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77)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9-08 13:09:2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이제 코로나가 끝난 후인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인간으로 말하면, 시간이 지나서 늙은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익은, 성숙한 인간이 있다.

우리 삶의 그릇에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

▲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77)

      

"인간은 원래 머물지 않고, 건너가는 존재이다.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산다. 양심도 건너가기를 멈추면 딱딱하게 권력화한다. 건너가기를 잃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이제 양심이 아니라 폭력이다. 건너가기를 포기한 지식은 시체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건너가기를 하게 하는 힘은 책을 읽는 일로 가장 잘 길러진다."

      

어제부터 우리는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책을 읽기로 모였다. 모임 이름은 <책 읽고 넘어가기>이다. 이 생각은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의 전 국민이 함께 책 읽기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가져다가 약간 '비튼' 것이다. 가능하면, 함평에 있는 <호접몽가>도 가보고, 서울에 매월 말경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에 하는 북토크도 참가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권 읽는 일이다. 이번 달은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최진석 교수는 "책 읽고 건너가기"라는 말을 한다. "책 읽기는 '마법의 양탄자' 타는 일이다. '다음'을 향해 넘어가는 일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을 하게 하는 힘을 상상력 또는 창의력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힘은 책을 읽는 데서 나온다. 우리 인간들에게 그 '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힘이 가장 높은 지혜이다.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원래 머물지 않고, 건너가는 존재이다.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산다. 양심도 건너가기를 멈추면 딱딱하게 권력화한다. 건너가기를 잃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이제 양심이 아니라 폭력이다. 건너가기를 포기한 지식은 시체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건너가기를 하게 하는 힘은 책을 읽는 일로 가장 잘 길러진다."

 

 

"진짜 인간은 한 곳에 멈춰 머무르지 않고, 아무 소득도 없이 보이는데도 애써 어디론가 떠나 건너간다. 건너갈 그곳은 익숙한 문법으로는 아직 이해되지 않아서 무섭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무모한 도전과 모험이 등장한다. 대답하는 습관을 벗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고, 닿지 않는 별을 잡으려 하는 작가 있다면, 그가 진짜 인간이다. 진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

 

내 주변의 연구자들도 그 '건너가기' 아니 '넘어가기'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 멈추고, 건너가기를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은 9월의 첫 일요일이다. 바람이 달라지고, 창문 틈으로 풀벌레 소리들이 점점 크게 들린다. 좋은 계절의 시작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이러스 코로나-19의 재창궐로 힘들어한다. 세상의 '흐름'이 막혔다. 이제 코로나가 끝난 후인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지금 먼지보다도 수천 배나 미세한 바이러스가 온 인류를 볼모로 잡아 요구한다. "너희들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틀을 마련하라!"

 

오늘 아침은 시를 낭송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시 하나를 공유한다. 그리고 사진은 내가 늘 다니는 산책길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저 돌들을 밟고 가야 한다. 그 길은 내가 "늙어가는 길"이다.

 

늙어가는 길/윤석구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를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부자가 오랫동안 부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 서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우리는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걸 알면서 우리는 가질 그릇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더 가지려고 욕심만 부린다. 여기서 사달이 난다. (카톡의 한 지인 보낸 메시지)

 

"생각을 글로 쓰지 않으면 그 생각은 날아갈 수 있다." (김영준)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포드 사() 사장 시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생각을 종이에 적어라. 아직 종이에 쓰지 않았다면 너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명쾌하지만, 이건 종이에 적기 전의 생각이 전혀 그럴듯한 꼴이 아니라는 뜻일 뿐, 아예 없다는 판정이 아니다. 그 생각부족하고 막연한 의식의 덩어리도 존재는 한다. 단지 그 덩어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려면 종이에 써보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생각은 말로 해보거나 종이에 써보지 않고 서는 알 수 없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기억이 유지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생각이 자기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이 되는가이다.

