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증오 정치’ 안 바꾸면 ‘테러 괴물’ 또 나온다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4-01-05 09: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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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도 확실치 않은 마구잡이식 가담항설(街談巷說) 확산일로
한쪽에선 “자작극”, 다른 쪽에선 “배후설”… 엉망진창
‘센 발언이 공천에 유리’ 계산 작동, ‘자성(自省) 목소리’ 가로막아
확증편향 팬덤정치 조장, 극성 지지자 방기·옹호가 근본 원인
선동질 불쏘시개로만 쓰려는 정치권 안팎 언행 단연코 옳지 않아
‘생각이 다른 남’의 존재를 철저히 존중해야 비로소 민주주의 성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이 도를 넘고 있다. 피의자의 당적 논란에 특정 정치세력 배후설까지 더해지면서 근거도 확실치 않은 마구잡이식 가담항설(街談巷說)이 확산일로다. 유튜브 등 사이버 공간에서 퍼지는 악의적 가짜뉴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계 없이 난장판이 돼버린 유튜브에서 주로 극우 유튜버들이 퍼트리는 무책임한 음모설 풍문은 완전히 엉망진창인 형국이다.

 

피의자가 사용한 흉기를 두고 칼이 아닌 젓가락·종이칼이라거나, 이 대표의 재판과 연계해 자작극’·‘물감 쇼?’ 등의 음모론을 제기한 콘텐츠도 수두룩하다. 구독자 81.5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지난 2일자 방송에서 피가 어디 철철 나느냐며 의혹을 제기했고, 시청자들은 이재명 쇼하지 마라며 후원금을 보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혼자 왕관 쓴 것도 경비들과 말 맞추기를 한 것 같다며 영상 링크가 공유됐다.

 

테러 환경 제공자들 반성은커녕 어떻게 이용할까 정치공학에만 골몰

 

가짜뉴스 공장장이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언고 있는 김어준이 어김없이 나섰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재명 대표 피습과 관련해 중대한 범죄의 배후가 밝혀진 경우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배후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를 찌른 흉기에 대해 저거 횟집 혹은 정육점에서 쓰는 칼이라고 하던데라고까지 말했다. 한쪽에선 자작극 아니냐고 불 지르고, 다른 쪽에선 근거도 없는 배후설을 조작해 퍼트리려고 안간힘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의 근본적 배경은 극단적 확증편향 팬덤 정치를 조장하고, 극성 지지자들의 과격한 행동을 방기하고 옹호한 정치권에 있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테러 사태의 환경 제공자들인 정치인들이 반성은커녕 이 국면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정치공학에만 골몰하는 지질한 모습이다. 피의자의 정체를 놓고도 민주당원’·‘과거 국민의힘 당원공방이 치열하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자작극’·‘배후설열중, 정치권 내 치명적 암종(癌腫) 제거 의사 없어

 

보복 운전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이경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 대표의 피습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벌어졌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정적 제거를 위해 공적 권한 사적 이용 그만이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이때다 싶었는지 이낙연, 신당 접고 이재명 중환자실 앞에서 밤새우라고 금도를 넘은 야유성 정치공세를 폈다.

 

각 당 지도부가 혼란을 우려해 언행 주의보를 발령했지만, 정치인들의 정략적 발언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때마침 오는 4월의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튀는 발언에 대한 강렬한 유혹이 작동하고 있는 양상이다. 센 발언을 한마디 해야 공천심사에서 유리하리라는 계산까지 작동하면서 정말 필요한 자성(自省)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야는 자작극’·‘배후설에만 열중하면서 정치권 안의 치명적 암종(癌腫)은 제거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한국 정치는 이미 내전불명예 딱지 하루속히 떼어내는 게 급선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테러 사건마저도 정략적으로 해석해 정쟁의 소재로 삼는 저열한 정치행태야말로 또 다른 파국을 초래할 망국적 병폐다. 사건마저 선동질의 불쏘시개로만 쓰려는 일부 정치권 안팎의 언행은 단연코 옳지 않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참담한 후진국형 정치테러다. 아무리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정쟁이 극심해도 특정 정치인을 향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끔찍한 민주주의의 탈선이다.

 

아직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정치권에서부터 치열하게 반성해야 교훈이 찾아지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은 추악한 무한 정쟁 행태를 당장 멈춰 세워야 한다. 확증편향에 빠져서 품격을 잃은 채 사생결단식 정쟁에 골몰해온 증오·저주·분노의 정치부터 무조건 반성하고 청산해야 한다. ‘한국 정치는 이미 내전 상태라는 오래된, 이 위험한 불명예 딱지를 하루속히 떼어내는 게 급선무다.

 

한국 정치, 목민(牧民)의 기능은 퇴화하고 사악한 선동만 난무

 

1966년 김두한 한독당 의원의 의사당 오물 투척 사건에서부터 그동안 많은 정치인이 물병, 달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곧바로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박근혜 대표의 커터칼 피습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최근에는 20223·9 대선을 앞두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에 유튜버 표모 씨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한 일도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야만적 테러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생각이 다른 남의 존재를 철저히 존중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이 파괴된, 아적(我賊) 개념만이 지배하는 정치풍토가 으뜸 문제다. 그동안의 풍토를 보면, 고작 모든 사안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치졸한 궤변으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논쟁을 정치라고 여기는 인사들이 정치권에서 행세해온 게 사실이다. 그건 정치가 아니다. 국민을 올바른 곳으로 이끄는 목민(牧民)의 기능은 퇴화하고 사악한 선동만 난무하는 이 풍토가 문제의 핵심이다.

 

증오 정치못 멈추면 제2, 3의 정치테러 악마는 또 나올 수도

 

범행의 배경을 낱낱이 밝혀내는 것은 물론 총선 국면에서 재발할 여지를 강력히 차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울러 작금의 극단적인 정쟁풍토에 대한 정치권의 치열한 반성과 혁신이다. 지금은 걸핏하면 상대방을 무참히 할퀴는 손톱부터 모조리 잘라버리고, 오염된 정치 환경을 선진적 수준으로 정화할 설계도를 내놓아야 할 때다. 이 참혹한 증오 정치를 멈추지 못한다면 제2, 3의 정치테러 악마는 또 나올지 모른다. 세계적 조롱거리로 추락해버린 이 나라의 정치 수준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안재휘(安在輝)

-언론인/칼럼니스트

-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인터넷신문 미디어 시시비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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