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의 독립운동가‘김구 선생’선정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19-07-31 13: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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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구 선생을 2019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1876년 7월 11일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896년 국모를 살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렀다. 1904년 신지식인을 길러내는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으며, 황해도 문화군 초리면의 서명의숙과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 재령의 보강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교육 구국운동에 힘을 쏟았다. 또한 최광옥과 함께 해서교육총회를 조직하여 학무총감에 추대되어 각 군을 돌며 계몽운동을 펼쳤다.

선생은 1910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1911년 일제에 붙잡혀 징역 2년 형을 언도받았고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15년 형이 추가되어 옥고를 치르다 1915년 가출옥됐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임명되어 일제가 보내는 첩자들을 가려내 처단하고 정부요인들과 동포들의 안정을 지켜내는 일을 수행했다. 1931년에는 임시정부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을 맡아 일왕 처단, 조선총독 처단, 관동군사령관 처단 등을 지휘했다

1933년 장제스 총통을 만나 한인청년을 장교로 길러내는 길을 열었다. 뤄양에 있던 군관학교에 한인청년들을 장교로 길러낼 특별반을 만들었으며,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이청천·이범석·오광선 등을 초빙하여 장교 양성에 주력했다.

1940년 선생은 한국독립당의 집행위원장, 광복군 통수권자,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키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활약했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 1진과 함께 환국 후 오로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애쓰시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했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으로 치러지고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한편,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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