 

인간에게 생기는 치매는 나이 먹고 늙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물을 잘 마시지 않아 생기는 병 중의 하나이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가 가동한다. 우리 몸에 물이 부족하면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부분부터 물 공급을 줄여나간다. 이때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30대부터다. 4~50대는 더 마시지 않는다. 그럼 우리 몸 중 어디가 먼저 늙어갈까? 피부이다. 피부가 말랐다고 죽지 않는다. 피부가 늙어갈 뿐이다. 그래도 물이 부족하면 어디를 줄여나갈까? 장기다. 이때는 5~60대가 된다. 그래서 이때부터 여기저기 아파지는 곳이 많아지는 거다. 물론 그동안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물이 부족하면 뇌에 물 공급이 되지 않으면, 뇌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질환 중에 뇌 관련 질환이 많다. 물 부족은 만병의 근원이다. 반대로 물만 잘 마셔도 질병 80%는 스스로 낫는다.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는 몸에 수분이 거의 빠져나가 양자 파동이 없을 때 죽는다. 물 마시는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길이다. (카톡의 한 지인 메시지)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인간으로 말하면, 시간이 지나서 늙은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익은, 성숙한 인간이 있다. 자기를 썩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고, 자기를 익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페북의 잔 지인 메시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늘 좋은 선택으로 발효되며 익어가는 성숙한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선택이 어렵다면 일상을 지배하는 습관을 드릴 때까지 고단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 자동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 선택에서 중요하는 것이 오늘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비울까 선택하는 일이다.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알지만, 논에 항상 물이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져서 작은 태풍에도 잘 넘어간다. 그래서 가끔씩은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려야 벼가 튼튼해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에는 다 때가 있다. 우리 삶의 그릇에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부패하지 않고, 발효되려면 이 과정 속에서 좋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버릴까? 어떤 선택을 할 때, 잠시 멈추어 본다. 왜냐하면, 마음에 저울이 있기 때문이다. 매번 양심이 가리키는 무게를 체크해 본다.

 

열정이 무거워져서 욕심을 가리키는지?

사랑이 무거워져서 집착을 가리키는지?

자신감이 무거워져서 자만을 가리키는지?

여유로움이 무거워져서 게으름을 가리키는지?

자기 위안이 무거워져서 변명을 가리키는지?

서부원이라는 현직교사는 교실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부잣집과 선진국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마찬가지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후진국의 국민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다. 그걸 단지 ''이나 ''으로 여기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죄다. 그들과 기꺼이 내 몫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하다." 그러나 문제는 놀랍게도 이 말에 선뜻 동의하는 아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가난에 대한 책임을 왜 애먼 자신에게 묻느냐는 반론과 함께, 그것이 대체 공정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적한다. 애초 그들에게 경쟁이 없는 공정은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심지어 나눔조차 공정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공정함'이란, 어쩌면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면, 공정함은 오히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당사자 간의 투쟁을 불러오기 십상인 까닭이다. 신뢰가 부족하고, '아니꼬우면 출세하라'는 식의 조롱이 통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파업을 보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의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회적 윤리 의식, 곧 공공성이다. 백 보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이 명명백백 옳다고 해도, 환자를 방치한 채 집단 파업에 나서는 건 공공성을 내팽개친 행태다. 거칠게 말해서, 의술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활용하겠다는 선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는 의대 진학 여부에만 매몰된 채, 미래 의사로서 품성과 자질을 따져볼 겨를도 의지도 없는 현실이다. 이번 의사 파업을 통해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의 몸에 밴 특권 의식을 똑똑히 목격했다. 수능 점수가 높다고 좋은 의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됐다. 아울러,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젊은 의대생들의 뒤틀린 가치관에도 혀를 내둘렀다.

 

사실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말은 파업을 시작하며 의사들이 앞서 내건 구호이기도 하다. 동료 교사가 말한 '사람'이 의사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의미하는 거라면, 파업 구호로 사용된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을 이해해달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공정조차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거라고 여기는 아이들의 각박한 마음부터 녹이는 일이 급선무다.

 

이건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득권에서 '잘 놀다' 은퇴한 사람들도 문제이다. 지금 기득권에 혜택을 누리는 주변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한다. 공정조차 경쟁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그것도 경쟁력으로 봐 달라는 말이다. 공공성을 방기한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학교 교육의 결과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윤석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주요기사

+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