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이 많아서 말이 많고
....
안개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파랗게 돋아난 시금치
....
그래,
이 시린 겨울의 온기는 너희들 것이다
[시]
실눈 뜨다
이성직
안개는 바싹 마른 고춧대를 밟고 품을 벌린다
세월 덧없음에 사지를 던져버린 고구마
그 줄기는 징검다리가 되고
낮게 날며 중얼대는 솔개
떼를 지어 짖어대는 까마귀
초겨울 일상은 보이듯 보이지 않게 분주하다
변덕 심한 철새가 모이는 곳은 난장이다
보잘것없는 상품들은 색을 잃고
나불대는 거리에서 눈을 부라린다
단상 내려치고 게거품 물며 발광하는 지랄이라니
위선의 낯짝은 두껍디두꺼워
와중의 싸움에서 이긴 놈은 정의가 된다
두들겨 맞은 놈이 많을수록 재미를 얻는 놈은 따로 있다
구경꾼이 많아서 말이 많고
저만 살겠다는 발길질은 난무해서 헛발질투성이다
참기름 맛이 나야 하는데 가슴 구석 시린 것은 무엇인지
안개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파랗게 돋아난 시금치
이제 막 잠을 깬 마늘
도드라진 흙을 털고
양파가 실눈 뜨며 웃는다
그래,
이 시린 겨울의 온기는 너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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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작은 피사체 속에서 섬세한 필치(筆致)를 구사한다.
텃밭의 작물들에게서 심오한 철학을 발견하고
사람의 이기심과 탐욕을 풍자하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는 사람의 오감을 둔화시키고 좌절시킨다.
이 둔화된 매체의 홍수 속에서 추운 겨울을 감내하며 올라오는
작물들을 통해 신선한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한 시절을 보내고 새로운 생명에 눈뜨는 것은 지극한 일상의 흐름이지만
여기서 시인은 생명의 원리, 신의 섭리를 깨닫는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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