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이성직] 묻지도 생각지도 말고-②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8-30 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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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꼿꼿한 자세로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모르겠고 당신들 눈 맞아 자빠트리고 엎어지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가 오죽하면 모텔에서 나가리가 됐을까? 굴러온 호박을 간수하지 못하고 깨뜨렸으니 나 같음 쪽 팔려서 얼굴도 못 들겠다!’ 하면서 거침없는 웃음소리로 응수합니다.

 

▲ [연재소설-이성직] 묻지도 생각지도 말고-②

 

돌아오는 길에 나눈 얘기로 인하여 대포는 비로소 묻지 마 관광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인과 어르신 운전기사는 한 팀이 되어 기상천외한 영업 전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온 일행은 조촐한 뒤풀이를 하기 위해 역전 근처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하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감자탕을 시키고 소주를 곁들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화기애애하게 나눕니다. 어르신 세 분은 경로당과 근린공원 역전 등을 오가며 정보를 얻어 사람을 모집하고 육만 원씩을 지급받는다고 합니다. 여인 둘은 아파트 부녀회장과 동 대표 산악회 등에서 정보를 얻어 사람을 모집하고 먹을거리와 분위기 조성 및 승객 상호 간 어우를 수 있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며 십만 원씩을 받는다고 합니다. 오늘같이 사람이 많고 돌아오는 길이 편하면 운전기사수입과 차량유지비를 제외한 금액에서 얼마간의 돈을 수고비로 책정해 나누어 갖는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미친개는 일이 없어서 쉬는 날 가끔 동행하고 있으며, 일단 유사시 본인 몫을 단단히 하기 때문에 수고비는 지급하지 않지만, 무료입장의 특혜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어느새 어둠은 갈길 잃은 낙엽을 밟으며 도움닫기를 하고 황급히 놀란 가로등은 눈가에 다가오는 검은 장막을 걷어내고 있습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을 옆구리에 끼고 대포 일행이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낯익은 사내 세 명이 손짓을 하며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앞을 막아선 사내 중 한 명이 여인을 바라보며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는구나. 당신 때문에 오늘 완전히 망가졌으니 같이 놀던 사람들을 찾아내던지, 차비와 털린 돈 내놔!’ 하고 윽박지르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며 어디서 뺨 맞고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라고 하면서 주제가 이 모양이니 막판에 개털 된 것 아니냐고 당당히 맞섭니다. 취기가 오른 다른 사내는 쉬발년이 어디서 뻐꾸길 날리고 지랄이야. 네가 찍어준 년들이 오십만 원을 받아 쥐고 우리에게 모텔 열쇠를 맡긴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말이야! 너희들 다 한패로 뭉쳐 짜고 치는 판 아니야? 이것들이 사람 어떻게 보고 장난질이야!’ 하면서 파리채가 들락거리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꼿꼿한 자세로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모르겠고 당신들 눈 맞아 자빠트리고 엎어지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가 오죽하면 모텔에서 나가리가 됐을까? 굴러온 호박을 간수하지 못하고 깨뜨렸으니 나 같음 쪽 팔려서 얼굴도 못 들겠다!’ 하면서 거침없는 웃음소리로 응수합니다.

 

험악한 상황은 일촉즉발 전운이 감도는 사태로 진행되는데 어느새 택시를 세운 미친개가 누님, 어서 갑시다!’ 하는 소리를 남기며 차도로 내려서서 여인과 어르신들을 급하게 밀어 넣은 후 택시를 출발시킵니다. 그리고 대포 손을 이끌며 형님, 우리도 갑시다!’ 하며 발길을 재촉합니다. 택시는 떠나고 대포 역시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분이 안 풀린 나가리패가 엉뚱하게 시비를 걸어옵니다. ‘이런 쉬발 개 당나귀를 봤나? 어디 쌀집 아저씨가 난장에서 쌀을 팔고 지랄이야?’ 하고 소리 지르며 대포의 팔을 잡아당깁니다. 화들짝 놀란 대포는 걱정도 되고 한편 무섭기도 하여 슬금슬금 뒷걸음을 칩니다. 겁먹은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주춤거리는데 옆에 서 있던 미친개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일행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상대를 눈두덩이와 옆구리 겨드랑이를 교묘하게 골라 때려 쓰러뜨린 후 다음 상대는 정강이를 걷어차고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어 균형을 흩뜨린 후 발뒤꿈치로 엄지발가락을 사정없이 찍어 내립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땅바닥에 엎어져 신음하고 남은 한 명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데 미친개가 발러!’ 하는 소리를 공중에 띄우고 바람 가르듯 달려나갑니다.

