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선열들이 ‘통곡’할 나라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9-15 04: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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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 판치는 사회, 진정한 ‘광복’·‘독립’ 아직 멀었다
‘매국 사학’ 두둔하는 문재인 정권, 역사 정체성을 묻는다

안재휘 대표

표의문자인 한자로 구성된 한문은 다른 문자에 비해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 등을 써서 은밀한 뜻을 드러내는 문장을 작성하는 데 유리하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문서에 적힌 문자나 내용이 황제나 체제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하여 해당 문서를 쓴 자를 벌하고 숙청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문자의 옥(文字-)’이라고 불렀다. 대개 경우 억울하게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에게도 군사독재 시절 금서(禁書)목록이 있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사·1974)는 미국 중심 세계관에 맞서 비판적인 시각을 선보였다고 불온서적딱지를 붙였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풀빛·1984)은 군자동 섬유 공장, 청량리 공사판 등에서 일하던 스물일곱 살 현장 노동자인 저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혹한 노동 착취의 현장을 실감나게 묘사한 시집인데, 금서목록에 들어갔다.

 

한때는 금서목록에 들어간 책들이 암암리에 엄청난 양이 팔리기도 했다. 굳이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헌법 조문을 들이댈 까닭도 없이 금서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가 속박되던 암울한 시대의 표상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시대에도 비슷한 통제가 일어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사학자들이 쓴 연구논문에 대해서 출간금지라는 해괴한 조치들을 내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교육부와 한중연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기관인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이하 한가람)는 교육부와 한중연이 출간금지 조처를 내린 4종의 역사학 연구 저서의 출판을 강행했다. 한가람이 출판을 강행한 역사 연구서는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비판-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 저자 이덕일, 이병도·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 저자 김병기, 독립운동가가 바라본 고대사. 저자 임찬경, 한국 실증주의 사학과 식민사관. 저자 임종권등이다.

 

이들 4종의 연구서는 당초 한가람이 한중연 한국학진흥사업단의 공모 출판사업에 응모해 채택된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 연구라는 주제의 연구결과물 15종에 포함돼있다. 그 가운데 주로 식민사학동북공정에 관한 연구결과인 4권에 대해 한중연과 교육부가 뒤늦게 불합격 처리해 출간을 금지하고 연구비 환수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한가람은 출간을 강행한 4종의 저서들을 전격 공개하고 교육부와 한중연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기관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교육부와 한중연의 탄압과 횡포를 낱낱이 폭로하면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안병욱 한중연 원장에게 보내는 3개 항의 공개질의도 포함됐다.

 

식민사학,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려고 개발해낸 침략 역사관

 

성명서는 교육부와 한중연은 자신들을 조선총독부 학무국으로 여기는지,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조선총독부 경무국으로 여기는지 이런 저서들에 대해 출간금지 통보를 하고 연구비를 환수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등 횡포를 일삼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한가람 성명서는 또 한중연 원장 안병욱, 교육부 장관 유은혜의 처사는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피어린 항일독립투쟁사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조처라고 비판하고 나아가 촛불 혁명으로 태어나 적폐청산을 역사적 과업으로 삼아온 문재인 정부가 일제의 간악한 침략 사관의 잔재인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정권임을 의심케 하는 중대한 반민족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식민사학(또는 식민사관)은 일제가 우리 역사를 별 볼 일 없는 역사로 격하시키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동원해 은밀히 개발해낸 침략의 역사관이다. 일본 군부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진 식민사학은 해방 이후 남한에 민족사학이 소멸되는 불행한 사건들을 틈타 주류사학의 막강한 자리를 꿰찼다. 그들은 제일 먼저 대학 강단을 장악해 수십 년간 독점하면서 사학계에 대계를 이루어 제대로 된 역사학의 발전을 철저히 가로막아 왔다.

 

양심 있는 사학자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배신감·박탈감 상당

 

민족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위정자들이 그들에게 놀아나 역사를 그르친 일 또한 참담하다. 대표적인 비극은 말도 안 되는 일본의 거짓 역사를 추종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정사(正史)로 만들어 백제와 신라의 역사를 말살한 일이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찬란했던 고대사를 모조리 지워버리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도 호응하는 등 식민사학자들의 학문적 죄악과 적폐는 형언키 어려울 지경으로 쌓여 있다.

 

단지 다수(多數)라는 이유로 오류투성이인 식민사학이 우리 역사학계를 모두 장악해온 긴 세월이 빚어놓은 우리 국민의 어리석거나 비뚤어진 역사관은 실로 막대한 문제를 품고 있다. 식민사학의 출발점이 우리 국민을 3등 하류 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가람을 비롯해 그릇된 사학을 바로잡으려는 양심있는 사학자들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배신감, 박탈감은 상당하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으로서 적폐를 청산하여 사학계의 비정상정상으로 돌려놓을 줄 알았던 문재인 정권이 식민사학을 청산하는 일엔 도무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성의를 보이기는커녕 이번 출판금지 사태처럼 식민사관동북공정에 대한 연구를 원천봉쇄하려고 하는 횡포까지 벌이고 있으니 끔찍한 노릇인 것이다.

 

강단사학계의 횡포와 오류, 신속·철저히 규명되고 광정(匡正)돼야

 

이러고서야, 어디 이 나라에 진정한 광복이 오고 독립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나. 문재인 정권에 묻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독단과 행패가 사학계와 사학 관련 기관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도대체 이 정권의 역사 정체성은 무엇인가. 민족정기를 바꾸겠다고 큰소리치며 집권한 정권이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순국선열들이 통곡할 기막힌 일 아닌가.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진보-보수의 문제 영역이 아니다. 이번 교육부와 한중연의 출간금지소동은 결코 작은 일일 수가 없다. 이렇게 특정 학설에 함몰된 사학 권력자들이 힘 있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학문의 자유를 가로막는 일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이 나라에 또 어떤 독재적 비극이 일어나 점점 더 암울한 나라로 만들어갈지 모른다. 강단사학계의 횡포와 오류는 신속히, 그리고 철저히 규명되고 광정(匡正)돼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부터 오도된 역사 인식을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매국적 식민사관에 찌든 언론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공직자들 또한 누군가 잘못 닦아놓은 역사학에 길이 들어 정말로 바로잡고 가야 할 가치관을 못 찾는 모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가짜가 진짜를 탄압하는 꼴이 된 역사학계의 어불성설(語不成說) 부조리에 한탄이 절로 난다.

  <본지 발행인/대표> 


교육부와 한중연이 출간금지 조처를 내린 역사학 연구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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