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 민주주의 존재 여부 묻는 운명적 질문
이재명 대표의 재판 일정, 헌법재판관들 임기 만료가 무슨 상관인가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매어서 쓰는 우(愚)' 범해서는 안 돼
지난 3일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 측 대리인단이 탄핵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일이 일파만파 여론을 뒤흔들고 있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의 재판 속도를 앞당기려는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는 이 주장은 모순투성이다. 지금 와서 ‘내란죄’를 빼면 이를 적시해 탄핵소추를 결정한 국회 의결은 뭐가 되고, 이 결정을 근거로 발부된 체포영장은 또 어떻게 되는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개되는 정국 현상은 마치 온 국민이 어지러운 불량 롤러코스트에 타고 있는 형국이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일인 만큼 ‘속도’ 못지않게 ‘신뢰성’에도 무게를 두는 게 중요한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국회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측 대리인단이 탄핵 사유에 적시된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하자는 주장은 주춧돌을 허무는 편법적 발상으로 읽힌다.
오는 14일부터 2월 4일까지 주당 2회꼴로 재판을 진행해 고작 5차례 변론기일을 지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부터 ‘졸속’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닉슨 대통령을 탄핵할 때 조사를 2년간이나 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1년 이상 조사를 진행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해 “여태 내란죄 프레임으로 죽일 놈이라고 선동하더니”라며 “헌재 안에 이재명 의원 부역자가 있는지”라는 날카로운 의문을 드러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꼼수”라며 “내란죄는 증인신문과 검증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헌법재판관 임기에 재판 일정을 맞추려는 속내”라고 분석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은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빼려면 국회의 예비 심판인 탄핵소추안을 다시 의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이 단행한 천만뜻밖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두 달에 그 성격을 규명하고 잘잘못을 가려낼 수 있는 성격의 가벼운 사변이 아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은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존재하는지를 묻는 운명적인 질문 아닌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일정이 무슨 상관이며, 헌법재판관 두 명의 임기 만료가 무슨 대수인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당부(當否) 견해와는 별개로,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은 ‘졸속’으로 흘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을 허리에 실을 매어서 쓰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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