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는 포로가 되고, 영웅은 방랑을 시작하다

진혜공(晉慧公) 4년, 서력으로 BC 648년이다. 그동안 진목공(秦穆公)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진혜공을 손을 좀 봐줘야겠는데 양(梁)나라가 문제였다. 양은 진혜공의 외가의 나라이자 공수 동맹을 맺은 사이이다.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백리해가 나섰다.
지체 높은 여인 셋과 악공 여섯, 좋은 말 이백 필을 준비했다. 따로 황금과 보물을 바리바리 수레에 싣고, 정중한 서신까지 곁들여 양백(梁伯, 양나라는 백작이었다)을 찾았다. 예물 상자에는 금송아지, 진주, 마노 등 진귀한 보석들이 그득했다. 하나같이 장인이 생애를 걸쳐 이룩한 정성과 예술의 산물이다. 탐욕과 허영심이 강한 양백은 꿀꺽 침을 삼켰다. 하서(河西) 땅 문제는 이미 천하가 아는 일이다. 그의 답신은 이랬다.
“우리 양은 진(晉)과는 군사 동맹을 맺은 사이이다. 대놓고 귀국을 도울 순 없다. 다만, 호의를 잘 받았다고만 전하라.”
진(秦)이 출병한 것은 그해 9월이었다. 이오도 대뜸 600승의 대군을 동원하여 결전에 나서는 한편, 부랴부랴 양(梁)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지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양나라 군사는 국경 에 군사를 집결하였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양백은 출전하는 장수에게 명을 내렸다.
“만약 진(秦)이 패하거든 사정없이 패잔병을 도륙하고 전리품을 빼앗아라. 혹시 진(秦)이 이기거든 우리 국경을 지키기만 하라.”
전투는 한원(韓原) 땅 용문산(龍門山) 밑에서 벌어졌다. 용문산은 산서(山西)와 섬서(陝西) 두 성의 경계에 있으면서, 황하를 가로막아 물길을 돌리고 있는 산이다. 당시 격전의 들판은 오늘날 ‘용문호’라는 인공 호수에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전설적인 홍콩 영화 〈용문객잔(龍門客棧)〉의 이름도 ‘용문’을 표방하고 있다. 원래 이곳이 용문(龍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강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어느 일정한 시기가 되면 용문산 밑에 모여 높이뛰기 시합을 한다고 했다. 그때 절벽을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었고, 넘지 못한 물고기들은 다시 물고기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그러고 보면 오늘 진목공(秦穆公)과 진혜공(晉惠公)이 이 들판에서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도 천하의 영웅을 가리기 위한 등용문의 다툼이다. 싸움은 미운 감정까지 곁들어 치열하였다.
그날의 승패는 진혜공(晉慧公)의 객기에서 갈렸다. 어느 한순간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젊은 이오는 신이 났다. 자신이 앞장서서 적진에 다가갔다. 이오를 가로막고 나선 상대는 공손지라는 장수였다. 그는 키가 아홉 자에 원숭이 팔을 가졌다고 해서 수렴마왕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혼철창이 지나는 곳에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먼저 들리고 벼락같은 고함이 뒤를 이었다.
“이오(夷吾)는 목을 늘여라! 진(秦)의 공손지가 여기 있다.”
그는 외모부터 들창코에다 구레나룻이 온 얼굴을 덮고 있었다. 진(晉)나라 말이 먼저 놀라 앞발을 높이 쳐들고 몸을 곧추세웠다. 히이이힝. 엉겁결에 진혜공은 병거에서 떨어졌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나려는데 공손지의 시커먼 말이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이오(夷吾)도 전문 수련가에게 직접 무예를 배운 몸으로서 녹록하게 당할 사람이 아니다. 자세를 잡고 창날을 세워 적의 빈틈을 노렸다.
