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이유는 자신을 낮추어 아래로 흘렀기 때문
진영을 막론하고 이른바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비루하다
대중들은 지적, 도덕적 권위 대신 예능만 기대한다
예능이 예술을 이기고 있는 거다. ...예능 대신 예술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아침은 노자 <<도덕경>> 70장에 나오는 "피갈회옥(被褐懷玉)"이라는 말을 사유한다. 이 말은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있지만 가슴에는 아름다운 구슬을 품고 있다'는 거다. '겉은 허름한 베옷(褐)을 입고(被) 있지만, 속에는 옥(玉)을 품고(懷)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거'다. '겉은 허름하지만, 속은 알차다'는 거다. 노자가 그리는 성인의 모습인데, 나는 자유인으로 인문 운동가의 모습도 그렇다고 본다. 인문 운동가가 하는 말은, 노자가 말하는 성인의 말씀과 같이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않다. 그러나 그 안에 보석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웃어 넘기거나 믿으려 하지 않고, 듣거나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내 글은 안 팔릴 거라고, 책으로 만들지 마라고 딸은 말한다. 딸이 정상이다. 실제로 지금 대중들은 예능을 좋아한다. 자신을 깨우는 인문적 글보다 가십 거리로 시간을 때우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노자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 "피갈회옥"이란 말을 한 것 같다. "피갈회옥(被褐懷玉)"은 노자가 처한 세상의 불우한 모습과 내면의 진박(眞樸)한 인격 자세의 모순된 양면을 잘 그려내는 말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잘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석을 가슴에 품은 자가 갈포를 두려워할 리가 없다. 도올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것은 "도가적 은둔자의 프라이드"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강의에서 말하였다.
위대한 진리는 참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예컨대, 높아지려면 낮추어야 한다.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것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길 것이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이유는 자신을 낮추어 아래로 흘렀기 때문이다. 천하의 주인이 되려면 말로 자신을 낮추고 몸으로 자신을 겸손히 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받들고 따를 것이다. 천하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한 노자의 주장은 이해하기도 쉽고 실천하기도 쉬운데, 세상 사람들은 알려고도, 실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노자는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 같다.
"갈(葛)"은 삼실로 짠 거친 삼베 옷이다. 따라서 그것을 입는다는 말은 '남루하고 허름한 옷을 걸치고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품 속에는 귀하고 값비싼 구슬을 품고 있다는 거다. "피갈", 몸에 걸친 남루한 삼베옷은 가난하다는 비유이니, 지적으로 빈곤함을 뜻하기도 하다. 즉 무지하여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성인은 이와 같이 세상의 지식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허름하고 거친 베옷을 입은 사람처럼 가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속에는 빛나는 구슬을 품고 있다는 거다. 그 구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자기에 대한 지식이다.
그러니까 속세의 현명한 자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식인들이란 속에는 진실로 가치로운 것(자기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을 품고 있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화려한 옷(세상에 대한 잡 지식)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반면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자기가 누구인지 깨달은 사람, 자기를 아는 자인 것이다.
오늘은 미사 후에, 계족산에 가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를 하며, '피조물 보호 챌린지' 행사를 할 예정이다. 어제는 정말 바쁜 하루였고, 내 뜻대로 행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룰 흐르는 대로 대처를 하고, 일찍 집에 들어 와 쉬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사람도 물처럼 여유를 갖고 천천히 흐르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왜 사는 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물에는 오늘 달성해야 될 목표와 이루어야 할 성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목표에 이르는 최단 거리를 찾아서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물은 흐를 뿐이다. 그러면서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오늘 오후는 계족산에 가서 "가을 편지"를 읽으려 한다.
가을편지/이성선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워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 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이른바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비루하다. 꾀죄죄하고 초라할 때 우리는 '비루하다'고 한다. 다른 말로 '너절하고 더럽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지식인의 위상이 한없이 초라 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보편적인 존경을 받는 엘리트/지식인/학자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난 정권에서도 내내 논란이 되었던 '내로남불'과 불공정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최근 정치권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진영을 막론하고 이른바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일반 국민에게 ‘비루한’ 존재가 됐다는 거다.
무서운 것은 현 정부의 인사 잡음에서 나는 분노보다 냉소와 허탈이 앞선다는 거다. 많은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인문 운동가의 눈에는 분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냉소이다. 냉소는 '쌀쌀한 태도로 비웃는 거'다. 분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그러면 부패는 더 더 부패한다. 걱정이다. 이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시대의 풍경이 바뀌었다는 거다. 대중들은 지적, 도덕적 권위 대신 예능만 기대한다. 물론 각계각층의 전문성을 대표하는 엘리트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중 일부는 유튜브나 SNS에서 유명세를 얻기도 한다. 과거와 달라진 건 그들을 소비하는 대중이 더 이상 그들에게서 지적·도덕적 권위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적·도덕적 권위보다는 (거대 미디어 플랫폼의 성장 속에서) 예능적 요소가 주목을 끄는 시대가 됐다. 대상이 아무리 엘리트여도 재밌는 스토리텔링이나 예능적 요소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엘리트는 대중의 눈에 그저 비루한 노잼들이다. 그러다 보니 위선보다는 차라리 흥미로운 위악이 더 낫다는 여론이 다수를 점한 시대의 풍경이다. 그런 면에서 현 대통령의 당선과 엘리트의 위상 추락은 상호 연동된 현상일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인문 정신의 부재 현상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에게 인문 정신을 외치는 인문 운동가인 나 자신도 '노잼'의 엘리트일 뿐이 아닌가 반성한다.
나는, 여기서, (간발의 차이였지만) 국민들이 굥을 선택했다고 본다. 존경하지는 않더라도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난 전 정부에서 일부 어용 지식인론 같은 비상식적인 일련의 사태들을 겪고 나니 대중은 더는 ‘존경 받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신 많은 이들은 (최소한)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을 선택했다. 정책과 이념보다는 제스처와 태도가 대선 결과를 가른 것으로 평가한다. 아마도 이런 점이 대중들이 '굥'을 택하지 않았을까?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이걸로 풀어본다.
그 뿐만 아니라, 엘리트 정치인들의 부패와 위선에 식상한 점도 있다. 그리고 그 엘리트 정치인들의 정치적 언어에서 특히 그랬을 것 같다. 인문 정신의 문제이다. 예능이 예술을 이기고 있는 거다. 예능 대신 예술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능은 당장의 시각적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예술은 추상적이지만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전율과 감동을 일으키는 일이다. 만화만, TV 드라마에만 관심을 두면, 예술을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 예능과 예술은 다르다. 예술의 핵심은 미학적 정서와 철학적 사유이다. 즉 정서적 미학과 철학적 가치라고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감동과 변화이다. 가짜와 진짜는 여기서 판가름 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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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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