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朴東)-01] 동이족과 한민족의 연계고리 찾기를 위한 새로운 방법론: 씨족과 지명 연구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8 02: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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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박동(朴東) 박사와 함께 하는 ‘동이족과 한민족’

 

 

[그림] 중국 하남성 남부의 광주, 광산, 나산 위치

      

선진(先秦) 시기 중원의 동이족(東夷族)과 한민족(韓民族)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지만 구체적 논의는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근 한·중 인터넷 검색엔진이 발전하고, 구글맵 등을 활용해 자유로운 지명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새 방법론 활용이 가능해졌다. 씨족과 지명을 활용하여 동이족과 한민족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문헌 사료에도 일부 씨족의 동이족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는 스스로 소호김천(少昊金天)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으로 한다고 하였고, 김유신의 비문에도 '헌원의 후예이자 소호의 자손"이다 라고 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백도백과 검색 결과 김씨의 제1원류는 삼황오제 중 한 사람인 소호 김천씨이다. 풍속통의에서는 김씨가 소호 김천씨의 후손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왕세기에서는 소호가 궁상에서 제위에 오른 후 산동성 곡부(曲阜)로 이주했다고 한다. 소호의 자손 중 그의 호 '김천씨'를 간소화하여 성씨로 삼은 것이 김씨이다. 현재 한국의 제1위 성씨인 김씨는 1천만 명에 달하는데, 중국에서 김씨는 전체 인구의 0.3%380만 명에 불과하다.

 

중국내 주요 지명과 씨족들의 이동을 추적해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역사사료가 거의 없는 영산강 유역의 나주(금성) 나씨와 광주(광산) 노씨의 경우 중원의 중심부였던 하남성에 씨족의 지표지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백도백과에 따르면 하남성 광주에는 기원전 2030년 이전에 광국(光國)이 건국되어 있었다. 광국이 멸망한 후 광주라 불렀고, 광주의 치소는 지금의 하남성 광산(光山)현이다. 하남 광산현 바로 옆에는 나산(羅山)현이 있다.

 

지명의 도플갱어를 보는 듯한데, 광주와 광산, 나산은 중국 하남성에서 노씨와 나씨 씨족들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지명도 복제한 결과로 파악되었다. 또한 죽계(竹溪)안씨(순흥안씨 일파)와 죽산(竹山)안씨의 경우 호북성 십언시 죽계현 바로 우측에 죽산현이 있는데, 안씨들의 고대 시조들이 이곳에서 살다가 지명을 본관으로 삼아 한반도로 이주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과 한반도에는 이처럼 복제된 지명이 많다. 낙랑이나 대방, 그리고 갈석산 등도 그주 하나이다. 중국학자 부사년은 이하동서설에서 상나라 박()의 사례를 들어 씨족들이 하·은 시기에 이미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지명과 함께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씨족과 지명의 역사와 이동을 연구하는 데에는 그것들의 여러 특성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씨성이나 지명은 매우 보수적 특성을 갖고 있어 쉽사리 바뀌지 않으며, 바뀐다 하더라도 다시 복원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씨족이 이동할 때 지명과 유물도 함께 이동한다. 중국 은나라의 도읍지 박()은 왕도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서 이동했다. 당연히 수도를 옮길 때마다 권력을 상징하는 정()을 비롯한 유물들도 갖고 갔다. 그 결과 중국에 여러 개의 박이 생겨났다.

 

셋째, 전쟁의 패배 등 정치·군사적 변동으로 인해 씨족이 이동할 때에는 신분상의 변동이 가장 크게 발생할 우려를 갖는 지배계층은 반드시 이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이동세력들이 상당한 자원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승자에게 영토 확장이라는 결과물을 가져다 주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복세력의 쇠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넷째, 씨족들은 나라 이름이나 봉지, 시호, 벼슬, 출생지 등을 본따서 성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나라가 월나라에 멸망하면서 오나라 사람들은 나라 이름을 따서 오를 성씨로 삼았는데, 해주오씨나 동복오씨, 보성오씨, 나주오씨 등은 이들의 후예들이다. 나씨나 노씨도 중국에서 나국(羅國)과 노국(盧國)이 초나라에 멸망한 이후 나라 이름을 본 따 성씨로 삼았다. 고씨는 고구려의 나라 이름을 딴 성씨이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일본에는 백제라는 성씨가 존재했다.

 

씨족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교류한다. 그 이유는 세력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씨족 연구는 전쟁과 같은 정치·군사적 힘의 관계가 급변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씨족들의 이동과 교류는 고대사 전반에 걸쳐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특정 지역에서 이주해왔다고 해서 그 지역인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고대 동북아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민족과 씨족이 생사존망을 위해 치열하게 경합한 지리적 공간이었다. 특히 중원은 고대에 수많은 세력들이 활동한 역사의 무대였고, 한반도나 일본 역시 민족이나 씨족이 이동하고 경합하는 주요 경로였다. 따라서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중원의 씨족과 지명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시리즈 2편에 계속됩니다.

 

 

 

▲ 박동(朴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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