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연재소설-이성수] 칠십일의 비밀 <03>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9-17 05:03:16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1. 절치부심-③ 동학농민혁명 역사소설

…부상들이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발길질과 주먹질이 얼굴과 몸통을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두 팔로 막아보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목숨을 앗아낼 태세로 계속하고 있었다. …

- 나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몰러……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어. 이 사람들은 여그서 만났구만 동학교도가 아니어. 듣고 보니 굶어죽지 않을 라고 인삼 몇 뿌리로 장사혀서 살아보겠다고 나선 것인디 너무 허네. -

▲ [장편 연재소설-이성수] 칠십일의 비밀 <03>

     

그러고 보니 아직 당도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뱃길은 육로보다 몇 배나 길었다. 영동을 거쳐 옥천을 지난다고 했다. 그리고 공주목과 부여를 거쳐야 하는 긴 길이었다. 뱃길이 어찌 되는지도 모르고 쉬지 않고 내달리기만 했던 자신들이 바보 같았다. 금산 읍내를 지나 고산과 여산을 거쳐 강경포로 달려왔던 육로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다. 그러므로 채비를 갖춰 왔더라도 괜찮았을 일이었다.

 

- 인자 큰일 났구먼. -

 

김석순은 온몸의 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제자리에 고꾸라지듯이 주저앉았다. 물론 배를 발견한다고 해도 보따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밥은 먹었어요오? -

 

한 행인이 지나쳐 저만치 가다가 뒤돌아보더니 되돌아와 묻었다. 그 역시 그다지 좋은 행색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밥을 사줄 수 있을 만큼 부자인 것 같지 않았다. 태반이 하루에 세 끼를 찾아 먹기가 힘든 세상이었다. 내로라하는 양반도 걸핏하면 굶는 눈치였으나 체면상 드러내지를 못하는 형편이었다. 남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은 큰맘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선뜻 밥을 사주겠다고 나섰다.

 

- 아니구만요. 괜찮구만요. -

 

김석순과 김치삼은 겁이 났다. 전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칫 강경포나 군산포에서도 눈을 감았다가 코를 베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일단 시치미를 떼며 양팔을 내젓고 봤다.

- 하하하. 지는 진산에서 사는 최공우라고 허는디.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 허는 말이니께 염려할 것 없구만요. -

 

- 지도 고산 용계(지금의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사는 김석순이구만요. 지보다는 연배가 높은 것 같으니께 편하게 하셔요오. -

 

김석순은 반가웠다. 마치 본래부터 알고 지냈던 고향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생면부지 낯선 얼굴만은 아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더라도 장시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진산이나 고산과 금산은 한 고을이나 마찬가지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은 익숙했다.

 

고산 현내면의 상장기(上場基 지금의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와 하장기(下場基 지금의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 진산의 군내장시(지금의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금산 군이면의 도촌장시(지금의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와 부북면의 제원장시(지금의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는 고산과 진산은 물론이거니와 금산이나 무주 용담고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드는 장시였다. 최공우가 장시의 공터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담소하는 모습을 여러 번이나 봤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좋아했었다. 왠지 믿을 만하고 의지하고 싶어졌다. 최공우가 밝은 어투로 말했다.

 

- 여기서 고산 사람을 만나니 엄청 반갑구만. -

 

고산이나 진산과 금산은 한 고을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교류가 많고 혼례로 생긴 인연도 많았다. 이런저런 인연을 따져보면 알 만한 사람일 것이기에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느라고 하는 말이었다.

- 이 사람은 김치삼인디요 고산 장선 산다는 구만요. -

 

김석순이 쭈뼛거리는 김치삼을 소개했다.

 

-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닌가? -

 

- 제원부두에서 우덜 두 사람은 보따리를 뺏기고 죽도록 얻어맞기까지 하다가 서로 알았구만요. 참 별스런 인연이어요. -

 

김석순과 김치삼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그간의 사정을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어처구니없는 행색으로 한걸음에 달려오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최공우는 안타까웠다.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보나 마나 밭뙈기를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 앉을 형편이었다.

