얼마나 국익에 반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현 여권은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주의는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끝]

 

 

<초청강사-필자 소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등 4차례에 걸쳐 11년 간 러시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현재는 각종 매체에 한·러 관계와 러시아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 행사 동영상은 별도로 배포하고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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