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으로 남편 루이 16세(제이슨 슈워츠먼 분)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황후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 분). 그녀를 다룬 영화가 여러 편 있지만 이 영화는 '천진한 여인'에 대한 연민의 정이 묻어난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내부 모습과 프랑스식 정원을 세련된 영상미로 담았다. 모던한 느낌마저 주는 우아한 드레스와 패션은 눈을 호강시켜준다. 아카데미 의상상 수상. 소피아 코폴라가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터치와 잔잔한 흐름으로 인간적 면모를 잘 묘사했다.
화려한 궁전과 우아한 패션 완벽 재현
앙투아네트, 하면 전설처럼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백성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하자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는 것. 이것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승자의 조작은 아닐까, 의심해볼 만하다.
막내딸을 적국으로 보내는 비정함
그녀는 한마디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다. 한때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암호랑이' 여제 마리아 테레이자는 딸 11명, 아들 5명을 두었는데, 그녀는 막내딸로 태어났다. 엄마 나이 38세이니 당시로선 한참 늦둥이인 셈. 14세 어린 막내딸을 적국인 프랑스의 황태자비로 보낸 것은 권력 세계의 비정함을 말해준다.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간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막내딸은 애지중지 안 잊히는 존재다. 마리아 테레이자가 아무리 담대한 여장부라 할지라도 막내딸을 적국에 보내면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조마조마했을지 짐작이 된다. 루이 16세는 어쩐 일인지 결혼하고서 7년 넘게 아내와 합궁을 하지 못한다. 이것도 앙투아네트의 흉이 된다. 석녀(石女)라느니 불감증이라느니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산다. 이 상황에서 마리아 테레이자가 딸에게 보낸 편지는 절절하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다.
오로지 네 걱정뿐이다.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이니 항시 매력을 발산하거라. 매력과 인내만이 난국을 헤쳐갈 길이다. 암담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라. 후계자를 보지 않는 한 너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비우호적 시선과 문화의 차이
일본의 공주가 정략결혼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되었다고 가정할 때 과연 조선 백성들이 얼마나 호의적일까. 마찬가지로 프랑스 백성들은 그녀를 실눈으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간첩으로 의심했다고 한다. 두 나라 문화의 차이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음악 공연이 끝나고 그녀 홀로 손뼉을 친다. 프랑스는 황실 공연에서 손뼉 치지 않는 게 관례였다고 하는데.
프티 트리아농 별궁의 자유
무능하지만 착한 남편 루이 16세는 프티 트리아농이라는 작은 별궁과 주변 정원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베르사유 스타일'의 숨 막히는 예법과 짜여진 틀에 지친 아내에 대한 배려였다. 어항 속 금붕어처럼 모든 것이 공개되는 생활에서 피난처를 찾은 그녀는 정원을 농촌처럼 꾸며 염소, 양, 닭을 키우고 화초 밭에 딸과 함께 드러누워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행복해한다. 그 귀한 몸이 제 손으로 달걀을 거두고, 딸기를 따서 흙만 털고 먹는다.
정말 사치의 대명사였을까
그녀는 시쳇말로 빵빵한 집안 출신에다 예쁘고 귀엽고 천진난만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묘사된다. 혁명의 희생양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힘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로 태어나 아름다운 쇤부른 궁전에서 자라고, 부르봉 왕가의 황태자비- 황후로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에서 살아가는데, 어지간한 것은 그냥 주어진 조건일 뿐 특별한 사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혁명 발발 4년 만에 국고낭비죄와 반혁명죄로 단두대에서 남편의 뒤를 따랐다.
"누구도 무죄로 군림할 수 없다"
생 쥐스트가 쓴 루이 16세 논고장은 "누구도 무죄로 군림할 수 없다.(One cannot reign innocently.)"라고 언명한다. 즉 왕으로 군림했던 것 자체가 유죄라는 뜻이다. 그 외 갖다 붙이는 죄목은 사족에 불과하다. 군림이냐 죽음이냐 둘 중 하나다. 더 이상 군림하지 못하면 죽음뿐. 마리 앙투아네트는 특별한 인물도 아닌데 역사의(historical)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historic) 인물이 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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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유종필 |
필자 유종필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한국기자협회 편집국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원/민주당 대변인/제5~6대 관악구청장
대학에서 철학과에 적을 두고 문사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오랜 시간 위대한 사상과 진리에 취해 책에 탐닉. 일간지 기자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세상맛을 보았다. * 인생길 동반자와 늘 연애하듯 살고, 혼자 있을 땐 자신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산다. * 10년 넘게 세계의 위대한 도서관 70여 개를 탐방, <세계도서관기행>(일본,대만.중국(예정) 번역출간)을 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보고 에세이와 같은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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