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거나 취소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드디어 관점을 바꾸고 지금 일어난 일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마음의 거스러미가 일지 않게 하려면, 필요할 것 같은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면 삶이 평온하다.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이다. 일상에서 최대한 선택의 종류와 순간을 줄이는 것이다.
'거스러미'는 손톱이 박힌 자리 위에 살갗이 거슬려서 일어난 보풀 같은 것을 말한다. 나무의 결 같은 것이 얇게 터져 일어나 가시처럼 된 부분 또한 거스러미라고 한다. 문제는 마음에도 거스러미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마음에 삐죽 돋아나 따끔따끔 마음이 쓰이고 종국엔 내 삶의 매끈함을 해친다. 작은 일에 예민한 사람으로 사소한 사건에도 마음이 제 리듬을 잃고 요동치는 것이다. 안달하는 성미이다. 초조해하고 조급한 성격이다. 세상에 될 일을 다 그렇게 된다. 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거스러미는 제거해야 한다. 그 거스러미가 자꾸 신경 쓰인다.
홍인혜 시인은 어느 글에서 '신경 쓰다'와 '신경 쓰이다'의 차이를 말하였다. '신경 쓰다'는 나의 의지와 닿아 있다. 내가 자의적으로 내 신경을 쏟아 그것에 관여하는 것이다. 반면 '신경 쓰이다'는 불가항력적이다. 마치 '가렵다'거나 '마렵다'와 비슷하다.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신경 쓰게 만든다. 가렵고 마려운 것이 의지의 문제는 아니듯이, 뭔가가 신경이 쓰이는 것 또한 우리의 의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딘가가 심각하게 가려운데 긁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엔 가려움이 심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 점점 다른 부위에 자극을 줘서 신경을 분산시키려 노력하면서, 가려움이 수그러들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음의 거스러미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집착적으로 마음을 기울이다, 지쳐 나가떨어져 다른 것에 신경을 분산시켜 기왕의 생각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다 보면,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거스러미는 무디어지고 순해지고 급기야는 살에 편입되는 순간이 온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마음의 거스러미가 일지 않게 하려면, 필요할 것 같은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면 삶이 평온하다.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이다. 일상에서 최대한 선택의 종류와 순간을 줄이는 것이다.
선택의 심리학이 있다. 예를 들어 선택이 폭이 많으면, 자신이 한 선택에 더 많이 후회한다. 선택의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종종 뷔페식당의 다양한 음식보다 전문점에서 끓여 낸 칼국수 한 그릇에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한 차선만 있는 도로에서 차가 밀린다면, 짜증이 나긴 하겠지만 후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두 차선이 있는 데, 유독 내 차선만 막힌다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 올 것이다.
바스 카스트의 『선택의 조건』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백영옥의 글에서 나는 알았다. 그녀에 의하면, '누구를 사귈 것인가'라는 선택에 관해 말하자면, 연애를 하면 할수록, 상대를 바꾸면 바꿀수록 만족도는 더 낮아진다고 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이런 현상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원하는 경험이 아닐 때, 사람들이 재빨리 다른 경험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맘에 안 드는 렌터카는 되돌려주고, 형편없는 음식이 나온 레스토랑에서 나와 버리고, 말 많은 SNS 친구는 바로 차단하는 식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을 바꿀 기회가 없는 경우에만 기존 관점을 바꾼다. 이 말은 당장 이혼할 수 없기에 배우자에게서 장점과 고마움을 찾아내고, 바로 교체할 수 없기에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고 아끼게 되며, 되돌릴 수 없기에 밤마다 울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아이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망가거나 취소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드디어 관점을 바꾸고 지금 일어난 일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장맛비가 잠깐 멈춘 사이에, 주말농장에 나갔다. 선택이 없다. 휴가철인데, 그냥 동네에서 놀고 있다. 오늘부터 당분간 류시화 시인의 시를 공유할 계획이다. 태양이 그립다. 주말농장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태양을 만났는데, 어두운 구름이 등장을 방해했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것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오늘 아침은 이어서 정치 이야기를 좀 해본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해온 진보개혁 세력에게 독재 비판은 뼈아픈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촛불 혁명으로 등장한 현 정부가 촛불을 든 시민 위에 군림하는 독재라면 존립 근거가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일각의 독재 주장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본다. 현재의 미래통합당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3분의 1을 조금 넘는 의석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개원 협상 과정에서 상임위원장 할당분을 걷어찬 건 최소한의 저지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선 아예 여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뒤 독재로 몰아붙이는 게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겨레 백기철 기자는 "부동산시장이 시시각각으로 출렁이는 상황에서 임대차 3법, 부동산 3법을 야당 반대를 뚫고 단독 처리했다고 해서 독재라는 건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강행에 따른 정책적 성패에 대해선 정부·여당이 책임을 질 일이다.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면 내년 봄 보궐선거나 내후년 대선에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 정책적 문제들을 독재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건 이념의 과잉이고, 과거 ‘민주 대 반민주론’의 보수 버전일 뿐이다.
내 생각도 백 기자와 맥을 같이 한다. "국민이 선거에서 180석을 준 것은 그냥 무난하게 정권을 유지하라는 게 아니다. 그 의석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행사하라는 것이다. 180석을 헌 칼 쓰듯 휘두르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 본다. "4·15 총선 이후 시대적 과제는 16년 만에 다시 들어선 진보개혁세력 우위의 권력 구도를 토대로 70년 세월의 잔재를 극복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부분적 쏠림과 과속은 오랜 세월 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균형추를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인지도 모른다." 보수 언론들에 생각을 당해 물, 불 못 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주변에. 사적 이익에 함몰되어서.
아니면 무식해서. 가난한 이들이 왜 더 보수적인가? 당면한 일상에서의 생존만으로도 힘겨운 빈곤층은 변화를 위한 정치적 활동을 해 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이 힘겹지만 변화가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고통'보다, '아는 지금의 고통'을 차라리 견디고 말겠다는 가슴 아픈 체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회는 소득 불균형이 더욱더 심화되고, 증산층마저 몰락하는 이유가 된다. 원래 우리 각자는 계급이 있다. 절대적으로 평등할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사회 시스템 속에서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결과까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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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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