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허왕후는 어디에서 왔는가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1-01-28 20: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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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후가 왔다는 인도의 아요디아. 아직도 고대 유풍이 많이 남아 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한국고대사는 이동설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고대 왕조의 개국사는 이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건국했으며,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와 건국했다. 신라도 이주세력과 토착세력의 연합으로 건국했고, 수로왕도 마찬가지다. 수로왕비인 허왕후는 어디에서 이동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수로왕과 구간 등의 접대를 받으며 수로왕의 침전에 들어간 왕후가 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주고 있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고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본국에 있던 금년 5월 중 부왕과 황후께서 저를 돌아보면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상제(皇天上帝:하느님)를 뵈었는데,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락국 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대보(大寳)를 다스리게 했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이다. 또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서 배필이 되게 하라』라는 말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꿈을 깬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오히려 귓가에 남아 있으니, 너는 이에 부모를 떠나 그곳을 향해 가라’고 하셨습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

허황옥이 자신은 아유타국 출신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유타국은 과연 어디일까? 아유타국의 위치에 대해서 조선 중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 김해부〉조는 의미심장한 단서를 던져주고 있다. 김해의 여러 유적들을 소개하면서 허왕후릉(許王后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지산(龜旨山) 동쪽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는 왕비는 아유타국 왕녀라고 한다. 혹은 남천축국(南天竺國) 왕녀라고 한다.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인데, 보주태후(普州太后)라고 부른다. 고을 사람들이 수로왕릉에 제사할 때에 함께 제사한다.”

아유타국에 대해 남천축국이라면서 허왕후를 보주태후라고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지 않는 ‘보주태후’가 추가된 점이 주목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건국 후 국가차원의 지리지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제작에 착수해 일차적으로 성종 12년(1481) 《동국여지승람》 50권을 완성했다. 그 후 중종 25년(1530)에 증보한 지리지가 현재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중기에 이미 허황후의 출신지가 ‘남천축국(인도)’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보주태후’라는 호는 김해 현지 조사과정에서 추가되었을 것이다.
 

▲허왕후 초상

◇북한 학계의 북큐슈설

그러나 불교를 극력 배척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허왕후의 출자국(出自國)에 대해서 연구해보지도 않고 부정하는 기류가 강했다. 일제강점기 때 천도교 계통에서 발간하던 《별건곤》 1934년 1월호에 수춘산인(壽春山人)이라는 이가 〈4000년사 외교, 역대왕비 공주편〉이라는 글을 쓰는데 여기에 허왕후의 출신지가 나온다. 그는 “지금에 우리 조선 사람은 아직까지도 옛날 쇄국시대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어떤 남자가 외국 여자와 결혼을 한다든지 또는 어떤 여자가 외국남자와 결혼을 한다면 누구나 해괴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이전에는 도리어 그러한 관념이 없어서 우리 조선 사람으로 외국여자와 결혼한 일이 많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 중에 현저한 예”로 수로왕과 허왕후 이야기를 실었다. 그는 “(가락국의)그 왕후는 원래 인도의 아유타국 왕녀(혹 남천축국왕녀라 한다)로 풍랑에 표박하여 조선에 온 분이다”라고 인도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방 이후 허왕후의 출신국에 대해 가장 먼저 견해를 제시한 낸 학자는 북한의 김석형(金錫亨:1915~1996)이다. 김석형은 대구 출신으로 1940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사학과를 나와 양정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1945년 3월 검거되었다가 일제 패방 후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된 실천적인 역사학자였다. 그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6년 북한의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이 파견원을 보내 역사학자들의 월북을 종용하자 박시형, 전석담 등의 사회경제사학자 등과 올라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 사회과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63년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을 발표해 가야·백제·고구려·신라인 등이 일본열도 각지에 진출해 분국을 세웠다는 ‘분국설(分國說)’을 발표해 일본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 황국사관은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제기했는데, 김석형은 거꾸로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 세운 소국이 임나라는 분국설을 제기했던 것이다. 현재 분국설은 북한 학계의 공식 견해인 반면 남한의 대학 사학과와 역사 관련 국가기관을 장악한 남한 강단사학계는 일제 황국사관의 아류인 ‘임나=가야설’을 이른바 정설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이다. 김석형은 1966년 분국설을 담은 《초기조일관계사》에서 허왕후의 도래지를 추정했다. 그는 “(허왕후가) 남해로부터 왔으니 응당 북규슈를 거쳐 왔거나 북규슈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왕후는 가야가 큐슈에 설치한 분국 출신이라는 것이다.
 

▲문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이종기. 허왕후가 인도 아요디아 왕국 출신이라는 학설을 처음 제기했다.

◇인도 아요디아 왕국설

해방 후에도 남한 강단사학계가 식민사관을 추종하느라 이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는 가운데 문학가이자 민족사학자였던 고 이종기는 《가락국탐사(일지사, 1977)》에서 주목할만한 견해를 제시했다. 아유타국은 인도 갠지스 강 중류에 있던 아요디아 왕국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서기 전후 인도의 쿠샨왕조가 정복활동을 전개하면서 서기 20년경 아요디아는 왕도(王都)를 함락당해서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이다.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후는 5월에 배로 출발해서 7월 27일 가야에 도착하는데, 아요디아 왕국이 있던 갠지스강 상류는 배가 거슬러 올라가기 힘든 시기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요디아 왕국이 태국에 세운 식민지였던 메남강가의 옛 도시 아유티야가 허왕후가 온 곳이라고 보았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진아는 최근에 이를 보강한 연구서를 간행했는데 허왕후의 아동경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락국 초대왕비였던 황옥 공주의 고향 아요디아는 갠지스강 중류에 있다. 가락국까지 오려면 강 물길을 900킬로미터 이상 내려온 뒤 바다로 나와 다시 약 5000킬로미터를 항해해야 낙동강 하류에 도착한다. 그 시대에 그 거리를 왕래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하안과 해안을 따라 여러 번 쉬어가면서 항해를 해야 했기에 반드시 파트너 도시가 여럿 필요했다…지금의 태국 아유타야 일대는 이전에 아요디아의 식민지였거나 해상별국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황옥 공주의 긴 여정에는 이런 파트너 도시들을 거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물자와 인력을 보충받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이다(이진아, 《지구 위에서 본 우리역사(루아크, 2017)》”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을 지낸 김병모는 강단사학계에서는 드물게 허왕후 출신지를 찾아서 많은 연구를 했는데, 조선 중후기 허적(許積:1610~1680) 등이 세운 허왕후 능비에 나오는 보주태후(普州太后)에 주목했다. 그는 허왕후 일행이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난을 피해 현재 중국의 사천성(四川省) 안악현(安岳縣) 일대인 옛 보주(普州) 일대로 이주했다고 보았다. 이들은 서기 47년 한나라 조정에 저항하다가 강제로 추방당한 후 양자강을 따라서 상해로 갔다가 서기 48년 경에 해류를 타고 가락국에 이르렀다는 것이다(《김수로왕비의 혼인길(푸른숲, 1999)》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허왕후의 출자국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일본 큐슈라는 북한 김석형의 학설과 인도의 아요디야 왕국이라는 학설이다. 인도 아요디아 왕국이라는 학설은 허왕후의 중간 기착지가 태국의 아유티야라는 학설과 중국의 옛 보주(사천성 안악)라는 학설로 갈리고 있다. 어느 주장이 실제 2천 년 전에 있었던 허왕후의 이동로를 말해주는 것일까?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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