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역사를 말하다] 보지도 못한 '해동고기'가 가짜라는 이케우치 히로시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0-10-22 10: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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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수리한 광개토태왕릉비, 김부식은 이 비를 보지 못했지만 시조 관련 내용이 흡사하다.


◇ 내물왕이 최초의 신라왕?

한국 강단사학의 이른바 태두(?) 이병도 박사가 ‘매우 존경할만한 인격자’라고 칭송한 도쿄대 교수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1878~1952)도 물론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했다. 이병도는 이케우치의 ‘연구방법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만큼 날카로운 점이 많았다’고 회고했는데, 실제로 그런지 살펴보자. 같은 식민사학자지만 마에마 교사쿠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믿을만하다고 평가했는데 이케우치 히로시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도 불신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케우치는 물론 「신라본기」·「백제본기」를 막론하고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진성여왕까지의 28대 제왕 중 역사상의 인물로 인정되는 최초의 왕은 내물왕이고 그 이전의 제왕은 모두 공상(空想)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의 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모든 『국사교과서』가 신라를 내물왕이 건국한 것처럼 써 놓고 있는 것은 이케우치가 내물왕이 최초의 왕이라고 우긴 것을 이병도가 받아들여 이른바 정설로 삼은 결과이다. 이케우치는 또한 신라에서 박·석·김(朴石金) 세 성씨가 교차로 왕이 된 것은 “중국의 하·은·주의 왕위 계승관계를 취합해서 조작한 것”이라고 우겼다.

이케우치 히로시는 「고구려왕가의 상세의 세계에 대하여(高句麗王家の上世の世系について)」라는 논문에서 고구려 국왕의 세계(世系:계보)가 『삼국사기』와 광개토태왕릉비와 『위서(魏書)』 「고구려열전」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가짜로 몰았다. 이 세 기록을 비교해보자. 

 

표1) 『삼국사기』, 「광개토태왕릉비」, 『위서』 「고구려열전」의 고구려 개국 비교

 

 

삼국사기

광개토태왕릉비

광개토태왕릉비

출자(出自)

부여

부여

부여

탄생형태

난생(卵生)

난생(卵生)

난생(卵生)

시조

주몽(추모왕)

추모왕

주몽

초기 도읍지

비류수(沸流水) 가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상(山上)

홀승골성

후사

부여에서 온 유리(琉璃)

유류(儒留)

부여에서 온 여달(閭達)

 

표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천여 년 전의 역사에 대해 5세기 초의 기록인 「광개토태왕릉비」와 6세기 중엽에 편찬한 『위서』와 12세기 중엽에 편찬한 『삼국사기』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은 『삼국사기』가 사실대로 기록했다는 증거지 조작의 증거라고 볼 수 없다. 이케우치 히로시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위서』 「고구려 열전」의 내용이 일부 다른 것을 조작의 증거로 삼았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기록이 『위서』와 다를 경우 ‘『위서』에는 ~라고 되어 있다’라고 부기해 신빙성을 높였다.

『삼국사기』는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오다가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세 사람을 만나 일행을 이룬 후 물고기와 자라가 만들어준 다리를 건너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김부식은 이 대목에 “『위서』에서는 ‘홀승골성에 이르렀다’고 한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김부식이 갖고 있던 자료에는 ‘홀승골성’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위서』에는 ‘홀승골성’이라고 나온다고 주석을 단 것이다. 김부식을 비롯한 고려 사관들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위서』를 비롯해서 여러 사료를 참고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숨길 이유도 없었다. 『구삼국사(舊三國史)』를 비롯해서 전해져 오는 사료를 토대로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위서』 등 중국의 사료도 참고하면서 주석을 단 것이다. 『위서』의 내용을 주석으로 단 것은 『삼국사기』가 진짜라는 증거지 가짜라는 증거가 아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이케우치 히로시는 고구려 본기도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고구려 시조가 6대 태조왕?

아케우치 히로시는 “고구려 6대왕의 칭호가 태조왕인 것은 그가 실제의 시조임을 뜻한다”면서 조작으로 몰았다. 왜 시조 추모왕이 태조왕이 아니고 6대가 태조왕이냐는 것이다. 고구려 시조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의 계보는 다름과 같다.
 