 

대포는 꿈을 꾼 듯 멍한 상태로 미친개 뒤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옆구리가 끊어지듯 아프고 숨이 턱밑에 차 도저히 뛸 수가 없는데 미친개는 계속 앞만 보고 달리고 있습니다. 대포는 후미진 골목을 빠져나와 조그만 공원 겸 놀이터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털썩 주저앉으며 도저히 더 이상 못 갈 것 같으니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 후 주위를 돌아봅니다. 미친개는 주저앉은 대포를 내려다보며 이젠 안전권에 들어와서 더 뛸 필요도 없고 지금 상황에 다른 그림도 생각나지 않으니 내일 아침 역전 옆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남긴 후 가볍게 손 흔들며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갑니다. 잠시 허탈한 기운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자 희뿌연 가로등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포를 흘겨보고 있고, 앙증맞은 그네는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역시 동감이라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몇몇 인적이 쏘아대는 눈빛은 대포의 등을 꿰뚫고 살 같이 달려나가고 언젠가 보았던 추격자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눈가에 펼쳐지는 순간 대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땀에 젖은 저고리는 흐트러져 너풀거리고, 사정없이 헝클어진 머리칼은 핀 꽂으면 제대로 된 각본이라며 쌍수를 들어 반길 판입니다. 급기야 다리마저 풀려 갈지자로 땅을 훑어대는 상황에 이르자 꿈인지 생시인지 도통 걷잡을 수 없습니다.

 

대포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청바지와 운동화를 찾자 아내는 회사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족구대회를 한다는 변명을 둘러대며 서둘러 집을 나서는 대포를 아내는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역전에 도착한 대포가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멀찌감치 미친개가 손을 흔들며 다가옵니다. 미친개는 대포와 함께 인력회사 소장에게 다가가 상호 간 소개를 시킵니다. 대학졸업 후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소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일하다 보면 각자 주특기를 찾아서 보다 나은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으니 힘들더라도 이겨내어 보라고 어깨를 두드려 줍니다. 그리고 미친개가 맡은 일이 있으니 당분간 일머리도 익힐 겸 같은 팀으로 뭉치라고 한 후 모여 있는 사람들의 작업배치를 위해 인파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목수, 미장, 조적, 아시바, 하스리, 철거, 곰빵, 도비, 잡철, 용접, 샷시, 잡부! 우렁차게 외치는 소장의 부름에 삼삼오오 대열을 이룬 무리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하며 대기한 승합차와 트럭 승용차에 몸을 싣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5명이 함께하는 미친개의 잡철 팀은 아파트계단 옆의 난간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계단 옆 바닥에 먹줄을 띄운 후 칸칸이 동자(지지대)를 세울 위치를 찾아 구멍을 뚫고 앵커(고정)볼트를 고정시킨 다음 동자와 고정 볼트를 수직, 수평을 맞춰 용접합니다. 그리고는 그 위쪽으로 덮개(손잡이) 부분에 평철을 덧씌워 재차 용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사용하는 것이라 조금이라도 치수가 맞지 않거나 각각의 이음새를 단단히 용접하지 않으면 커다란 불상사를 초래할 수 있기에 감독이 철저하다고 하며 새삼 주의를 시킵니다. 상황을 대충 인지한 대포는 동자를 들어다 각각의 위치에 갖다 놓고 앵커볼트를 콘크리트 속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을 병행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정해진 위치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지나는 사이 볼트를 체결하면 뒤이어 동자를 세우고 덮개가 씌워지는 용접을 한 후 재차 먹줄 띄우는 실측이 이루어지는데 순식간 이루어지는 일은 눈 돌릴 시간 없으며 허리를 펼 기회조차 없습니다. 아파트 25층 끝에서 시작하여 1층까지 같은 방법으로 병행하며 내려오는 작업은 4명의 수고로 하루에 끝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순간순간 허리 펴고 숨 돌리며 작업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 소변보는 것도 제각각 정해 놓은 구석을 찾아 돌아선 채 패트병을 들고 서서쏴로 급히 이루어집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현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안전모를 벗으니 지끈거리는 머리가 날아갈 듯 상쾌해집니다.

