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송들이 내게 공간을 내어주며
시절을 맘껏 풀어놓으라고 한다”
한국화가 조병완 화백의 개인전 ‘조병완 전(展)’이 오는 2월 5일(수) 인사동 갤러리 H 전관(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46번지 / 02-735-3367)에서 열린다. 전북 고창 출신인 조 화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조 화백은 그동안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남송미술관, 고양어울림미술관, 전북예술회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공평아트센터 등에 21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단체전에는 총 200여 회 이상 참여한 중견 한국화가다.
조 화백은 친근한 호랑이 그림을 많이 그려왔다. 그의 그림 속에서 호랑이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붓을 잡고 서화를 그리고, 달항아리를 바라보거나 모니터 앞에서 영화를 보는 모습도 있다. 아울러 의
인화한 친근한 모습의 호랑이뿐만이 아니라 까치, 돌부처 등도 등장한다. 소나무와 풍경을 그린 작품도 적지 않다.
이번 전시회와 관련, 조 화백은 다음과 같은 소회(작가 노트)를 밝히고 있다.
‘2006년 무렵부터 등장한 호랑이를 까치와 함께 기원의 뜻을 담아 그리다가 2011년쯤엔 ‘놀러 온 호랑이’로 전환하여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2015년 무렵까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호랑이, 축구하는 호랑이, 전동휠을 타는 호랑이,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호랑이, 모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호랑이 등등 인간 세상에서 즐겁게 노는 호랑이를 그렸다. 그 호랑이를 쉬게 하는 동안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돌무더기나 탑, 민불, 절간이 있는 풍경 따위를 그렸다.
어린 시절 노송으로 우거진 솔숲이 우리 동네의 바로 옆에 있어서 소나무에 올라 새알을 꺼내기도 하고 등성이의 소나무에 매어진 그네를 타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어른이 되어 고향에 갔을 때는 노송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 노송들이 사라져버린 동산은 내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더 크게 했다. 한동안 고향에 가기도 싫었고 가서 동산을 쳐다보면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 서있는 느낌이어서 참으로 쓸쓸했던 것이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어디에서든 노송들을 보면 바로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노송들을 그리며 그림으로 솔숲을 산책하게 된 것이다.
노송들을 그리다 보니 어릴 적 그 노송들의 자태와 뛰어다니던 솔숲이 새록새록 이야기를 한다. 거기에서 자치기도 하고 땅따먹기, 못치기, 딱지도 치고 연도 날리고 팽이도 친다. 더위도 팔고 불깡통도 돌리고 망월이야 하고 외친다. 썰매도 타고 서리도 하고 오곡밥도 얻으러 다닌다. 저 옛일들이 또는 오늘의 것들이 주춤주춤 나오거나 아스라해진다. 그러면 소나무들은 덩실거리고 이거냐 저거냐 따지지 말라고 몸을 흔들어댄다. 이제 노송들이 내게 공간을 내어주며 시절을 맘껏 풀어놓으라고 한다. 노송들의 공간은 모든 것이 가능한 여백으로 나를 맞는다.
- 2020년 1월 조병완
<※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미술과 비평』 2012년 겨울호에 실린
이선영 미술평론가의 관련 평론을 소개한다.>
예술과 삶 사이에서 놀기
가벼운 것을 사랑했지만, 그 자신은 결코 가볍지 않았던 철학자 니이체가 예시했듯, 예술은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삶을 가볍게 하기 위한 선물과 같다. 진정한 선물이란 무엇인가를 위한 것도 아닐 것이므로, 사람들은 가벼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위안 받을 수 있다. 홀가분해짐은 종교 뿐 아니라, 예술의 목적 또한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작가들이 견뎌 내야 하듯, 예술 때문에 삶이 더 무거워진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허접스런 부박함을 숨기기 위해 예술에 돌덩이 같은 것을 매달아 놓은 부류 또한 포함될 것이다. 특히 후자는 지배적 제도와 결탁된 이들의 대표적인 관념적 태도로, 더더욱 동정의 여지가 없다. 전시장에는 오늘도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삶, 또는 예술에 질질 끌려다닌 흔적들로 가득하다. 예술은 값싼 위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줄곧 무겁기만 한 삶과 동어반복일 뿐인 것을 보는 것도 피곤하다. 삶, 또는 예술의 다양한 가치들이 탐색될 때, ‘생존의 처절함’ 이나 ‘예술의 본질’ 만을 강변하는 것은 날기 위한 희망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이러한 환원은 다양한 가치를 일거에 깔아뭉개는 폭력으로, 예술에게든 삶에게든 적대적이다. 예술이 가볍든, 삶이 가볍든, 예술과 삶에는 쉽게 동일시되기 힘든 차이가 존재한다. 미학적인 차원에서 삶이 무겁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기존 질서를 재현하는 요구 때문이다. 재현주의 배후에는 합의된, 또는 강요된 질서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예술 또한 생산의 질서에 복속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차이를 억압하는 동일성이다. 재현주의에 기반한 생산의 질서는 취미와 장식, 교육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문화 시장을 지배한다. 생산의 질서는 기계적 반복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예술가들은 결국 돈과도 거리가 멀어지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난을 겪는다. 일찍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던 조병완은 삶과 예술 사이의 긴장관계를 의식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노는 호랑이는 그러한 긴장을 긴장으로만 남겨두거나 그것을 과장하기 보다는, 통 큰 해학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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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항아리를 완상하는 호랑이_62cm x 77.5cm_장지에 아크릴_2011 |
어릴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지만, 현실의 여러 장벽 때문에 뒤늦게 예술의 세계에 복귀한 그에게 삶과 예술,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변증법은 더욱 각별하다. 삶의 무거움을 겪어내야 했기에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가벼움은 가볍지만은 않은 가벼움이다. 가령 2011년에 열린 ‘놀러온 호랑이’ 전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좋은 소식을 알려 준다는 호랑이와 까치를 등장시켰는데, 그것은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던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는 곧 민족적 전통으로 내려오는 벽사(辟邪)라는 의미조차 내려 놓고자 했다. 호랑이를 그리는 선은 여전히 우직하고 힘차지만, 사실적이고도 주술적인 무거움은 걷어낸다. 마치 어떤 경쾌한 인물이 호랑이탈을 쓰고 노는 듯한 다양한 상황에는 기존의 의미와 형식을 벗어버닌 홀가분함이 있다. 청화백자의 색과 선을 입은 호랑이는 오랜 동료인 까치는 물론, 축구공과 책, 컴퓨터, 붓, 백자항아리, 궁극적으로는 세상 그 자체와 더불어 놀고 있다.
