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보기] 빨간 머리 앤 시즌 1~3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12-30 06: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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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소녀가 세상을 바꾼다

      

너무나 유명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1908)을 원작으로 하는 캐나다 드라마. 일찍이 애니메이션과 방송 드라마로 나온 바 있지만 이번에 처음 보고서 '왜 이토록 뒤늦게 보았나' 자책과 함께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는 자위를 했다. 자연과학과 자유주의 사상이 사회 변화를 몰고 오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 변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마른 가슴 촉촉이 적셔주는 감성 드라마.

 

 

캐나다 동해안 프린스에드워드 섬 배경. 숲과 초원, 농장, 해변의 눈부신 풍광이 아름다운 영상미로 빛난다. 찬란한 문학적 대사는 힐링 효과에 그만이다.

 

 

쾌활하고 적극적인 고아 소녀

 

젖먹이 때 부모를 여의고 보육원과 이 집 저 집 전전해온 소녀 앤(에이미베스 맥널티 분). 쾌활한 성격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반면 빨간 머리에 주근깨 투성이의 볼품없는 외모. 농장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원하는 나이 든 오누이의 집에 실수로 입양이 되어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겪게 되는 즐겁고 괴로운 일, 농촌 소년 소녀들의 우정과 로맨스를 그려나가는 성장 드라마.

 

  

상상력으로 외로움을 달래다

 

<키워드 1: 상상력> 상상력이라는 말이 이토록 힘 있게 구사되는 드라마는 처음 보았다. 앤은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소녀. "나는 상상력 빼면 시체나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상상력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소녀이자 기억보다는 상상을 더 좋아하는 아이. 현실을 직시하면 괴로움뿐이고, 과거도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 상상 속에서 위안을 찾고 행복을 맛본다.

 

 

모든 동물은 현실과 맞닥뜨리는 게 삶의 전부이다. 상상을 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잘해야 생명 유지이고 종족 번식이다. 반면 인간은 상상을 하기에 영혼이 자유롭고 발전을 한다.

 

 

앤은 고지식한 친구에겐 "상상력을 발휘해봐"라고 다그치고, 미운 어른에겐 "상상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쏘아부친다.

 

     

꿈이 우리를 전진시킨다

 

<키워드 2: > 앤은 미래 꿈으로 과거 상처를 극복하는 소녀이다. 꿈은 바이러스처럼 또래들에게 전염된다. 때마침 앤과 비슷한 성향의 신식 여교사가 부임해오면서 마을 어른들과 마찰이 생긴다. 고지식한 어른들에게 교육이란 질서 유지를 위한 장치이고 양질의 노동력 창출 수단일 뿐이다. 새로운 사상은 위험한 것이고 사회 안정을 위해선 주입식 순종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싫어도 기차처럼 다가오는 게 변화이다.

 


기차와 증기선, 전기와 전보와 같은 근대 문물이 밀려온다. "꿈꾸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라고 주장하는 여교사의 말에 꼬리 내리는 마을 원로들. 아이들은 환호성. 새로운 것이 옛 것을 이긴다.

 

      

듣기만 해도 벅찬 가족이란 말

 

 

<키워드 3: 가족> 나이 든 독신의 오누이가 같이 사는 녹색 지붕 집에 들어온 앤.

 


사람 하나가 들어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들어오는 것이다.

 

 

깐깐하고 무뚝뚝한 원칙주의자, 그러면서도 속정 많은 마릴라(제라르딘 제임스 분) 아주머니. 그녀의 남동생 매슈(R.H. 톰슨 분)는 과묵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인정 많은 남자. 꼭 필요한 말만 간결체로 주고받는 무미건조한 집에 감성 충만에 수다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춘기 소녀가 들어왔으니 처음엔 못마땅하기만 하다. 핏덩이 시절 부모와 사별, 가족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앤에게 가족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단어. 낯선 집에서 사고도 치고 꾸중도 듣지만, 차차 칭찬받고 인정받으면서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간다. 사막처럼 건조한 이 집에 앤은 오아시스 같은 활력소가 된다. 앤은 이 집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 에너자이저이자 엔돌핀이자 비타민 C 같은 존재로 자리 잡는다.

