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사람은 자기가 쌓아온 이미지 위에서 판단 받는다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6-05-24 0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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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7>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스토리 중독에서 벗어나 내면의 서사를 회복하고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회복이라는 거다.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이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띤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처럼’ 되기 보다 ‘진정한 나 되기’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괴물은 그 어떤 괴물과도 다르다. 그것은 파괴하는 대신 스스로를 치유하며 창조한다.

 

1

'마음의 환기'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감각인 감정을 잘 다스리려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듯이 마음에 쓸데없는 노폐물들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사랑'의 공기로 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환기'를 위해, 나는 나의 주말농장 <예훈>에 갔다. 어김없이 작년 이 때쯤 폈던 찔레꽃이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 나에게 말했다. "슬퍼하지 말고/꿈결처럼/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찔레 동생이 '달래'란다. 몽골에 잡혀간 언니 찔레가 동생이 보고 싶어 찾아왔건만, 이미 죽은 뒤였다. 찔레는 자신의 동생인 달래의 눈덮힌 무덤가에서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그 이듬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었고, 그리움이 찐한 향기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 찔레꽃은 하얗고, 향이 진하다. 그래 찔레 꽃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찔레/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2

사람은 자기가 쌓아온 이미지 위에서 판단 받는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 하여야 한다. 개인이던 기업이던 마찬가지이다. 지금 스토리가 아니라 서사가 중요한 시대이다.

 

오래 전에 <<피로사회>>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한병철 교수가 <<서사의 위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오늘 아침 그 책을 다시 책꽂이에서 꺼냈다. 그는 사라지는 뉴스라는 스토리를 좇느라 방향도, 의미도 잃은 채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삶을 '서사의 위기'라 진단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스토리 중독에서 벗어나 내면의

 

서사를 회복하고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회복이라는 거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사람은 이야기이다. ()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한병철)

 

가 아닌 다른 누구처럼되기보다 진정한 나 되기가 단순한 정보의 스토리텔링이 아닌 '나만의 서사'가 필요하다. 노년이 되어도 '네러티브(서사) 자본'이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절대갑으로만 살아온 이들의 무개념과 서민들보다는 화려한 자리에만 관심을 보이는 권위적 정신 세계의 단면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은 "진정한 자신(자기 서사, 아니 자신의 이야기)"이라고는 없고, 남을 흉내만 내고 사치에 목매단다. 그러다가 의미가 채워지지 않는 사치스러운 삶은 어느 순간 지루하고 공허해지는 데, 그 대안은 다음과 같은 다른 삶의 방식에 관심을 돌리는 거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길로 들어서거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사치와 멀어진다.

또 어떤 사람은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몰두한다.

또 다른 방식은 '더 작은 것에 대한 예찬',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다. 최소한 것들만 의식적으로 선별하고, 그것에 더 중요하고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 스토리, 정보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음 스토리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반면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이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띤다. 곧 사라져 버릴 정보에 휩쓸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사람'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올라오는 찰나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공감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 안에 의미는 없다. 사라져 버릴 정보에 불과하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 셀링(storyseliing)'이라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무기가 되어, 마치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게다가 뉴스마저 사람들의 클릭 수에 따라 돈이 된다고 하여, 내용은 없거나 빈약한데 제목만 매우 선정적이다. 우리는 그 제목에 속는다. 그러면 지금은 정보 과잉 사회이다.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이유에서 이유로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 자기 존재를 정보로 전락시키는 사회에서 개인은 각자의 이야기, 서사를 잃고 우연성에 휩싸인 채 폭풍우 한 가운데서 부유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세상으로부터 충격 받고 저항하고 간극, 아니 틈을 느끼며 자신만의 철학을 쌓아 올릴 기회를 빼앗고 그저 '좋아요'를 외치게 만든다.

 

김난도 교수의 한 인터뷰에서 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러티브 자본도 결국 내일을 빙자한 거품을 걷어내고 지금, 이 순간의 진정성에 집중하겠다는 욕구로 읽힌다"고 기자가 물으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요. 예전엔 스토리텔링이 마케팅이었지만 이젠 서사의 진정성을 파고들어가죠. 가령 영화 M&M 초콜릿이 나왔다면 이제 소비자는 궁금해해요. 그 회사는 우주개발에 투자했나? CEO가 양성평등을 말하면 이사회에 여성 임원은 몇 명인가? 상품의 스토리나 CEO의 말보다 그 회사가 가진 제품과 경영의 진정성을 캐내죠. 그 진정성이 내러티브로 확인되면, 소비자는 제품을 사고 주식을 사요. 내러티브는 단순 스토리와는 달라요. 세계관의 문제이고 진정성의 문제죠. 개인도 기업도 결국 자기 정체성의 내러티브가 중요한 자본이 되고 있어요.” 나는 여기서 네러티브를 '서사'로 읽는다. 그러니까 가 아닌 다른 누구처럼되기 보다 진정한 나 되기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네러티브(서사) 자본이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절대값으로만 살아온 이들의 무개념과 서민들보다는 화려한 자리에만 관심을 보이는 권위적 정신 세계의 단면이 만들어내는 것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집권 초기 영국 여왕 조문 행사의 지각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정상들처럼 서민들과 줄 서서 걸어서라도 가는 길은 귀찮아 가지 않고, 리셉션 같은 화려한 자리에만 들리는 모습 등에서 기본 정신 자세를 알 수 있다. 그런 처세로 이룬 성공일 것이다. 그의 부인 김거니도 마찬가지이다. 논문 표절부터 살아온 삶 거의가 "연극성 인격"이라 할 만큼 "진정한 자신(자기 서사, 아니 자신의 이야기)"라고는 없는 여성이다. 그래 그녀는 실제로 흉내만 낸다.

