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루이 14세와 베르사유의 거울방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3-08-03 14: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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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예술의 후원자이자 수호신이었던 프랑스의 루이 14그가 권력을 드라마의 절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는 베르사유 왕실 축제였다

 
춤과 시와 극장이 어우러진 밤의 무도회는 매주 3번 열렸다몰리에르(Molière)는 이 축제의 최고 공신이었다그는 춤을 잘 추는 왕을 위해 륄리(Lully)·라신(Racine)과 함께 발레 코미디를 만들어 왕에게 헌정했다이들 덕분에 왕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대하고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려 귀족과 백성들에게 절대적 인상을 심어 주었다.
 
정치적 우의화를 좋아한 왕은 통치의 상징으로 해를 선택했다태양은 평화와 예술의 신 아폴론울 상징한다그것은 또한 모든 것에 생명과 규칙을 부여하는 별이다이는 전쟁 영웅인 루이 14세가 신처럼 평화를 되찾고 예술을 보호하여 모두에게 은혜를 주는 것을 상징한다베르사유의 장식은 왕의 초상화와 태양·월계수·금조 등을 혼합한 것이다.
 
베르사유는 프랑스 문화로 가득 찬 마법의 성이 됐다루이는 이 성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다그가 여기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세 살 때였다아버지 루이 13세는 그를 데리고 이곳으로 사냥을 왔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열세 살 소년이 된 루이는 이곳에서 주지사와 함께 사냥을 즐겼다이때부터 그는 형제들과 어머니 안 도트리슈·마자랭 추기경과 함께 베르사유를 매년 찾았다.
 
▲ 웅장한 베르사유 성 전경. 베르사유 성 제공
 
스물세 살이 되자 그는 베르사유 사냥관을 왕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40세가 되던 1678년 그는 네덜란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베르사유에 정부 본부를 만들고자 이 궁의 변혁을 시도했다
 
그는 특히 성 안에 궁중 접견과 공식 행사에 사용될 큰 갤러리를 만들 것을 구상했다이 새로운 방의 화려한 장식은 프랑스를 유럽의 위대한 우승자로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였다따라서 그는 더욱 더 이 사냥 쉼터를 절대 왕정의 기상천외한 궁전으로 탈바꿈시켜 나갔다특히 이 성의 웅장한 부지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통치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태양왕의 아우라를 한껏 뿜어 냈다.
 
전쟁으로 정복을 거듭한 태양왕 루이는 1684년 대왕(Le Grand Roi)으로 취임했다그가 구상한 큰 갤러리 거울방(La galerie des Glaces)도 이때 완성됐다그는 이 방을 강력한 정치·외교의 무대로 활용했다베르사유 궁의 보석인 거울방은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가 설계했다아이스크림색 대리석과 프랑스의 유명한 수탉과 백합꽃 기둥·혹부리 모양의 화장대그리고 프레스코화로 장식됐다. 73m 길이의 이 방은 357개의 거울이 창과 마주보고 있고 17개의 거대한 아치형 창문을 통해 햇빛이 스며들어 수많은 금도금 장식·조각·그림 등에 반사된다이는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모든 유럽 왕실의 부러움을 샀다.
 
균질한 크기의 거울을 만드는 건 무엇보다 엄청난 기술적 도전이었다이렇게 많은 거울을 제조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도 들었다하지만 프랑스 왕국의 부와 제조 노하우를 맘껏 천하에 알릴 기회이기도 했다프랑스는 결국 베네치아에서 거울 독점권을 따낼 수 있었다긴 거울 방은 사치스러운 소모의 공간이 아니라 루이 대왕이 군사·외교적 승리와 경제적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연출한 황금알이었다.
 
이 거울방은 300년 이상 방문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거울의 방 사이를 지나간다. 1684년 완공 이후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사람이 그랬듯방문객들은 여전히 거울방의 장엄함에 현혹된다. 창 너머 정원의 빛과 색채가 홀 전체에 걸쳐 있는 거대한 거울에 반사된다. 거울방은 정기적으로 복원되어 여전히 그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다.
 
▲ 베르사유 성의 거울방. 위키피디아
 
루이 대왕이 거울방에서 이웃 왕국의 군주들과 사신들을 맞이한 것처럼 지금도 이곳은 기다림과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1919년 628일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베르사유 조약도 이곳에서 체결됐다그 이후로 프랑스 대통령들은 국가의 공식 초청 행사를 이곳에서 갖는다.
 
이곳에선 또한 분수·음악·불꽃놀이가 뒤섞인 매혹적인 광경과 함께 물과 음악의 대축제와 물과 밤의 대축제가 열리고 있다이 또한 루이 14세의 미장센으로 시작됐다왕은 모든 형태의 물로 정원을 장식했다. 2000여 개의 물 분사기가 뿜어내는 환상의 여름밤을 바로크 음악과 발레·오페라로 수놓았다.
 
예술을 보호하여 아폴론처럼 평화를 되찾고자 했던 루이 14. 어느 날 그는 베르사유의 근처 마를리에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심한 다리 통증을 느꼈다극심한 고통이 계속됐지만 그는 끝까지 직무를 수행했다하지만 이윽고 괴저가 생겨 손을 쓸 수 없게 됐다왕은 일주일간 고통을 받다 결국 77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1715년 91일 아침 베르사유에서 눈을 감았다프랑스 역사상 가장 긴 72년간의 통치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의 시신은 성에 8일간 전시됐다가 프랑스의 왕과 왕비의 마지막 거처인 생-드니 대성당 납골당으로 옮겨졌다프랑스식으로 사는 노하우와 예술을 동의어로 만든  태양왕의 아우라는 이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영화나 TV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 작품에 여전히 등장한다오랜 통치 기간 그를 도왔던 마자랭·푸케·콜베르 같은 재상과 사촌 형 부르봉-콩데와의 관계그리고 그를 둘러싼 전쟁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와 같은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되어 구현된다그래서일까그는 현대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 1위에 자주 등극한다그가 떠난 지 30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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