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오락으로 여겨야 한다는 신조 몸과 마음을 직접 정성껏 돌보는 데서 진정한 충족감과 즐거움을 느껴
-일기 속 소박한 생활방식 따라가다 보면 정직한 리듬 만끽하게 돼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다”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혜택이다. 사람들이 나의 약점으로 여기는 것이 내게는 강점이다.”-‘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본문에서
‘월든’으로 유명한 미국 사상가이며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1855∼1857년 3년간 쓴 일기를 선별해 묶은 책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이 번역 출간됐다.
불후의 고전 ‘월든’을 집필한 소로는 한평생 삶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일기로 남겼고, 그의 일기는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일기는 좋았던 일이나 그럴듯한 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경험과 성장을 적는 그릇”이라고 여겼다.
소로는 20대 때부터 월든 호숫가에 혼자 힘으로 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살 정도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월든 호숫가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의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을 일기에 기록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지만 마을 곳곳에서 푼돈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손수 텃밭에 감자 따위의 먹을 것을 키우고 옷을 지었다. 땔감을 장에서 사는 게 아니라, 숲과 강에서 나무를 주워 땔감으로 썼다. 일을 오락으로 여겨야 한다는 신조를 지녔으며, 남이 깔아놓은 이불에서 잠들기보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정성껏 돌보는 데서 진정한 충족감과 즐거움을 느꼈다.
일기 속 소로의 온갖 자잘한 노동과 소박한 생활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직한 리듬을 만끽하게 된다. 놀랍게도 소로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생활 양식을 권하는 현 사회 시스템은 오직 무딘 사람들만 좋아할 뿐, 사실 다수는 그렇게 사는 것을 내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람이라면 더 많은 부, 더 많은 편리함을 소유하길 원하며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통념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러한 발언은 통쾌함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소로는 노예처럼 사는 데 지쳤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조건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우리 내면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그에겐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방법이었다. 일기에 “적막함이나 가난함이라 세상에서 부르는 것들이 내게는 단순함일 뿐이다”라고 밝혔고, 자신을 살찌우지도 못하는 값비싼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평범한 매일의 생활에서 영감과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 단순함 덕에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이 진정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와인과 브랜디의 맛 때문에 물맛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삶이 얼마나 불행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숲, 들, 늪지 등을 쏘다니는 산책자 소로의 부지런함과 왕성한 호기심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근심 대부분이 우리가 실내에서 살기에 생겨난다면서 ‘실내 생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적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에 산책하면 맑은 날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사방이 고요해져서 “생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고도 읊조린다.
소로는 아마추어 조류학자이자 식물학자로서 일기에 날다람쥐, 여우, 거북, 급류개구리, 원앙, 올빼미, 까마귀, 나무참새, 쌀먹이새, 찌르레기, 느릅나무, 참나무, 걸상독버섯, 앉은부채, 갖가지 나물과 지의류 등 수많은 다채로운 동식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필드노트를 들고 다니며 자신이 관찰한 온갖 자연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솔방울과 밤알을 줍고, 낡은 모자를 식물표본상자 삼아 거기에 식물을 담아와 소박한 컬렉션을 만들었다.
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다”라고 주장한다. 채도 높고 풍성한 그의 자연 관찰 기록에서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퍼져 나와 매번 읽는 이의 마음을 크게 뒤흔든다. 일기 속에 “우리는 버릇대로 걷는 세상 길에서 얼마쯤 비켜나 아주 작은 사실이나 현상을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의미에 넋을 빼앗길 필요가 있다. 사물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새로이 안다는 것은 곧 영감을 얻는 일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자연을 다각도에서 관찰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리는 소로의 눈을 통해 독자 또한 자연과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소로의 글솜씨가 최고조에 올랐지만 건강을 많이 잃고 여러 우정의 위기를 겪은 1855년~1857년 사이에 쓰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였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소로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겨울 속에 “영원한 여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도 그 세계만이 가진 미와 미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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