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 微說] 꺾여진 半白에 告하는 참회록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8 06: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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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시비비 편집국장
새벽녘에 징징거리는 쓰레기 청소트럭의 짜증스런 기계음에 그만 잠을 설친 탓에 먼동이 훤히 밝았음에도 쉽사리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오질 못했다.

이런 꼬락서니가 몹시 못마땅했던지 아내는 평소보다 더 유난스럽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는가하면 사용연한이 이미 다한 청소기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성가심을 피운다.

그 다음에 이어질 잔소리 수순은 불을 보듯 뻔하기에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아침운동을 빌미삼아 반지빠르게 아파트 현관 문을 나선다.

하지만 깨재즈하고 게슴츠레한 몰골로는 도저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느라 연신 총총거리며 걸어가는 산업역군들과 감히 맞닥뜨릴 용기가 아직 없는 터라 슬그머니 동네 뒷켠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자 어느덧 다가온 선선한 가을바람이 소스라치듯 뺨을 스치운다. 


호기롭게 나선 발걸음이었건만 젊음을 술과 담배로 탕진한 댓가로 물려받은 저질 체력은 결국 30분 이상의 행군을 허락치 않고,  동네어귀에 잘 꾸며진 공원내 벤치에 걸터앉아 부질없는 상념에 젖는 선에서 마침내 타협하고 만다.

공원 여기저기에 하릴없이 널부러진 각종 소주병과 과자 봉투 등이 어제밤의 치열했던 전투 혹은 화려했던 순간들을 마치 자랑하듯 춤을 추며 까불댄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인지 겨울이 오기도 전에 이미 떨구어진 낙엽들은 이리저리 쏠려다니며 마치 산업화와 민주화의 달콤한 결실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명예퇴직이라는 미명아래 갑자기 내팽개쳐져야 했던 베이비부머세대들의 성급함 혹은 잔망스러움과 묘하게 닮아있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어느 부부의 신박한 아침데이트는 비슷한 또래인 나를 부러움 섞인 질투의 나락속으로 이끌다가 결국엔 아내에 대한 묘한 죄책감(?)에 그들을 억지로 외면하고만다. 그리고는 아침 공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70대 이상 노인들에게 눈길을 옮기고나서야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쉰다.

지팡이와 유모차에 의지한 그들의 꾸부정한 아침산책은 겉으로는 나름 활기띤 풍경을 띠고있지만 실상은 생동감보다는 패배주의의 또다른 초상쯤으로 투영되는 것 또한 어차피 숨길 수 없는 자화상(自畵像)이다.

더욱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공원체육시설내 운동기구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건강과 생명을 마치 구걸하는듯한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또한번 나를 망령된 상상의 나래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젊은 시절에 아무런 대책없이 나태하게 살아온 댓가로 저런 노후를 맞았으리라" "난 결단코 저런 참담한 노인네가 되지 않으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흠뻑 젖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네들끼리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가 넘치는 그야말로 진정어린 아침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듣고있노라면 웬지 서글픔보다는 불과 몇 년 뒤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불길함이 동시에 엄습한다.

마침 그때 내곁을 스쳐지나가던 30대 친구가 흘끗 나를 보면서 '50대 중반에 얼마나 능력이 없었으면 회사에서 쫒겨나 아침부터 하릴없이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닐까' '나는 절대로 저런 볼썽사나운 백수신세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따가운 눈총을 마구 쏘아대는 것 같다.

아뿔싸 그렇다! 그 숱한 젊음의 시간을 철저하게 허랑방탕하게 보내놓고 어느듯 삶과 죽음의 반환점을 돌아선 반백(半白)의 나이에 도대체 그 누구를 탓하고, 그 무엇을 원망한단 말인가. 아니 어차피 인생 자체가 항상 때늦은 한탄과 허망함으로 점철될 뿐일진대 이제와 새삼 지난간 시간들을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있으리오.


이제 더이상 남은 절반의 인생 만큼은 결코 현실도피에 빠져서 회한에 사무친 '참회록'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순간 땅바닥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이 벌떡 일어나 내게로 날아왔다.

그때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직도 '백수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못난 자아를 쥐어박으며 한켠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린뒤 신문기자 명퇴후 새로 시작한 자신의 광고대행사로 아침햇살과 함께 흥얼거리며 출근한다.

 

미설(微說)이란? 일상생활 속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과 사건들을 소재로 다룬 '미니소설'을 약칭한다. 톡톡 튀는 어휘와 문장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스토리 구성은 물론 갈등과 반전의 요소까지 갖추고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 철학적 사유까지 선사함으로써 소설보다 더 미세한 새로운 문학장르 형태로 '미설'은 탄생하게 되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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