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우, 기독교가 사회를 통합하는 힘이 없었다면, 그토록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내뿜는 원심력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근대 이후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물질주의적 발전 같은 성장지상주의가 위험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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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73) |
새롭게 시작되는 9월이지만,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계속 이어가며 공유하고 싶다. 오늘은 좀 우리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김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작은 미국이다. 어떤 학자는 "한국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라고 평할 정도라 한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제도는 미국식이다. 예컨대, 대학 제도가 그렇다. 엘리트 대학 시스템과 과열된 입시 경쟁에서부터 엄청나게 비싼 학비와 과도한 사립대학체제까지 모두 미국의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는 사립대학의 비율이 87%에 달해 미국을 넘어서는 기형적인 고등교육체제를 갖고 있다.
정치 지형도 우리는 미국과 닮았다. 미국은 보수 양당제라고 하는 아주 '예외적인' 정치 지형을 가진 나라이다.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나라이다. 문제는 보수 양당제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한다 해도 본질적인 사회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니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고용 불안, 사회적 차별 등의 문제는 풀리지 않고, 사회복지 수준도 개선되기 어렵다. 미국처럼, 사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도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이다.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고용 불안
-사회적 차별
오히려 정권이 바뀐다 해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의 정서가 퍼져나가는 것이다. 정치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는 좌절감과 절망감의 표현이 정치의 혐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사회에서 번성하는 것이 종교이다. 연대와 협력이 기본인 사회공동체가 무너진 곳에서 종교가 활개를 친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정치적 무능과 사회적 비참이 팽배한 현실에서 기독교가 국가를 통합하고 좌절을 위무하는 역할을 했다. 인문학도 이런 좌절을 힐링만 한다면, 그건 불임(不姙) 인문학이다. 미국의 경우, 기독교가 사회를 통합하는 힘이 없었다면, 그토록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내뿜는 원심력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신비적 방식으로 출구를 찾는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성장은 한국인 지닌 '종교적' 심성보다 우리 사회에 각인된 왜곡된 정치사회적 구조와 관련이 깊다고 했다.
9월이 시작되자, 아침저녁 바람의 색깔이 달라졌다. 이른 아침에는 귀뚜라미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오늘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어제 하늘은 참 푸르고,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쾌청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태풍의 영향권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매우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걱정이다.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갔으면 한다. 요즈음은 산책을 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사진찍기로 신났다.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걸어 길게 한 다음, 리모컨으로 찍는다. 카메라의 렌즈를 사물에 더 까까이 대고 찍으니 사물들이 더 가까이 내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이 그거다. 강아지풀도 가을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시는 원로시인 조병화 시인의 것이다.
9월의 시/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 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미국신화는 깨졌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민낯'을 우리는 잘 보았다.
박노자 교수도 미국의 신화가 깨졌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미국에 대한 신화가 무너졌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미국,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미국은 정부 주도로 무기 생산을 시급히 확충시키는 등 국가가 산업구조에 개입하여 비교적 능숙하게 재난을 극복했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를 거쳐 미국은 이러한 능력을 거의 상실한 듯하다. 세 가지 점을 박노자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의료설비 부족이 드러나도 국가가 처음에는 생산에 개입하기를 주저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바이러스 위협이 계속 남아 있고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약업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공공의료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절실히 필요한데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대신에 트럼프는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에 바쁘다.
이 무책임, 이 인명 경시는 단기적 이익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는 미국 지도층의 정신상태 일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지속적인 ‘중국 탓하기'가 중국인과 외관상 식별이 가지 않는 모든 재미 아시아계 소수자들에 대한 '정신 나간' 인종주의자들의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데, 트럼프는 개의치 않는다. 종족적 소수자, 그리고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노약자층 등의 인명과 인권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하고 보호하려 하지도 않는 국가가 세계의 ‘리더’를 여전히 자처할 수 있을까?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제 3세계 수준의 삶을 살며, 게다가 지금 생존, 생명 문제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지켜줄 공공의료 시스템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학자들은 우리 사회를 '과잉 미국화' 또는 '총체적 미국화'라는 말을 하면서,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라는 것을 문제 삼아 왔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까지 미국을 총체적으로 따라왔는데, 이젠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젠 미국신화를 깨야 한다는 점에 대해, 나는 김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 교수는 한국의 문제는 '많이' 미국화된 것에 있다기보다는 '전면적으로' 미국화된 것에 있다고 본다. 특히 심각한 '영혼의 미국화'를 말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감수성, 욕망 심지어 무의식까지도 거의 미국인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문제냐 하면, 미국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 즉 세계적 표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이 있었다. 우리의 재발견이다. 이미 2016년 촛불 집회에서 보여주었다. 이젠 근대 이후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물질주의적 발전 같은 성장지상주의가 위험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 지구 생태계의 붕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시장 중심주의가 바뀌어야 한다. 박노자 교수는 코로나 19로 시장의 신화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시장주의에 대한 신화가 무너졌다. 시장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공급할 수 없음을 우리는 여실히 보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이나 소비 진작을 위해 주민들에게 국가가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급진적인 주장'으로 인식됐지만, 지금 미국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나라마저도 국민들에게 현금 지원을 할 예정이다. 상당수 항공사 등이 어차피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항공업과 같은 사회 필수 시설의 국유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위기의 초기지만, 시장만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음은 이미 명백해졌다. 앞으로 세계 경제의 재가동과 회복을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개입과 국가 주도의 재분배 정책이 불가피할 것이다.
시장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가 공공시스템의 부실을 떠안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제 팬데믹(세계 대유행) 위기의 ‘약한 고리'가 되었다. 그들을 포함해서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과거 신자유주의 시대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 내지 공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을 방불케 할 수준의 국가적 경제 개입이 필요할 것이고, 앞으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함께 공공부문, 그리고 재분배 장치들이 대대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 세계적 추세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김누리 교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인간의 욕망을 더 효과적으로 합리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체제로 이겼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야수자본주의가 되면서, 자본주의가 인간을 잡아먹었다.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실업, 불평등, 사망률, 산업재해율을 한국이 갖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야수성이 우리 사회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가 대단히 효율적인 체제이지만 과잉 생산으로 중단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과잉생산 자본주의'라 한다. 이런 자본주의는 생산을 중단하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에 비유를 한다. 수요가 없고 불필요한 데도 계속 생산을 하여야 한다. 이 생산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 생산은 자연의 변형 내지 자연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산을 위해, 우린, 끝없는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 그 대가를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거다. 여기서 생태적 문제라는 새로운 것이 등장한 거다.
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대안으로 '자본주의 인간화'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화가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외란 인간의 삶을 전도시킨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가 사회를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를 파괴하였다. 사회를 일종의 정글로 만들었다. 세 번째는 자본주의는 무한히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면서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인간화란 인간중심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라벨: 2020년 9월 사진과시 그리고 글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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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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