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원내 다수당에 과연 ‘검증’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
선거 후 공천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는 야권 지지자들 목소리 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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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원 선임기자 |
모윤숙은 해방 후 이승만 노선에 선다.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UN은 ‘한국위원단’을 파견했다. 단장은 인도 대표 메논. 모윤숙은 타고르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그와 가까워진다.
당시 메논은 하지 중장 및 김규식의 영향으로 ‘남북협상을 통한 총선거’ 입장에 기울어 있었다. 메논이 유엔소총회 보고를 위해 서울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 모윤숙은 하지 중장과 저녁 약속이 있던 그를 이승만의 거처로 데려간다. ‘차라도 한잔 하자’고 떼를 쓰면서.
이승만에게 설득된 메논은 UN한국위원단장 자격으로 남한 단독선거 승인을 요청한다. 이승만-모윤숙 콤비의 극적인 정치적 승리였다.
모윤숙은 “나와 메논 단장과의 우정 관계가 없었더라면 이 박사가 대통령 자리에 계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메논도 “나의 심정(heart)을 흔들었던 여성은 '매리언 모(모윤숙)'였다"고 썼다.
‘건국의 아버지는 메논, 어머니는 모윤숙’이라는 시니컬한 풍자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 미 CIC(방첩부대) 보고서엔 낙랑클럽과 관련된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팰로 앨토 타임스’ 1952년 9월 24일자 기사가 인용돼 있다. ‘밤에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불빛을 받으며 군 장성과 외교관들을 접대(entertain)하고 낮에는 한국군을 지원할 물품을 구하기 위해 미군 막사 문을 두드린다.’
낙랑클럽 멤버엔 비극의 주인공 김수임도 있었다.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뒤 박헌영 최측근 이강국의 연인이었고 존 베어드 헌병사령관과 동거한 여인.
그녀는 월북한 이강국 지시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6.25 발발 전후 수색 인근 한강 백사장에서 총살된다. 경찰이 들어갈 수 없는 베어드 저택의 김수임을 밖으로 불러낸 장본인은 ‘이화여전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모윤숙이었다.(김수임 후배 전숙희 증언)
20세에 도미, 라 시에라대학 교수가 된 김수임과 베어드의 아들 김원일은 어머니가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되었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2001년 9월 공개된 미 정보장교 ‘조지 실리’ 보고서엔 이강국이 미 CIC 요원으로 분류돼 있다. 이강국이 김수임을 통해 남한 정보를 빼간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군이 김수임과 연결된 이강국을 통해 북측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과 모윤숙 등 식민지와 해방공간을 살았던 이들에게 일면적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부유층과 장관급 인사 부인들까지 가세한 낙랑클럽도 그렇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서 따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민주당 수원정 김준혁 후보는 근현대사가 아닌 조선후기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조회수에 민감한 유튜브에서 활동하던 시절, 아마도 총선 출마를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대생 성상납’이라는 자극적이고 단정적 표현을 했을 터인데, 명색이 원내 다수당에 과연 ‘검증’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박광온 의원을 제친 김준혁 후보, 전해철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안산갑 양문석 후보의 부동산 논란을 지켜보면 제1야당 지도부가 강조했던 소위 ‘
시스템 공천’에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두 ‘찐명’ 후보 변수가 종반 총선 흐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진 알 수 없으나 선거 후 공천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는 평범한 야권 지지자들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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