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호] 모두가 어려운 지금, 같이 있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0-11-17 2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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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긍정학교 교장)

2020년은 인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사건으로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털어 5000만명 이상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1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지만, 그 맹위가 꺼질 줄 모르고 있고 심지어 이제 대유행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고까지 보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만 해도 메르스 때처럼 조금 고생하고 나면 지나갈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한 해가 다 지나가도록 코로나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잘 선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마는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막심합니다. 사업과 장사가 되지 않아 수십년간 해왔던 업을 눈물로 닫았고, 해고를 당하여 하루아침에 생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청년들도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어지고 취업도 어려워지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미래 계획이 무너져 낙망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치워도 치워도 해결되지 않는 살림에 눌리고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상이 무너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부들도 힘듭니다.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 합니다. 학교에 제대로 가지도 못하니 생활 리듬도 깨지고 또래도 만날 수 없고 답답한 집에서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서로 만나고 영화나 콘서트도 보고 축제에서 놀기도 하며, 여기저기 다녀야 기운이 나는 것이 우리인데 이러지 못하니 너무 지쳐갑니다.

정부에서도 감염 확산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맞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물론 물리적 거리두기는 할 수 있습니다. 밀집, 밀촉, 밀폐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방역을 위해서는 당연히 피해야 하지만 이렇게 지쳐가고 힘들 때 사회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힘을 줍니다.

사회는 ‘종교·가치관·규범·언어·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고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집단’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는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와 거리를 두라고 하면 이 사회를 떠나라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로 전혀 모임에 가지도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으며 방에서만 지내다 보니 감염은 되지 않았지만 심한 우울과 불안증을 겪게 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찾아야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해야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을 이용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문물이 부담스러우면 전화를 이용하십시오. 왜 전화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해 보십시오. “그냥” 전화를 걸고 “그냥”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이유가 있을 때만 전화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냥” 전화하고 “그냥” 문자를 보내보십시오. 그리고 그냥 전화하고 문자 보내는 사람들을 실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마시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어보십시오.

전화하는 것이 쑥스러우면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쁘게 잘 쓰지 않았더라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받는 것은 짠한 감동을 줍니다. 길게 쓸 말이 없으면 엽서도 좋습니다. 내용이 없으면 그냥 편지를 보내고 싶어서 보낸다고만 쓰셔도 됩니다.

몇 군데 다른 곳에도 있기는 하지만 정읍 KTX역 대합실에는 딱 1년 후에 배달해주는 느린 우체통이 있습니다. 옆에 비치되어 있는 엽서에 간단한 안부를 적어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배송해줍니다. 1년 전에 자신을 떠올리고 안부를 전한 엽서를 받는 것은 짠한 감동을 줍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두고 연결하는 사회적 거리 “좁히기”는 어려울 때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지난 13일 ‘위로와 희망’의 드론쇼가 펼쳐져 가을 밤하늘 위,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국민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선보였다.(사진=국토교통부)
지난 13일 열린 ‘위로와 희망’의 드론쇼에서 코로나19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는 국민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가을 밤하늘 위에 펼쳐졌다.(사진=국토교통부)


뒤집어 생각하면 코로나로 식구들끼리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들은 서로 잘 모르고 지내던 것을 잘 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걱정하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그동안 아주 당연하게 느끼고 항상 그럴 것 같던 일상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때 그때 잘 누리고 감사하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처럼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던 곳이 내게 얼마나 귀한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이 아프면 그 감염력으로 인하여 함께 있는 사람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아프면 다 아파집니다. 우리가 아프지 않으려면 서로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잘 연결되어 있으면 아플 때 견디기가 수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정 상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을 내밀고 싶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습니다. 반려견 같은 동물도 좋고 그냥 길거리에 있는 나무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오가는 길에 있는 가로수에게 이름을 지어주어 보십시오. 그냥 지하철 출구를 나와 첫 번째 있는 가로수에게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나무와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요. 푸름이도 좋고 누렁이도 좋습니다. 그 가로수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오갈 때마다 한 번 미소를 지어주고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 가로수가 나를 알아봐주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하나 하나 연결을 가져보시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고, 그런 연결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괜찮아지면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이 괜찮아질 것입니다. 또 그들이 괜찮아진다면 역으로 내가 괜찮아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로 지쳐있는 나에게 따듯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연민의 마음을 주어 보십시오. 어려울 때 애쓴다고 따듯하게 대해주시고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알고 보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참 불쌍합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연결된 그 사람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만 말을 해도 제 마음은 따듯해집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으시면 그냥 빌어주십시오.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것이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째 손해보는 느낌이 드시나요? 상관없습니다.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것을 불쌍하게 여기는 따듯한 마음이 든 것만으로 우리는 함께 이 어려움의 강을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연결되어만 있다면 반드시 함께 잘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혼자 남겨지지 않아서 정말 좋습니다. 같이 있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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