 

      

우정을 통해 함께 성장한다

 

 

<키워드 4: 우정> 앤은 학교에서도 고아 출신이라 놀림당하며 왕따를 당한다. 처음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럽긴 마찬가지. 얌전하고 착한 부잣집 딸 다이애나(덜릴라 벨라 분)와 평생의 친구가 되기로 손가락을 건다. 대조적인 두 소녀는 의외로 잘 어울리며 온갖 고민을 주고받고 고락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된다. 풍부한 지식과 감성을 가진 앤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다이애나는 학교에서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한다. 앤을 멸시하고 괴롭히던 친구들도 뛰어난 앤을 결국 인정하게 된다. 시골 마을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앤의 리드로 다양한 모험 활동을 즐기며 함께 성장하고 우정을 키워 나가고, 인근 도시의 대학교에 함께 진학한다.

 

      

조건보다 마음이 끌리는 게 사랑

 

 

<키워드 5: 사랑> 시골 아이들은 마을과 학교에서 늘 부대끼며 산다. 가깝게 지내기에 애증도 깊어지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로맨틱한 관계가 형성되는 게 시골 친구들이다. 삼각관계는 필수이고, 질투와 경쟁이 암암리에 펼쳐진다. 잘 생기고 스마트한 길버트(루카스 제이드 분)라는 소년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증기선에서 일하며 타향을 전전한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 앤과는 경쟁 관계가 된다. 이러저러한 오해도 쌓이고 부드럽지 못한 관계지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서로 마음이 끌리지만 표현을 못 하여 엇갈리기 일쑤. 길버트는 얼굴도 예쁜 병원 원장의 딸과 결혼을 전제로 프랑스 소르본느대로 함께 유학가기로 하지만 앤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 좋은 프랑스 유학 기회를 포기한다. 대신 토론토 대학 의대에 진학한다. 감격의 키스를 나누는 앤과 길버트. 시즌 4에서 사랑을 진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다

 


<키워드 6: 외모> 앤은 "빨간 머리와 주근깨는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말할 정도로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허영이라고 말해줘도 "장미가 예쁘지 않다면 누가 향기를 맡으려고 하겠어요?"라고 반문. "내가 너처럼 예쁘다면 인생이 더 쉬울 텐데"라며 다이애나를 부러워하는 앤. 반대로 다이애나는 "너의 총명함을 얻을 수 있다면 나의 보조개라도 떼어 줄 거야"라고 말한다. 앤이 <제인 에어>(샬롯 브론테 저)를 좋아하는 것도 제인이 지성에 비해 용모가 볼품없는 고아 출신이라는 게 작용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제인 에어가 대저택의 주인인 로체스터에게 "신이 내게 아름다움을 주었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는 대목이 생각났다. 그러나 뛰어난 머리와 감성을 가진, 당찬 소녀 앤은 잘 생기고 똑똑한 길버트와의 사랑을 이룸으로써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드라마를 보는 어느 순간부터 앤이 예쁘게만 보인다.

 

 

 

 

 

 

 

 

 

필자 유종필

필자 유종필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한국기자협회 편집국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원/민주당 대변인/5~6대 관악구청장

대학에서 철학과에 적을 두고 문사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오랜 시간 위대한 사상과 진리에 취해 책에 탐닉. 일간지 기자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세상맛을 보았다. * 인생길 동반자와 늘 연애하듯 살고, 혼자 있을 땐 자신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산다. * 10년 넘게 세계의 위대한 도서관 70여 개를 탐방, <세계도서관기행>(일본,대만.중국(예정) 번역출간)을 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보고 에세이와 같은 리뷰를 쓴다.

    https://m.blog.naver.com/tallsnake/222073888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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