 

인력사무소로 돌아오니 소장은 첫날부터 고생이 많았다고 하면서 밥이나 먹고 들어가라며 일행에게 근처에 있는 식당 식권을 나누어줍니다. 대포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와 식권을 미친개에게 들려주고 너무 피곤하니 일단 집으로 가야겠다며 내일 보자고 말하고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역전을 빠져나옵니다. 파김치가 되어서(or 돼서) 들어온 대포를 쳐다보며 아내는 매우 안쓰러운 표정으로 무슨 운동을 사생결단으로 했기에 이 모양이 되었느냐고 하며 팔다리를 주무릅니다. 대포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래도 내가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둘러댑니다. 밥숟갈 놓자마자 쓰러져 잠을 청한 대포의 입가에는 그래도 이제는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없이 커서 조그만 미소가 번집니다.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고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여 대포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조심스레 표정을 살핍니다. 아내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천만 원이나 올렸으며 있는 돈을 모두 합치고 적금을 해약해도 삼백만 원이 모자라는데 어떡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세입자들에게 돌아갈 임대아파트 분양권이 턱없이 부족하고 별다른 보상도 해 줄 수 없으니 재개발조합에서는 세입자들과 껄끄러운 상황이 되기 전에 집주인을 내세워 계약을 해지하거나 집세를 올리는 방법으로 모두 내쫓으려는 속셈인데 지금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 집을 구하기도 힘들고 임대아파트 분양권도 날아가는 것이니 어떡하든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한숨을 쉽니다. 대포는 회사에 부탁해서 대출을 받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 당신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출근 준비를 서두릅니다.

 

말 그대로 몸 팔아 돈 먹는, 뼈 빠지게 힘든 육체노동이지만 서서히 몸에 배고 조금씩 여유로움이 생겨 일하는 도중 간간이 농담을 곁들이는 재미가 붙어 대포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마침 비가 오는 관계로 하루 일을 쉬게 되어 모두는 출근과 동시에 식당으로 모였습니다. 소장은 식권을 나눠주다 대포를 쳐다보며 오늘 그동안 일한 공수를 합해서 봉급을 지급하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일했고 남보다 처지지 않았으니 소개비를 뺀 시급 일만 원으로 책정해서 주겠다고 합니다. 순간 미친개가 일한 날짜는 이십오 일정도 되고 간간이 야근을 했으므로 이백오십만 원 정도 될 것이라며 대포를 쳐다보고 웃습니다. 그리고 형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곳 현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니 당분간 다른 사람들에게 일당이나 봉급을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이력서를 제출했던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고 딱히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어 대포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을 굳히며 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봉급을 받아 든 대포는 은행에 들러 정기예금으로 들었던 퇴직금을 찾아 일찌감치 집으로 향합니다. ‘내리는 빗줄기가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몸을 적시지만 만만치 않은 노가다의 삶은 결코 젖어 흐르지 않는다, 일과 돈 이외에는 묻지도, 생각지도 말고 시간만 깨라!’ 는 말을 되씹으며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훔쳐냅니다.

 

 

 

깃발

 

입심 좋은 차림새 공중에 두둥실

처발라 밀어낸 얼굴 박수 소리 당연하지

소통하는 자세로 드문드문 바람구멍

아무라도 볼 수 있는 네거리 복판에서

이게 바로 탁상행정 잘사는 길이라고

누군가 뱉은 말을 수없이 되뇐다

좁다란 고샅길도 샅샅이 훑어

담벼락 등짝에 연판장을 붙이고

땅 놓고 돈 먹기는 따 놓은 당상

돌아온 재개발은 판쓸이라네

깨우치지 못하면 대세에 넘어가니 딱지치기 배워봐라

버틴다고 별수 있나 헌 집 주고 새집 갖는 돈 두꺼비 잡아봐라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아파트가 하늘 높이 올라간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포는 아내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넵니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돈을 받아들고 말없이 책상 서랍 안에서 편지봉투를 꺼낸 후 대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봅니다. 편지봉투 겉면에 발신자로 표시된 회사 명판과 수신자는 눈에 익은 직책과 이름이 적혀있어 소스라치게 놀란 대포는 황급히 내용을 꺼내 들여다봅니다. 내용인즉 회사의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난 여러분에게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힘겨운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구조조정의 혁신 아래 회사는 점차 정상회복을 찾아가는 중이며 공격적인 경영을 위해 사세를 확장하기로 하였으니 뜻이 있는 사람은 본사 총무과를 경유하여 연수원으로 집결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대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읽은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가자 아내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다녔으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느냐고 눈물을 훔치며 조용히 밖으로 나갑니다. -편에 계속

    

이성직 소설가




이성직 소설가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2007시와 창작소설등단(바닷가 풍경)

-스토리소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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