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장르에 인문학 고전인 사기, 시경, 장자 등의 내용과 해석을 곁들여
춘추시대는 제자백가로 불리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념이 범람하던 인문학의 황금기였다. 대신 현실의 정치에서는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갖은 권모술수와 하극상을 일삼았고, 걸핏하면 전쟁을 일으키다 보니 춘추의 역사는 그냥 그대로 소설이 되었다. 어쩌면 이후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특성이 춘추시대에 집대성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 시절에 천하를 쥐락펴락한 다섯 패자를 세상은 ‘춘추오패’라고 부른다. 그들의 삶의 궤적에는 영웅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인생인들 부침(浮沈)과 우여곡절이 없을까? 때로는 기회를 노리면서 스스로 비굴을 감수할 만큼 정치적이기도 하였고, 여인 하나 때문에 천하를 향한 원대한 야망을 꺾는 휴머니스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그런 다섯 영웅의 이야기와 공자(孔子)가 편찬한 시경(詩經)의 내용과 해석을 함께 엮었다. 그래서 ‘소설로 읽는 공자의 시경’이란 부제를 달았고, 이름하여 인문학 소설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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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5개편 33화(話) 466쪽 |
중국의 역사에서 동주(東周)라고 불리는 시절이 있었다. 동쪽의 주나라란 의미이다. 주(周)는 BC 1046년~BC 256년까지 790년 동안 대륙을 지배했던 나라이다. 창업주 무왕은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 등과 함께 상나라(商, 고대 중국의 왕조, 은殷으로도 불린다. 그 유적이 은허殷墟이다)를 멸망시키고 사직을 일으켰다.
건국한 지 275년이 되던 BC 770년에는 흉노족 견융이 침입하여, 왕을 참살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주유왕은 중국 4대 미인의 하나인 포사에게 빠져 있었다. 왕이 사랑한 포사는 이상하게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늘 차가웠고, 우울함이 감돌기까지 했다. 여기를 보고 있어도 먼 곳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같은 여인들의 교태와 간드러진 웃음소리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던 왕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 여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보로 비상사태를 알리는 봉화가 올려졌다. 제후들은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달려왔다가, 오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우왕좌왕 기가 막힌 모습이 되었다. 이를 본 포사는 처음으로 목젖이 보이도록 유쾌하게 웃었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욕심에 마약처럼 자꾸만 봉화를 올렸다. 정작 견융의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봉화를 올려 제후들의 출병을 촉구하여도 군사는 하나도 오지 않았다. 연인을 웃게 만들려고 벌인 이벤트가 운명을 재촉한 것이다. 허겁지겁 달아나는 왕의 수레를 가로막은 것은 ‘선우’라고 불리는 흉노의 족장이었다.
“어라? 흐흐흐… 네년이 포사라는 계집이로구나.”
전쟁 중에도 새끼를 낳고 기를 젖통을 가진 짐승만은 해치지 않는 것이 초원의 법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동물이 생명의 근간인 심장 바로 앞에 젖통을 두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상징적인 일인가! 과연 유목하는 오랑캐답게 먼저 여자부터 챙겼다.
“무엄…, 하구나!”
새파랗게 질린 왕이 더듬거리면서 꾸짖자 다짜고짜 칼집을 세워 명치를 쥐어박았다.
“헉….” 왕은 순간적으로 오줌을 지리면서 정신을 잃었다. 곧이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 넓은 언월도가 왕의 목젖을 갈랐다. 물과 풀을 찾아 떠돌이 유목 생활을 하는 야만족에게 천자에 대한 존경이나 배려는 없었다.
정착민의 생활과 문화를 영유하는 중원의 한족은 죽었다 깨어나도 바람처럼 나타났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초원의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왜일까? 인구로 치자면 중원의 한 줌도 채 안 되는 흉노에게 그토록 오래 부대끼고 쥐여지낸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기동성의 문제라기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웃도 없는, 드넓은 초원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힘밖에 없다. 좋은 방목지와 여자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용사가 되어야 했기에 군사와 백성이 따로 없었다. 싸우는 게 일상이 되어 전쟁과 평시가 구별되지 않은 사회! 비용도 없이 최고의 상비군을 보유하는 것이다. 중원의 국가들은 그들을 오랑캐로 불렀지만, 무시무시한 전투력만은 진저리를 치도록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역사서에서는 특별히 서쪽의 오랑캐 서융을 개 견(犬) 자를 붙여 견융이라고 비하하여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흉노가 막강한 것은 역사가 알고 있다. 훗날 서진하는 흉노의 등쌀에 못 이겨 세계사는 ‘게르만의 대이동’이라는 홍역을 치루었다. 로마가 망했고, 비잔틴이 뒤집히고, 중세 유럽 프랑크 왕국이 주도하는 체제의 토대가 되었다.
몇 달 후 전열을 정비한 중원의 군사가 몰려오자 견융은 일찌감치 달아났다. 오랑캐 족장 선우는 매달리는 포사의 가슴팍을 걷어차고 말에 올랐다. 전쟁이 휩쓸고 간 호경(鎬京, 현재의 서안 부근)은 무참히 파괴되었다. 견융이 또다시 공격해 올 우려도 지울 수 없었다. 유왕의 아들인 평왕(平王)은 수도부터 동쪽 낙읍(洛邑, 현재의 낙양)으로 옮기게 된다. 호경이 수도였던 때까지를 서주(西周)라 하고, 낙읍으로 동천(東遷)한 이후를 동주(東周)라 부른다.
