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시 맛보기] 손등이 젖는다 -배세복

이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06-29 01: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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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을 보여주지 않는 그는
나에게 늘 돌아앉은 등과 같다
...
얼굴 쓸며 무너지는 그 앞에
사진 속 낯익은 꽃잎이 웃고 있다

 

[]

 

 

손등이 젖는다

 

 

 

 

배세복

 

 

나는 그를 잘 안다

그의 몸에 이파리로 달라붙어서

살랑살랑 봄바람 불 때면

걸음마다 나는 팔랑거린다

때론 축축한 꿈길 위

훠어이 훠어이 소리 높일 때도

기꺼이 그를 휘젓는다

그러나 그를 잘 모른다

꽃잎을 보여주지 않는 그는

나에게 늘 돌아앉은 등과 같다

아침에 꽃봉오리 단장할 때

저물녘 이마를 짚어볼 때도

나에게 항상 메마르다

그런 그가 오늘 허둥지둥

꽃잎을 갖다 댄다

얼굴 쓸며 무너지는 그 앞에

사진 속 낯익은 꽃잎이 웃고 있다

허물어지는 그를

낯선 이파리들이 부축한다

아주 천천히

솟구치듯 일어서던 그가

다시 마른 대궁처럼 몸을 꺾는다

나는 바닥에 조용히 낙엽 되어 놓이고

갑자기 그가 얼굴을 맞춘다

저음의 진동으로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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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뭉클하다.

여러 편의 시 중에서 유독 마음이 끌려온 시다.

이 시는 먼저 가버린 짝지의 그리움에서 시작된다.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그녀의 잔영,

그것으로부터 애써 벗어나 보려는 시인의 마음은

더 애틋하다.

사진 속 낯익은 꽃잎이 웃고 있다부분에서

현실에서 옥신각신 오고 가던 부부의 삶이 투명하게 비친다.

이 풍경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인식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시인이 보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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