곁눈질로 이를 본 공손지는 그가 창술의 기본에 얽매인 단계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혼철창을 높이 들어 파화소천세(把火燒天勢)의 자세를 취했다. 횃불을 들어 하늘을 사르는 형국으로 창대를 높이 쳐든 것이다. 자연스레 가슴팍에 허점이 생겼다. 진혜공은 상대의 빈틈을 보고 옳다구나 창을 들어 필살기로 가슴팍을 찔러갔다. 이얍! 그런데 공손지는 도리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엇갈리게 공격을 피했다. 이 초식 특유의 수법이다. 휘청 상체를 뒤로 꺾는 바람에 창날은 허공을 가르고, 대책 없는 상대의 몸이 그대로 공손지와 엇갈렸다. 원래 이 ‘파화소천세’는 허점을 드러내어 상대의 공격을 유발하는 지극히 실전적인 꾐의 초식이다. 공손지가 긴 팔을 내밀어 상대를 덥석 안았다. 원숭이가 과일 하나를 집는 듯 전혀 힘들이지 않고, 진혜공을 뒤따르는 병거 속으로 패대기쳐버렸다.
군주가 사로잡힌 만치 이 전투는 완벽하게 진(秦)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9월에 잡힌 진(晉)혜공은 그해 동짓달에야 겨우 풀려났다. 배상금 조로 양곡과 하서 땅을 바치고 세자까지 인질로 내놨다. 이로써 서북방의 패자는 진(秦)으로 판가름이 났다.
진혜공은 귀국하자마자 문책성 숙청으로 애꿎은 분풀이를 했다.
“누구의 잘못이냐?” 임금의 입술이 한쪽으로 비쭉 쏠리고, 눈이 가늘어지면서 입은 웃고 있었다. 이극을 죽일 때, 가군(賈珺)을 겁탈할 때 지었던 바로 그 웃음이다. 이 젊은 독재자의 입가에 이런 웃음이 떠오르면 뭔가 일을 내고야 만다. 전쟁을 말리던 신하들과 전장에서 달아난 장수의 책임을 물어 줄줄이 목을 벴다. 그의 정치는 공포와 문책의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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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진혜공 이오는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 진헌공의 꿈을 꾼 날이었다. 꿈속에서 아버지의 눈은 계속 이복형 중이에게 가 있었다. 불쾌하고 찌뿌둥하여 다시 더 잠을 청할 생각도 없었다. 심복 여이생을 불렀다.
“중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여이생이 임금의 말뜻을 모를 턱이 없다. 동생이 군주가 되었으니 이복형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중이가 책나라에 머문 지 어언 12년입니다. 들어내 놓고 죽이기보다 자객을 써보시죠!”
이런 내용은 곧바로 대부 호돌에게 알려졌다. 그의 두 아들, 호언과 호숙이 중이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 시절 중이의 처지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후계 다툼에서 밀려나자 따르던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이 줄어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어설픈 객기를 부린 탓이다.
이날 모처럼 위수(渭水) 강변을 산책하던 중이와 호언 앞으로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강주에서 호돌 대감의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들인 호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임금이 공자를 암살하려고 자객을 보낸단다. 차라리 타국으로 피하도록 해라.”
중이의 가슴속에서 서글픈 분노가 일었다.
“가족이 다 이곳에 있으니 이제 여기가 내 집이다. 평생 도망만 다닐 것인가? 차라리 여기서 조심하면서 사는 건 어떤가?”
“큰 뜻을 품은 공자님이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 되겠습니까? 결코 자객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그렇다면 어디로?”
“당금 천하에 방백 제환공이 가히 영웅이라 할 만합니다. 우선 그에게 몸을 의탁하시고 기회를 보도록 하시지요.”
이때가 제환공 즉위 40년, 관중과 습붕이 죽고 포숙아가 재상 자리에 있을 때였다. 그날 밤 중이가 아내 계외에게 말했다.
“본국에서 나를 암살하려고 자객을 보냈다고 하오. 나는 어디든지 떠나야겠소. 다행히 책후가 내린 땅이 있으니 당신은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키워주시오. 넉넉잡고 앞으로 20년만 기다려주시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데로 재가하시오.”
중이의 나이, 어느덧 쉰다섯이다. 다시 또 20년이 흐른다면 분명 그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죽을 때까지는 기다려주시게’라는 유머 섞인 애정의 표시이다. 계외가 쓰게 웃으며 말하였다.
