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나의 미국 인문 기행』-서경식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4-02-04 02: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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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1991)로 잘 알려진 서경식 교수의 유작
-재난·전쟁 범죄·국가 폭력 끔찍한 현실 속 ‘도덕의 거처’를 물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유의 단상 전해

 

 

 신간 나의 미국 인문 기행’(반비)은 미술사학자이자 디아스포라 학자인 서경식 도쿄 경제대학 명예교수의 유작이다.

 

 재일 조선인 작가 서경식은 1951년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와세다대 재학 중이던 1971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던 두 형(서승·서준식)이 구속된 뒤 구명 운동을 벌였고, 한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이때의 체험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의식과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한국과 일본, 미술, 사회를 비평하는 책들을 다수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알려지기 시작해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 ‘나의 조선 미술 순례’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30여 권의 책이 번역됐다. 비판적 지성과 예술성으로 무장한 문장으로 많은 독자를 낳았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이번 미국 편에서는 저자가 전작에서 다뤄온 주제들에 더해, 자유와 환대의 가치를 내건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가 마주한 암울한 현재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난과 전쟁 범죄, 국가 폭력의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도덕의 거처를 묻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 그 자체에는 절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서경식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6년과 학생운동을 하던 중 수감된 두 형(서승과 서준식)의 구명 활동을 위해 미국을 오갔던 1980년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2020년을 오간다. 그는 세 시간대를 오가며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극심해지며,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드리운 세계에 대한 깊은 염려를 표한다. 동시에 자신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유의 단상을 전한다.

 

 옥고를 치르던 형들의 구명운동을 위해 방문한 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은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이 극심해지는 곳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로 부상하고, 여러 문화가 뒤섞여 서로 갈등하고 항쟁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보다 단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곳이다. 그런 미국에서 서경식은 자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다가와 준 이들과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을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만난다.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대중에게 침투하려던 디에고 리베라,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며 자신의 그림을 저항과 연대의 무기로 삼았던 벤 샨,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에 항의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와 미국의 국가 폭력과 감시를 문제 삼아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로라 포이트러스. 서경식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술관 복도를 거닐며, 부정의에 저항하며 해방의 씨앗을 심으려고 했던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암담한 현재를 똑바로 응시하며 쓰고 그리는 일의 의미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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