동주는 이후에도 550년을 더 존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왕실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고 제후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천하가 무주공산이라 강자가 약자를 병탄하여 자신의 땅으로 편입시키기 시작했고, 세력을 키운 유력 제후는 천자의 명조차 듣지 않았다. 저마다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천하를 꿈꾸는 지방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후세 사가들은, 동주 550년 중 전반기 300년을 ‘춘추시대’라고 부르고, 후반기 250년을 ‘전국시대’라고 명명했다. 사가들이 ‘동주시대’라는 말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도 왕실의 무력함과 관련이 있다.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공자가 저술한 《춘추》라는 책자가 이 시기의 역사를 싣고 있기에 비롯되었다. 서책 《춘추》는 공자의 나라인 노나라 중심의 역사서로 노은공 1년인 BC 722년부터 BC 481년까지 242년을 기록한 편년체(編年體, 연대순으로 기록한 역사 편찬의 체제) 역사서이다. 마찬가지로 전국시대란 명칭도 전한 말기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이란 서책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주나라의 통치 방식은 ‘봉건제’로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직할지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를 열국에 나누어 다스리는 분권형 국가 형태이다. 이는 혈연관계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관계가 결정되는 ‘친친(親親)’이라는 기초 위에 근거한다. 봉토를 받은 제후는 해마다 공물을 바치고 반란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왕실을 수호하는 책임을 맡았다.
주의 건국자 무왕이 처음으로 봉한 제후국은 140여 개에 달했다. 이후 왕실의 힘이 닿지 않는 변방 국가들에 회유책으로 작위를 주어 제후국으로 삼든지 또는 제후국 스스로가 위성국을 만들든지 하여, 한때는 대소 1,800여 개의 제후국이 난립하던 시기도 있었다. 건국으로부터 270여 년이 지난 동주, 춘추시대에 와서는 왕실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천자와 제후 간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었다. 통치의 기술이 곧 싸움의 기술이던 시절이라, 바야흐로 세상은 난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해관계를 따져 천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자들은 왕실에 조공을 바치고 제후 노릇을 자처하였으나 그럴 필요가 없는 자들은 독자 외교를 펼치게 되었다.
아프리카 초원 마사이 부족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만약에 사자가 없었다면 초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초원이 존재하는 한 누가 되든지 사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세상의 이치에 따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대신 강력한 군사력을 쥔 패자(覇者)가 등장하게 되었다.
최초의 패자가 된 사람은 제나라의 환공이다. 이때는 초나라가 남방에서 흥기하고 강성해져서 중원을 위협하고 있었다. 중원의 열국은 마침 도약하는 동방의 제나라를 중심으로 군사 동맹을 맺었다. 다자간 정상 회담인 ‘회맹’으로 맺어진 국제 협약의 패러다임이 출범한 것이다. 패자는 이런 식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나라의 환공이 제후국들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을 때 가장 자괴감을 느낀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그 힘이 일개 작은 제후국에도 못 미치는 주왕실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환공을 포함한 어느 제후도 감히 왕실의 힘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천자는 하늘 아래 한 사람으로서 경제력, 군사력이 아니라 상징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날 바티칸 시국의 교황 같은 존재였다.
춘추 300여 년에 걸쳐 명멸한 수많은 제후 중에서 강력한 군사력과 명분을 바탕으로 천하를 호령한 다섯 패자가 있었다. 바로 제나라의 환공, 진(晉)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그리고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이다. 세상은 그들을 춘추오패(春秋五覇)라 불렀다.
그들의 삶의 궤적에는 영웅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인생인들 부침과 우여곡절이 없겠는가? 처절한 인고의 세월을 견디기도 했으며, 스스로 비굴을 감수할 만큼 정치적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여인 하나 때문에 야망을 꺾는 휴머니스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인간사란 그렇게 굴곡과 정상, 모순과 우연에 찬 모습이리라.
수많은 제후국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문화의 역량을 키우고 전쟁을 일삼았던 춘추의 역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시대였다.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갖은 권모술수와 하극상을 일삼았던 시절…! 어쩌면 이후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특성이 춘추전국시대에 집대성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훗날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그가 역사서를 쓰게 된 취지를 이런 유명한 말로써 표현했다.
“지나간 사실을 기술함으로 장차 다가올 일을 안다. (述往事知來事, 술왕사지래사)”
흘러간 역사가 미래에도 반복된다는 믿음이다. 어떻게 그런 확신이 가능했을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간의 모래 속에 묻히고 그 형체를 달리할지라도, 끝내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인간의 타고난 천성이다. 내 것 아닌 남의 것을 끝도 없이 추구하는 탐욕과 정욕, 이기심, 정복욕, 투쟁심, 과시욕과 사명감, 이런 DNA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므로 역사와 정치는 시공을 초월하여 꼭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지만, 애당초 천심이란 없다. 하늘은 원래 무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의 물줄기는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 구비 마다 굴곡이야 있겠지만,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과거의 패턴일 뿐이다. 심지어 그것은 과거도 아니다. 단지 그 출연진이 바뀌었을 뿐 오늘 우리 주변에,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어김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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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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