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생각을 끊으면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킬 수 없다
쓸모 없음 마저도 쓸모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무용지용(無用之用)'
'욕심'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처사
<여우숲 생명학교> 김용규 교장은 삶에 필요한 단 두 가지의 능력, 더 나아가 온전한 삶을 사는 데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능력만 갖추면 족하다고 했다. 나도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 → 생존 능력
-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 갈 힘" → 사랑 능력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란 '생존 능력'이다. 혼자 스스로 감당하는 거다. 남의 도움을 최소화 하는 일이 그 힘에서 나온다. 거기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 시키는데 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무엇인 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욕망을 끊고, 생각을 끊으면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 시킬 수 없다.
이를 위해, 소유를 최소화 하고, 자신을 자발적 가난 상태에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간절해야 우리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에서 욕망과 생각이 나온다. 욕망과 생각은 같이 가야 한다. 생각을 통해 나의 욕망을 의미가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쓸모 없음 마저도 쓸모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이를 우리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 한다.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이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멋대로 들락날락하는 의식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힘이기 때문이다. 끊어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라, 멋대로 들락날락하는 의식의 습관이다. 이 멋대로 들락날락하는 의식을 자신의 의도와 목적과 방향에 맞춰 질서 잇게 통제할 수 있으면, 인간은 비로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하는 거 쉽지 않다. 우리는 습관에 지배 받기 때문이다.
생각도 의식의 활동인데, 의식의 활동을 일정한 목적과 방향에 맞게 지속하는 것이 생각이다. 이 생각을 통해 우리는 욕망을 '재배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건너 가기'를 해야 한다. 어떻게? "쾌락에서 지성으로, 중독에서 영성"으로 건너가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외부의 유혹에 경도 된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그 마음인 '본심', 즉 '제 정신'이다. 본심은 성배와 같아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지 가만히 추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 할 때, 슬그머니 등장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다. 반면, '욕심'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처사다. 그것은 배가 부르면서도 자신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게걸스럽게 먹으려는 식탐과 같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자신이 배부른지 알면서도 과도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욕심(慾)이란 한자가 그렇다. 깊은 골짜기(谷)에서 끝없이 흘러내려 오는 물을 자신의 작은 입을 벌려(欠)다 마셔보겠다는 마음(心)이다. 욕심이란 사실은 자신을 매일 값싸게 만드는 마음의 마약이다. 이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자신에게 온전하고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 된다. 인간은 모두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다. 바로 '본심'이고 '제 정신'이다.
'제 정신', 즉 '본심'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웅장한 나무의 뿌리와 같다. 저 큰 나무가 언제나 중력을 거슬러 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수 있는 이유는, 그 높이와 너비에 어울리는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본심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마음, 참마음이다. 인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의 발굴과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은 이 본심을 정성스럽게 발굴하는 체계다. 이 본심은 이웃과 심지어는 원수 와도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하기 때문에 인류, 자연, 그리고 우주처럼 보편적이다.
가을이 점점 짙어 가고, 낮의 해 길이도 점점 줄어든다. 그 만큼 내 머리칼도 성글어지고, 내 그림자도 엷어 진다. 그래도 '제 정신'을 찾으려고 애쓴다.
가을/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 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 지는 내 그림자
인간은 욕구에 빠지는 것보다는 욕망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데 좋다. 욕구는 생존에 직접 필요한 것들, 즉 먹고, 자고, 입고, 배설하는 등 당장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다. 반면 욕망은 자유나 창의나 성취감이나 자존감 등과 같이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다음, 아니 너머의 것들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승부는 누가 욕구에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누가 욕망에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가로 갈린다. 목숨을 유지하는 데는 욕구가 필요하고, 삶을 승화하는 데에는 욕망이 필요하다. 삶이 지지부진하고 오리무중에 빠진 것 같다면, 아마 "큰 욕망(大發原)"을 품지 않아서 일 것이다. 우선 욕구 차원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깨워서 "큰 욕망"을 품어라.
욕망을 끊어서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쪼그라들면 어찌 자잘해 지지 않겠는가? 자잘해 지고도 마음에 찰기가 돌고 생기가 돋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 아래에 않아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이다. 사는 것처럼 살다 가고 싶다면,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더 잘 살고 싶다면 잡념을 끊고 생각하라.
욕망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자동적으로 에피쿠로스를 소환한다. 그가 말한 불행의 원인, 일상의 쾌락이 아닌 불쾌함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 그리고 무절제한 욕망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네가지 치료법은 다음과 같다. (1)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그 중 오늘은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는 말을 다시 소환한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으로 의식주(衣食住)이다. 배고픔 목마름, 잠 등이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이 이에 해당한다.
2.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지만,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성적인 쾌감을 충족시키는 일이 그 예이다. 이런 행위들은 자연스런 욕구이지만, 의식주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조절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
3.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부자연스럽고 동시에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과도한 돈, 권력, 명예, 핸드폰, 자동차, 고급 음식, 사치품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약간의 불편을 느끼겠지만,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들도 아니다.
생존에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쉽다. 반면 명예와 권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선한 것은 단순하고 검소한 음식과 거주지이다. 이런 것들은 부와 권력과는 상관없이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더 좋은 음식과 거주지를 원한다면 탐욕이 작동한다. 탐욕은 필요 없는 욕망과 걱정을 야기하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니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니 나는 행복하다. '얕은 처세'에 현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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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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