표1)시조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 세계(世系)

 

①시조 추모왕→②유리왕(추모왕의 아들)→③대무신왕(유리왕의 아들)→④민중왕(대무신왕 동생)→⑤모본왕(대무신왕 아들)→⑥태조대왕(유리왕의 손자)

 

현재 사용하는 검인정 국사교과서는 고구려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1세기 후반 태조왕은 옥저를 정복하여 청천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고, 요동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는 등 영토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2세기 후반 고국천왕은 부자 상속의 왕위 계승을 확립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비상교육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다른 검인정 교과서도 모두 내용은 동일하다. 고구려 시조는 태조왕이고 2세기 후반의 9대 고국천왕(재위 179~197) 때 사실상 건국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불신론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국사교과서는 고구려가 2세기 후반 건국되었다는 근거의 하나로 고국천왕 때 부자상속제가 확립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위 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부자상속이 원칙이었다. 시조 추모왕부터 3대 대무신왕까지 모두 아들이 계승했으며, 대무신왕의 동생인 4대 민중왕이 즉위한 것에 대해 『삼국사기』는 “대무신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태자가 어려서 정사를 맡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대무신왕의 동생을) 추대해서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민중왕이 재위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대무신왕의 장자인 해우(解憂)를 세웠는데, 그가 모본왕이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건국 때부터 부자상속이 원칙이었는데도 국사교과서는 마치 고국천왕(재위 179~197) 때 비로소 부자상속 제도가 확립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부자상속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는 태자가 어리거나 모본왕처럼 신하에게 시해를 당했을 경우였다. 이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왕조가 마찬가지였다. 모본왕이 재위 6년(서기 53) 신하 두로(杜魯)에게 시해당한 것은 건국 100년 만에 맞는 정변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시조 추모왕의 증손자이자 2대 유리왕의 손자인 어수(於漱)를 세워 왕으로 삼았는데 그가 태조대왕이었다. 또한 태조대왕은 고구려 중흥군주이기도 했으므로 태조대왕이라는 시호를 올린 것이지 그가 시조란 뜻은 아니었다.
 

▲위서, 중국의 남북조시대 북제(北齊:550~577)의 위수(魏收)가 편찬한 역사서인데, 삼국사기 및 광개토태왕릉비와
고구려 건국 과정이 비슷하게 실려 있다.

 

◇보지도 못한 책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이케우치

이케우치 히로시는 “중국과의 관계에 관해서 『삼국사기』와 중국사기(中國史記)가 차이나는 것은 한국측 기록이 후세의 허구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러면서 5대 모본왕(재위 48~53)을 공상의 왕이라고 주장했다. 『삼국사기』는 모본왕이 재위 2년(서기 49)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에도 “(광무제) 25년(서기 49) 춘정월, 요동 변방의 맥인(貊人)이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침략했다”고 나온다. 후한이 고구려를 맥인(貊人)이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중국 사서에도 나오는 내용도 무조건 조작으로 모는 것이 이케우치 히로시의 ‘날카로운’ 『삼국사기』 불신론의 실체였다.

이케우치 히로시 주장의 압권은 『해동고기(海東古記)』의 편찬자가 조작한 것을 『삼국사기』가 보고 베꼈다는 내용이다. 『해동고기』는 현재 전하지 않는 책인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대조했던 책이다. 『해동고기』는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이케우치도 보지 못한 책이다. 그러나 이케우치 히로시는 『해동고기』 편찬자가 고구려의 6대 궁(태조대왕), 7대 수성(차재왕), 8대 백고(신대왕)에 대한 내용을 모두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해동고기』 편찬자가 조작했는지 여부를 알려면 『해동고기』를 봐야 하는데, 보지도 못하고 조작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런 식민사학자가 만든 ‘『삼국사기』 불신론’을 남한 강단사학의 이른바 태두(?) 이병도가 떠받들고 현재까지 국사교과서에 쓰여서 미래 세대를 가르치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크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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