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88>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9-17 19: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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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7일 : 습관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돈키호테를 모델로 삼는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선택한 가치와 이상을 위해 헌신한다. 그에게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자발성으로 그 추구가 결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습관은 시간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통합과 질서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 양식을 떠받치고,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산다는 건 크고 작은 습관의 발명 속에서

 

▲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88>

      

인간은 습관의 노예이다. 습관에 따라 정해진 일상은 불확실한 환경에 위안과 안정을 준다. 좋은 습관은 삶을 편안하게 살게 한다. 좋은 습관은 리듬이라고 본다. 그 리듬에 따라 살면 힘이 덜 들고 안전하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올 때 리듬을 타면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는 리듬을 잃지 않도록 내 습관을 점검해 보곤 해야 한다.

 

그 습관을 위해 망설이다 집을 나갔다. 산책을 하고, 음악실에 들러 노래도 하고, 색소폰도 안아 주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고, 혀를 청소하는 습관은 몸에 붙었다. 목이 타지만, 꼭 이와 혀를 닦은 후에 마신다. 그리고 아침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시 그리고 사유를 적고, 많은 사람들과 SNS를 통해 공유한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습관은 종종 우리를 그 속에 가둔다.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은 정해진 생각과 행동의 반복 그 이상이다. 인간의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흠모하는 삶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생으로 쇼펜하우어는 돈키호테를 모델로 삼는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선택한 가치와 이상을 위해 헌신한다. 그에게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자발성으로 그 추구가 결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추구하는 일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거나 타인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추구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신명이 나지 않아 금방 시시해 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려면 스스로 자신에게 알맞은 생각을 하고(숙고, 熟考), 그것을 말로나 글로 표현하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 길에서 만난 상사화이다. 시인 반칠환은 이 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한다지만, 저들은 봄마다 잎이 푸르기를 멈춘 적 없고, 여름마다 꽃이 붉기를 그친 적이 없다. 폭우에 찢겨도 꽃잎은 웃고, 강풍에 쓰러져도 꽃대는 푸르니 무모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다. 그리고 뜨겁지 않으면 그리움이 아니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지만 실은 땅속 같은 뿌리에서 돋지 않던가? 헤어진 것 같으면서도 이미 만나고, 만나고 있으면서도 또 그리워하는 몸짓 아닌가? 지구라는 알뿌리의 꽃이며 잎인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연인인 상사화가 아닌가?

 

꽃무릇도 상사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상사화는 잎이 먼저 자란 뒤 꽃이 피지만, 꽃무릇은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자란다.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두 꽃 모두 잎이나 꽃받침 같은 것이 없이 꽃대만 쭉 올라와서 꽃이 핀다. 두 꽃 모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잎과 꽃이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이다. 잎은 봄과 여름에만 나와 있고, 잎이 떨어진 후에 꽃대가 솟아나, 평생동안 그리워만 한다. 그 그리움이 줄어 그림이 된다. 그리움이란 멀어질수록 더하고, 희미해 질수록 또렷하고, 몰래 하는 것이기에 간절하다.

 

아침에 읽은 시는 천양희 시인의 <외딴 섬>인데(내일 아침 공유), 상사화 꽃을 보고, 도종환 시인의 <상사화>로 바꾸었다.

 

 

상사화/도종환

 

남쪽에선 태풍이 올라오는데

상사화 꽃대 하나가 쑥 올라왔다

자줏빛 꽃봉오리 두 개도 따라 올라왔다

겁도 없다

숲은 어떤 예감으로 부르르 떨고 있는데

어떤 폭우 어떤 강풍 앞에서도

꽃 피우는 일 멈출 수 없다는

저 무모한

저 뜨거운

 

나의 아침 글쓰기는 소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하지 말고, 오롯이 나만을 세워놓고 깊은 대화를 하게 한다. 거기서 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중심을 찾고, 그 중심을 지키는 것이 마음의 허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허하다'는 것은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중심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빈 곳으로 모인다. 정말 좋은 말이다. 채우려 하지 말고, 비워야 사람들이 모여든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 맺듯이, 빈 가지에 새가 날아 앉듯이,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텅 빈 곳만 스치듯이, 비여 있는 곳에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든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비운 마음에 세상의 고운 것들이 찾아 든다. 이런 식의 비운 마음은 '감사함'으로부터 온다. 감사함은 만족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족은 현재에 감사한 마음이다. 현재를 누리는 마음이어야 가능하다. 그러니까 현재를 잘 누리려면, 감사함으로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오늘 아침 화두는 습관이다. 우리가 살면서 잘 존재하려면, 즉 웰-(well-being)하려면, 세상의 틀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절절하고 적당한 변화(變化)를 해야 한다. 한근태는 변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키워드가 세 개다.

 

- 간절히 원하는 것

- 고통 감내

- 새로운 습관

 

그러면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 정말 변화를 간절하게 원하는가?

- 변화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가?

- 새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는가?

 

습관 그거참 어렵다. 그러나 습관은 우리 의식과 삶의 양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습관의 힘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습관이란 무엇인가? “습관은 시간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통합함으로써 생활 리듬과 양식을 만들어낸다.”(빌리 엔·오르바르 뢰프그렌) 습관은 시간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통합과 질서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 양식을 떠받치고,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산다는 건 크고 작은 습관의 발명 속에서 이루어진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묵상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은 그가 자주 하는 '그것'이다. 기원전 6세기 에베소 철학자 헤라클리토스(Heraclitus)는 한 사람의 운명이나 천재성은, 그 사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식사와 잠 같은 생존을 위한 습관들을 제외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의도적으로 허용한 습관들이 있다. 오감을 일시적으로 자극하는 쾌락 자극은 종종 자신을 해치는 중독으로 이어져 온전한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괴물이 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은 하루에 평균 3시간 휴대폰을 쳐다본다. 그 시간의 양은 인생의 1/8, 즉 평균수명을 80년으로 잡는다면 10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대폰을 보면서 인생을 허비한다.

 

반면,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한 행동들이 있다. 만일 내가 그 행동들을 구별된 장소와 시간을 통해 반복하고 나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그것들은 습관이 돼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구별된 습관은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원칙(原則)이다. '원칙'이란 말에서 끝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고 반복과 인내를 통과할 때 만들어지는 추상이다.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면, 그 습관이 나를 구성하는 모든 DNA를 천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조한다.

 

라벨: 20209월 사진과 시 그리고 글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인문운동가 박한표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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