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11화 아버지의 여인을 탐하는 군주들 (2)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8 09: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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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약속을 버리고, 욕망은 금기를 넘었다
왕좌를 얻은 자, 끝내 아버지의 그림자를 닮다

 

 

 

()의 분란은 열국의 비상한 관심을 불렀다. 이웃 진()나라 임금 진목공(秦穆公)도 신하들과 이 일에 대해 대처 방안을 숙의하였다. 이 진()이야말로 380년 후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나라이다. 원래 진()은 대륙의 서북단, 견융이 번성했던 초원에서 일어난 국가이다. 이 시절에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 건숙, 서걸술 등 뛰어난 인물을 등용하여 나라를 크게 일으켰다.

신분보다 능력으로 출세의 자유를 허락하니 또 다른 이득이 생겼다. 자국의 현실에서 밀려난 많은 인재가 모여들어 외인부대를 이루었다. 실력을 키운 진()은 목() 땅을 지배하던 강융(姜戎)을 멸하고 내친김에 서융(西戎)까지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런 진목공이 호시탐탐 이웃 나라 진()의 변란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외세의 개입이 있을 조짐이다.

우선 외교를 맡은 건숙이 사신으로 나섰다. 그는 책나라로 가서 중이를 만나서 도와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하는 진()의 속셈은 무엇인가? 중이는 의심이 생겼다. 이때 중이의 곁에는 조쇠, 호언, 위주 등이 있었다.

어쨌거나 진()이 우리에 대해서 흑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오 공자와도 접촉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이의 뜻은 정해졌다. 아직은 현실의 권력 투쟁과 정치에 나설 준비가 덜 되었다.

고마우신 말씀이나 부왕이 별세하시고 비통한 마음 뿐입니다. 어찌 딴 생각을 입에 담겠습니까?”

중이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애통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심사숙고라고 말할 때 쓰는 생각할 고()’ 자가 그렇다. 이 글자의 원래 뜻은 죽은 아비 생각할 고이다. 왜 하필 죽은아비일까? 아버지의 사랑은 그가 죽은 뒤에야 알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건숙은 중이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말속에 진정이 있었다. 그길로 양나라로 찾아가 이오(夷吾)에게도 조문하고 같은 제안을 하였다. 중이와는 달리 이오는 스스로 더욱 적극적인 거래를 요청했다.

만약에 진()이 도와주신다면 하서(河西)의 다섯 성을 드리겠소.”

하서! 즉 황하 서쪽의 다섯 성은 마흔 고을도 넘는 땅이다. 사자로 온 건숙에게는 따로 황금과 보석을 선물했다. 이오는 이미 국내의 실력자인 이극(李克)에도 줄을 대고 있었다. 분양 땅 백만 평을 약속하고 있었다. 이런 건숙의 보고를 듣고 진목공이 말했다.

중이가 이오보다 진실한 사람이구나. 중이를 지원해야겠다.”

이오는 하서의 다섯 성을 헌납하기로 약조하였나이다. 이오를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대부는 황금을 받고 이오의 편이 되었는가?”

주군께서 진()의 군주를 세우시려는 것이 진정 진()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일입니까?”

임금은 크게 웃었다.

하하고지식하구나.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건숙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런 거래의 결과로 이오는 진목공의 지원을 받아, 군위에 올랐고 진혜공(晉惠公)이 되었다.

 

그런데 진혜공은 막상 즉위하고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대부들이 한사코 반대합니다. 언제고 때가 되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이런 답변이야말로 머리에 뿔이라도 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진혜공(晉惠公)은 다른 일로 바빴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이복형 중이의 존재였다. 국내에 있는 친중이 세력부터 뿌리를 뽑아야 했다. 먼저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대부 이극부터 처치했다. 세자 해제를 죽였다는 모반의 죄였다. 이극의 출신지 하북은 원래 중이와 가깝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데, 출신 지역만 한 게 없다. 이제 대권을 잡은 이상 정리할 일만 남았다. 이극은 임금의 심복 여이생이 무장 군졸을 풀어 자신의 집을 둘러싼 뒤에야 사태를 깨달았다. 여이생이 조소를 날리며 다가왔다.

주군의 명으로 왔소이다.”

한때는 그도 이극의 수하였으나 이제는 처지가 바뀌었다. 이극은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애써 참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셨소?”

그대로 전할 테니 들으시오. 과인은 그대와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경은 모시던 세자를 죽였다. 그런 신하와 함께 과인이 정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알아서 조치하라.”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죽으라는 명이다. 날 선 도끼를 든 살수가 이극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북 제일의 대부는 끌려가는 돼지처럼 비명을 질렀다.

살려 주시오. 차라리 외국으로 나가 살겠소. 살려만 주시오! 이 못된 놈들이, 약속은 간 곳 없고 사람부터 죽이는구나.”

삽시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임금은 살육과 숙청을 수시로 자행했다. 특히 하북 출신에 대해서는 철저한 엄벌주의로 일관하였다. 순식간에 불안과 회의, 낭패감이 팽배하였다.

또 다른 심복인 극예가 임금을 찾았다.

주군! 강주성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이극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궁금할 것도 많다. 국정을 농단한 자이다.”