조병완의 놀이는 전통적, 또는 사실주의적 재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형 언어에 힘입은 바 크다. 선은 지시대상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힘차게 살아 움직인다. 어떤 호랑이 등은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무거운 참조대상에 괄호를 치고 대상으로부터 가벼워진 기호들과 더불어 놀지만, 참조대상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추상화된 언어는 늘상 장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그것은 끈 떨어진 가벼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벼움은 쉽게 코드화, 또는 상품화 될 수 있다. 이때 재현과 추상은 그저 외양만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구별되는 것 사이의 긴장이지, 어느 하나로의 환원은 아니다. 조병완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가벼움 또한 지양된 무거움이지, 말 그대로의 가벼움은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전 그림의 무거움과 비교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그렸던 ‘달리는 사람들’ 이나 2000년대 중반까지 그렸던 물감 줄줄 흐르는 섬짓한 남녀 누드들에는 경쟁사회에 내몰린 이들과 욕망을 가진 존재들의 처절함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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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필을 잡은 호랑이_80cm x 100cm_캔버스에 아크릴_2011 |
민화에서 출발했지만, 만화처럼 그려진 호랑이는 인간들보다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삶의 무거움 및 그에 대한 축축한 연민조차도 경쾌하게 걷어낸다. 특히 그의 분야인 ‘동양화’는 전래의 관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으로서 늘상 ‘위기’ 담론의 주역이기도 했는데, 엄격한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그에게 매체의 선택 또한 자유로운 것은 필연적이다. 2011년 전시 ‘놀러온 호랑이’ 전의 작품에는 장지나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렸지만, 동양화의 선과 색이 있다. 호랑이는 익살스럽고 때로는 멍청해 보이기도 하지만, 진정 세상과 놀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험한 존재로 다가온다. ‘어쭙잖은 것이 끄는 힘’을 중시하는 조병완은 이웃집 아저씨가 깎은 듯한 운주사 불상의 예를 든다. 그는 ‘손은 무디지만 절실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 이 엇갈림 속에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설정’ 한다. 절실함은 없고 수사학적 그럴듯함만 있는 형식적 예술도, 절실함은 있지만, 기계적 상투성에 매몰되어 있는 키치도 아니다. 그의 호랑이는 천진함이 영험함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놀이하는 아이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양면성이다. 니이체에게 놀이하는 아이는 초인, 예술가와 동일시된다.
니이체는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망각적이며 새로운 시작, 게임, 스스로 도는 바퀴, 최초의 운동, 신성한 긍정이다... 창조의 게임은 신성한 긍정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귄터 볼파르트는〔놀이하는 아이, 예술의 신 니이체〕에서 〔짜라투스트라〕의 처음에 나오는 한 영혼은 ‘--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낙타였다가 그다음에는 ‘나는 의욕한다’라고 말하는 사자가 되지만, 마지막에 그 영혼은 어린아이가 된다고 인용한다. 예술가적 자아의 원형이 된 니이체의 초인이란 놀이하는 아이, 즉 정신의 세 번째 변형을 성취한 어린아이가 된다고 인용한다. 초인은 거룩한 긍정으로 세계 게임을 즐기는 신적인 아이로서, 게임은 그 자체로는 무용지물이지만, 그 어떤 것에 대한 이상이자, 천진난만한 힘으로 가득차 있다. 니이체는 ‘도덕과 무관하게 변함없고 영원한 순진무구 속에서 생성하고 사멸하는 것, 형성하고 파괴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예술가와 아이들만의 특권이다’라고 하였다. ‘놀러 온 호랑이’에 나타난 조병완의 이상은 놀이하는 아이-예술가-신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말하듯 ‘전략적이고 야망을 가진 예술가’와 거리가 멀다. 그는 억지로 화두를 정하거나 변화를 위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단지 예술과 삶 사이에서 자유롭게 놀고자 한다.
『미술과 비평』 2012년 겨울호 (이선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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