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표돌 선생,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으로 재조명

안진영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2 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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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김표돌 선생 후손 발굴 사업 착수
러시아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독립군 조직 및 교육 주도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의 핵심 인물로 활약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후손 찾기 및 자료 발굴 지속

러시아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한인사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부대 통합에 앞장선 김표돌 선생의 항일무장투쟁 생애가 재조명된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28번째 인물로 김표돌 선생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김표돌 선생은 연해주 아즈미 출신으로, 러시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군을 조직하고 군사교육을 실시했다. 1920년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대규모 학살과 탄압을 자행한 '4월 참변' 이후 이만군대 사령관으로서 부대를 이끌고 하바롭스크 방면으로 이동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김표돌 선생이 안경억, 이다물 등과 함께 한인사관학교를 설립한 1920년대 옴스크 시가지.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옴스크에서는 안경억, 이다물 등과 함께 한인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노보시비리스크에는 간이군사훈련소를 설치해 독립군 간부와 병력을 양성했다. 1921년 2월에는 간도지역 독립군의 자유시 주둔지를 마련하기 위한 총군부 대표 교섭위원으로 극동공화국 정부와 협의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사할린의용대 인수를 위한 검사위원으로 파견돼 독립군 부대의 통합과 조직 정비를 맡았다.

 

자유시참변 과정에서 러시아 적군의 포로가 된 그는 이르쿠츠크로 이송된 뒤 러시아 제5군단 산하 한인여단에 편입됐다. 이후 독립군 조직을 보존하기 위해 병력을 극동지역으로 이동시키려다 체포돼 이르쿠츠크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23년 처형됐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후손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선생은 독립군 양성과 부대 통합, 조직 보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한 군사 지도자”라며 “국내외 고려인 사회를 대상으로 후손 찾기와 관련 자료 발굴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표돌 선생의 생애는 독립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의 헌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후손 발굴과 자료 발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그의 업적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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