“20년 후에는 제 무덤에도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농담일랑 그만하시고 어서 떠나세요. 첩은 돌아오실 날만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성공하시길요!”
부드러운 산골바람 불더니 습습곡풍(習習谷風)
이내 구름 끼고 비가 내리다 이음이우(以陰以雨)
힘써 한마음 돼야 하는데 민면동심(僶勉同心)
화를 내면 안 되지 불의유노(不宜有怒)
순무 캐고 무 캘 땐 채봉채비(采葑采菲)
맛없는 밑 부분만 보지 마세요 무이하체(無以下體)
그때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 덕음막위(德音莫違)
그대와 죽도록 함께 살리라 급이동사(及爾同死)
공자의 시경 국풍 중 패풍 편 곡풍(谷風, 산골바람)
중이는 조쇠, 호언, 호모, 선진 등 따르는 10여 명과 함께 새벽에 야반도주하였다. 길 떠나고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보니 재물을 실은 짐수레가 사라지고 없었다. 수레를 끌던 사람이 돈 될 만한 물건을 챙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일행은 졸지에 노자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젊은 선진(先進)이 말고삐를 잡았다. 중이는 수레를 끄는 그에게 농을 건넨다.
“선진아! 틈틈이 병서를 읽어라! 내 비록 이렇게 떠돌이 신세로 수레꾼에게도 버림받았지만, 장차 방백이 되어 천하를 호령할 것이야. 아무래도 너는 대장군 감이다.”
제나라로 가는 여정에 위(衛)와 정(鄭)이 있었다. 일행은 문전 박대를 당해 도성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였다.
“본국에서 추방된 죄인을 성안에 들일 이유가 없다!”
터덜터덜 걷는 중이를 호언이 위로한다.
“용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한갓 물뱀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께서는 만사를 꾹 참으십시오.”
오록(五鹿) 땅을 지날 때는 백성들이 먹거리라면서 삭아 빠진 물푸레 바가지를 내밀었다. 바가지 안에는 자갈돌에다 곰삭은 똥거름이 담겨 있었다. 영락없는 비렁뱅이 거지들이 공자님! 주군! 하는 게 꼴같잖아 놀려먹는 것이다. 이런 수모까지 겪으며, 일행은 드디어 제나라 임치에 도착하였다.
수문장으로부터 진(晋)의 공자가 알현을 청한다는 보고를 받고 제환공은 반색하였다. 그는 진즉부터 중이의 소문을 듣고 있었다. 원래 이 대륙의 사람들은 희한하고 신기한 대상에 별스레 관심을 가지는 습성이 있다. 중이의 가슴뼈가 통뼈라느니, 눈동자가 둘이니 하는 소문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진나라 공자 중이라고? 인물이 출중하다고 소문이 난 그 사람이 아니더냐? 멀리서 찾아온 인물이니 소홀함이 없도록 대접하라.”
중이를 만난 제환공이 대뜸 물었다.
“공자는 우리 제(齊)에 왜 오셨는가?”
“방백께 몸을 의지하고 기회가 된다면 중원의 평화를 위하여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빈손으로 떠도는 처지인데도 중이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고, 경박하거나 비굴하지도 않았다. 단박에 중이의 됨됨이를 알아본 제환공이 환영연을 열었다.
“공자는 가족을 데리고 오셨소?”
“한갓 도망자의 신세로 어찌 가족을 데리고 다니겠습니까!”
뜬구름 같은 처지인데도 중이의 말투는 유쾌했고 부드러운 미소까지 차분했다. 제환공이 위로하였다.
“공자는 아직 젊은 몸인데 가까이 시중드는 여자가 없어서 되겠소? 내 마땅한 여인을 찾아보리다.”
질녀 하나를 양딸로 삼아 중이와 짝 지워주고, 따로 백여 호의 식읍도 내렸다. 과연 명성대로 중원의 방백은 오지랖이 넓다.
그 후 2년이 채 못 되어 환공은 세상을 떠났다. 이제 중이의 뒤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진 셈이다. 후계자 문제로 정국조차 시끌시끌했다. 그런데도 중이는 임치를 떠나려고 들지 않았다. 새로 얻은 젊은 부인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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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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