백성들의 관심을 돌려보시지요. 지난 날 세자 신생은 여후의 모함을 받고 죽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차제에 신생(申生)의 묘를 개장하고, 시호를 내리시어 원혼을 위로하십시오.”

갑자기 신생이라니? 뜬금없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그거야! 사전에 군불을 때면 될 것입니다.”

세자의 죽음을 조사하고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임금이 단호한 어조로 결론을 내렸다.

신생 세자의 묘를 개장하여 새로 장사 지내고 시호를 올리라!”

신생은 공세자(恭世子)로 추존을 받았다. ()와 경()을 두루 갖추었다 하여 공경할 공()을 시호로 삼았다.

그런대로 급한 일을 처리한 진혜공은 아버지의 후실인 가군(賈珺)의 거처를 찾았다. 원래 가군은 가()나라 공주였다. 지난날 제강이 여자아이를 낳고 죽자, 진헌공이 가군에게 아이를 맡겨 키우게 했다. 그때의 아이가 자라서 진()나라 목공의 부인인 목희(穆姬)가 되어 있었다. 목희는 남편의 도움으로 귀국하는 이오에게 가군을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했다. ()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나자 그나마 목희의 부탁이 생각나서 가군을 찾은 것이다.

 

▲AI 생성 이미지

 

가군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당시는 여자 나이 서른을 초로로 여겨 아예 상대 못 할 여인으로 여겼으나, 가군의 어디에도 나이 든 태가 없었다. 오히려 여인의 매력이 한창 피어나는 때였다. 군주가 온다는 기별에 전각의 주인이 달려 나왔다. 서둔 탓에 흰 목 위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 있었다. 오후의 햇살에 비친 여자의 옆얼굴 선이 잘 빚은 도자기처럼 유려했다. 여름 적삼 속의 젖가슴은 한눈에 보기에도 도툼했고, 호리호리한 실루엣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은 매우 부드럽고 따뜻하리라.

원래 가()나라는 사향으로 유명하다. 성숙한 여인의 체취까지 뒤섞여 복합적이고 매혹적인 냄새가 전각 안에 그득하였다. 죽은 진헌공이 즐기던 향기였는데, 이제 주인은 가고 냄새만 남았다. 남자는 울컥 치미는 욕심이 있어 한 걸음 여인에게 다가섰다.

흐흐흐, 나라 안에 있는 것은 다 과인의 소유라, 부인은 나를 거역하지 마시라.”

말끝에 다짜고짜 여자의 묶은 머리를 거칠게 풀어버렸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머리칼이 얼굴을 거지반 가리자 그는 훨씬 홀가분해졌다. 눈길이 가는 젖가슴부터 더듬고 헤집기 시작하였다. 야리야리한 자태와 달리 가슴은 풍성했고 드러난 속살은 희다 못해 맑은 도자기처럼 푸르렀다. 과연 여자란, 겉보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드러난 가슴을 가리기에 바쁘다. 크흠, 군주가 헛기침 신호를 주자 숨죽이던 시녀들이 분분히 자리를 피하였다. 그러면서 핼끔핼끔 서로들 웃고 있었다. 남녀의 일은 단둘이 두면 저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제수에 물결 출렁이고 유미제영(有瀰濟盈)

까투리 우는 소리 들리다 유요치명(有鷕雉鳴)

물결 출렁여도 수레의 축 젖지않고 제영불유궤(濟盈不濡軌)

까투리 울며 장끼를 찾다 치명구기모(雉鳴求其牡)

 

공자의 시경 국풍 중 패풍 편 포유고엽 (匏有苦葉, 박의 마른 잎)

 

마치 짝 잃은 까투리가 혼자 노니는데 다짜고짜 수꿩 장끼가 덮쳐 누르는 격이다. 여자가 자신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느낀 사내는 순식간에 폭군으로 변했다. 아버지 진헌공에게 시위라고 하듯이 마음먹은 대로 여자를 깔아뭉갰다. 그녀는 순하게 엎드려서 남자를 받았다. 경악과 공포로 사시나무 떨 듯 하였으나, 어느 순간에는 슬쩍 허리를 들어 조바심치는 사내를 거들기도 하였다. 그런 충격도 잠시, 한 번 두 번 사내의 동작이 거듭되자 남자의 손길을 탄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결국 참았던 신음이 숨결 따라 뱉어지고 말았다.

, 흐흥.’ 이를 깨물고 앙다물수록 소리는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두려움과 본능이 섞인 야릇한 신음과 함께, 그녀도 자신의 시야를 가린 머리칼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잠시 후 일이 끝나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오의 몸을 받을 때 잠시 스쳐 갔던 진헌공의 기억이 있었다.

장차 진() 부인을 무슨 낯으로 볼까!”

본인이 키운 목희(穆姬)를 말함이다. 이오는 헤벌쭉 웃었다. 조금 전 암고양이 같이 꺽꺽대던 여자의 신음소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흐흐흐, 부인은 마음을 쓰지 마시라. 선군도 서모 제강을 사랑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이제부터 그대는 가()나라의 향기로 처소를 꾸미고 과인을 기다려라.”

임금의 말은 어느새 애첩을 대하는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저자거리에서는 이런 말들이 나돌았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말해 뭐해? 피는 못 속인다니까.”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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