 

3

문장의 힘은 위대하다. 단 한 문장이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새로운 출발의 원동력이 된다. 지치고 쓰러지고 싶을 땐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가수는 음악으로, 배우는 대사로, 작가는 글귀로 문장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는다. 모두에겐 각자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짧은 문장들이 있을 것이다. 이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네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해줄 것이다. 오늘 아침 만난 문장은 "사랑이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괴물임이 틀림없다. 못 믿겠다면당신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다!" 이다.

 

에밀 페리스의 그래픽노블 몬스터홀릭중에 나온다고 한다. 황유원 시인의 글에서 만난 거다. 이 책의 저자 이력은 꽤 독특하다고 했다. 마흔 살에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려 하반신과 오른손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무려 6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작업하며 저 책을 완성했다. 펜을 테이프로 손에 붙인 채 어린 딸까지 돌봐 가면서 말이다. 우리는 때로 자발적으로 괴물이 된다. 괴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괴물은 그 어떤 괴물과도 다르다. 그것은 파괴하는 대신 스스로를 치유하며 창조한다. 그런 사랑의 결과물은 존재 만으로도 행운을 가져다 준다.

 

사랑은 힘이 있다. <라이프(Life)> 잡지의 어느 기자가 영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 앉아 느지막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앞자리에 나이가 든 부부가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정답게 앉아 남편은 빵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를 주문했다. 옷차림으로 보아 노 부부는 퍽 가난한 듯 보였다. 두 사람은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마주 보면서 손을 잡고 조용히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주문한 빵과 차가 나왔다. 남편은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면서 남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빵을 먹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동자에는 한없이 고요한 평화가 맴돌았다.

 

그때 남편은 먹던 빵의 반을 아내의 테이블 앞으로 밀어 놓더니 자신의 입에서 틀니를 뽑아 옆에 놓인 냅킨으로 깨끗이 닦아서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그 틀니를 받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넣고는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다정스레 바라보았다.

 

이들 노부부는 비록 각자의 틀니를 가질 만큼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이것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랑은 힘이 있다.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 가난도 수치 도, 창피함도, 수모도 그 사랑의 용광로에 들어가면 다 녹아 버린다. 소포클레스는 참다운 사랑의 힘은 태산(太山)보다도 강하다. 그러므로 그 힘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금일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 라고 말했고,

체홉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만은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라고 했다.

 

4

사는 것이 무엇일까 의문이 생길 때마다 기억하는 시이다.

 

산다는 것의 의미/이시영

 

1964년 토오꾜오 올림픽을 앞두고 지은 지 삼 년 밖에 안 된 집을 부득이 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지붕을 들어내자 꼬리에 못이 박혀 꼼 짝도 할 수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동료 도마뱀이 그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날라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소개한 반칠환 시인은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6년의 일이다. 충청도 산골에서 어떤 소년이 다람쥐 한 마리를 사로잡아 체 속에 가두었다. 장차 쳇바퀴 돌리는 서커스 기예를 펼치게 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체가 바람에 뒤집힐까 봐 주먹만 한 돌 몇 개를 얹어 놓았다. 소년이 마당에서 노는 동안 다람쥐 여러 마리가 체 감옥에 면회를 온 듯 북적거렸다. 별일 있으랴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가보니 체 감옥이 뒤집혀 있었다. 다람쥐 동료들이 와서 돌들을 밀어내고 탈옥을 시킨 것이었다."

 

고등학교 동창 단체 카톡에서 얻은 이야기이다. 어느 한 출판사에서 "친구" 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을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밤이 깊을 때 전화하고 싶은 사람", "나의 아픔을 진지하게 들어 주는 사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정의를 내렸지만, 1등 공모 작은 바로 이 말이었다.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

사람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 또한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아픔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아무나 될 수 없는 법 이다.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줄일 줄 아는 넉넉함을 가진 사람, 남은 사람들이 다 떠나간 후 마지막까지 그의 존재를 믿고 지켜 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략>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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