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1792>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7 0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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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실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실수가 있으면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희생을 각오한다는 뜻이다.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하라, 진실은 구호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의견이라고 해서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오늘 아침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여덟 번째 rule(규칙)"언제나 진실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말하는 나와 조금 떨어져 관찰하고 판단하는 나로 분리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이 하는 말 대부분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다양했다. (1) 논쟁에서 승리하고 싶어서, (2) 좋은 자리를 얻고 싶어서, (3)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 (4) 원하는 걸 얻고 싶어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세상을 비틀고 왜곡하여 그런 거짓말을 합리화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 양심이 반박하지 않는 것만 말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특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이런 습관은 무척 유용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저자는 진실을 말하면 된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다.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좋은 규칙이다.

 

쉬운 길을 택하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두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이 둘은 삶의 과정에 항상 함께하는 서로 다른 길이며, 완전히 다른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의도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세상을 조작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정치적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정보를 조작하는 거다. 정보 조작은 비양심적인 마케팅 담당자와 판매원, 유혹하는 기술이 뛰어난 바람둥이, 선동에 집착하는 이상주의, 대중의 관심을 원하는 광고업자,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정신질환자의 특기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처 그들을 조종하려고 할 때 쓰는 수법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속내와 다른 사탕발림으로 남의 비위를 맞출 때도 이 수법을 쓴다. 세상을 조작하는 언어는 비열한 책략이고, 허위 구호이고, 거짓 선동이고, 가짜 뉴스이다.

 

이런 삶을 살면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뒤틀린 욕망으로 옳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작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예들을 융은 "인생의 거짓말"이라 했다. 가능한 한 많은 예를 나열해 본다.

 

(1) 이데올기적 신념을 강요하기

(2)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3) 유능하게 보이기

(4) 서열의 상승

(5) 책임 회피

(6)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 채기

(7) 승진과 진급

(8) 다른 사람에게 주목 받기

(9) 모두의 호감 얻기

(10) 피해자인 척하여 이익 챙기기

(11) 냉소적 태도의 합리화

(12) 반사회적 세계관의 합리화

(13) 알면서 모르는 척하기

(14) 약한 척하기

(15) 성인군자처럼 말하기

(16)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기

 

'인생의 거짓말'은 인식과 생각, 행동으로 현실을 조작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리 계획한 한정된 결과만 얻을 수 있다. '인생의 거짓말'에 의존하는 삶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 현재의 지식으로 선별한 '좋은 것'들이 미래에도 계속 좋은 것이라는 전제. 이 전제는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위가 미래에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좋은 목표가 미래에는 의미 없는 목표로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 현실 세계는 있는 그대로 두면 견디기 힘든 곳이 된다. 이 전제가 타당하려면 두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 현실 세계가 본질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어야 하고, 또 현실이 얼마든지 조작하고 왜곡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웬만한 교만과 확신으로는 불가능하다. 합리성이라는 능력은 자만심으로 변할 위험이 크다. '내가 아는 것은 무조건 옳다. 그러니 모두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자만심으로 인해 자기가 가진 것들에 애착이 생기고, 애착이 심해지면 그것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그러면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정해 놓고, 그 유토피아를 실현하겠다며 삶을 왜곡한다.

 

우리는 일부 정치인들이 말하는 공약이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 잘 모른다. 어쨌든 언제나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고,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인생의 거짓말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이 힘들더라도, 세상의 모든 골칫거리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자 안에는 희망도 있기 때문이다.

 

공약/원태연

 

헤어짐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떠나버린 님의 마음을

그 전처럼 돌려주겠다고

가슴아픈 이별을 했더라도

하룻밤 아파하다

거짓말처럼 잊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런 공약을 한다면

이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몰표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정치니 장난이니

투표 안 하고 만다던 나부터도

당장 그 사람 찍어줄 텐데...

 

인생의 거짓말에는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거짓말을 어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나타난다. 잘못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저지르는 죄를 우리는 '작위에 의한 죄'라 한다. 그런데 잘못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방치하는 행위 역시 '작의의 죄'이다.

 

일반적으로 적극적인 범죄 행위를 소극적인 방치보다 더 심각한 잘못으로 판단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이 그렇다. 그는 모두를 미소로 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부당한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학대를 받아도 불평하지 않는다. 떼 지어 다니는 무리 속 물고기 한 마리처럼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사람도 은밀한 불안감이 마음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고 있을 거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모두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감추는 습관이 삶의 의미마저 감춰 버린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즉 노예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발적 노예'로 살게 된다는 말이다. 원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얻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속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숨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남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용감하게 탐험에 나서면서, 미지의 것을 향해 자유의지로 도전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으면, 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자아가 형성된다. 이건 개념적인 진실이다. 최근 뇌과학이 이 진실을 뒷받침한다. 어떤 유기체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중추 신경계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이 활성화한다. 새 유전자들은 새로운 단백질들의 유전 암호와 연결되고, 이 단백질들이 구성단위가 되어 뇌에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그렇게 영토를 확장하려면, 우리는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디라도 건너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의 삶은 미완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라도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 '아니요'라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의 교도관처럼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된다. '아니요'라는 대답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에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마음을 감추고 거짓을 말하며 가식적으로 행동하면 의지가 약해진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역경을 이겨내지 못한다. 역경은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그 결과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수가 있으면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희생을 각오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똑똑하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실수나 오류를 무시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런 오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카펫으로 덮어 버린다. 이런 존재 방식을 키르케고르는 '비 본래적'이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그 이유는 내 목표와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이것이 본래적인 목소리이다. 그 이유를 세상이 불공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멍청해서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그들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이고,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환경 탓으로 보면, 그것은 비본래적인 목소리이다. 문제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사건들은 이런 '비본래적'인 생각이 작용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비본래적 개인들의 오류와 실수가 모이고 쌓이면 국가 역시 부패와 타락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조직에서 새로운 규칙을 자주 만든다. 그런 규칙은 대체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다. 짜증을 유발하고, 일하는 사람의 즐거움과 의미를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대체로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하며 넘어간다. 이게 문제이다. 그러면 또 다른 규칙이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강력히 반발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반발할 용기도 없어진다. 반면 상대는 지금껏 어떤 반대도 받지 않아서 더 강해지고, 조직은 더 부패한다.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고 괜찮은 척하던 사람들도 이 사태의 공범이다.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혁명이 필요한 때인지 모른다. 아니면 영혼이 타락할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해도 자기 영혼[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마르코 복음> 836) 이 문제는 내일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하라, 진실은 구호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의견이라고 해서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진실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진실을 파악한 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신중히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해 보라. 그러면 현재의 믿음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확실한 안전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게 저자 피터슨이 하고 싶은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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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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