 

- 여각에 금산에서 온 부보상놈들이 있는디. 그놈들일 꺼여. -

 

김석순은 얘기를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띄었다. 어쩌면 보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금산 부보상이 확실혀요? -

 

- 임한석이가 사또하고 속닥거리는 것을 분명히 봤구만이요. -

 

- 여각이 어딨어요오? -

 

임한석은 말을 타고 나다녔다.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말 등부터 올랐다. 부보상으로서는 분수에 맞지 않았다. 사족들의 서슬이 시퍼렇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임한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으니 오히려 사족들이 못 본 채 넘기고 있었다. 갓도 그냥 쓰지 않았다. 양반들이 쓰는 큰 갓을 썼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도포를 입고 거들먹거렸다. 재물이 권세가 되어간다는 방증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거망동이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주목사까지 지낸 정숙조와 술상을 마주 놓고 앉아 속닥거린다고도 했다. 사실 그런 임한석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굶어 죽을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유리걸식의 처지로 내몰릴 판이므로 맞다가 죽더라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최공우의 얘기가 채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다.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여각으로 달려갔다.

 

- 지 보따리는 주셔야 것구만요. -

 

임한석은 취기가 달아올라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금세 터질 것 같이 빵빵해진 얼굴을 끄덕거리며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웃어젖히고 있었다. 보통사람의 두 배나 되는 몸집을 뒤뚱거리며 엽전을 꺼내어 양옆에 앉아있는 기생들에게 쥐여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석순의 얘기를 들은 것이다.

 

- 저 새끼가 뭣이라고 씨부리냐? -

 

마치 제원역 부둣가처럼 느껴졌다. 어느 틈에 서너 명이 덤벼들었다. 김석순의 양팔을 거머쥐어 뒤쪽으로 잡아챘다. 두 다리를 걷어차 마당에 무릎을 꿇렸다.

 

- 제원에서 지랄했던 새끼냐? -

 

- 그런 것 같구먼요. -

 

양팔을 붙잡아놓고 무릎을 꿇렸던 사내들 중 한 명이 김석순의 얼굴을 뜯어보고 대답했다.

 

-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가만 두지 않을라고 혔었다. -

 

임한석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산부보상단 접장이 될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비천한 부보상의 신분이었다. 금산군수를 지내고 청주목사까지 지냈던 정숙조가 함께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목청을 높여 호통치고 있었다.

 

- 그 보따리는 우리식구들 목숨이구만요. 곤장을 때래도 좋고 주리를 틀어도 괜찮은디. 보따리만 주시어요. 흑흑흑. -

 

김석순은 붙잡힌 양팔을 뿌리치고 스스로 바닥에 엎드렸다.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고개를 수그렸다. 굵은 눈물을 뚝뚝 소리가 나도록 한없이 떨어뜨렸다.

 

- 이 새끼가 국법까지 어겨놓고 무시 어째! -

 

- 뭔 말을 허시는지 모르것구만요. 허지만 지는 잘못 헌 것이 없구만요. -

 

- 저 뻔뻔한 새끼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혀라. -

 

부상들이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발길질과 주먹질이 얼굴과 몸통을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두 팔로 막아보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목숨을 앗아낼 태세로 계속하고 있었다.

 

- 증말 해도 해도 너무 허네. 무슨 잘못했는지를 말허고 죽이던지 살리던지 해 야제. 내가 볼 때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디. -

 

최공우가 여차하면 덤벼들 태세로 임한석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최공우는 본래 임한석을 마뜩잖게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무슨 짓을 하려는지가 짐작되어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표정이었다. 임한석과 최공우는 본래부터 아는 사이였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한때 동문수학을 했었다. 그때도 임한석은 유난스러웠다. 욕심이 많았다. 심술이 궂었다. 대대로 이어지는 아전 집안의 세도를 등에 업고 동배들 간에서도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었다. 그렇기에 자주 마주쳤지만 못 본 척 지나치곤 해왔다.

- 니를 보니께……저 새끼도 동비구만. -

 

임한석이 이때다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잖아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잘되었다는 반응이었다. 반색을 하며 벌떡 일어나 마루 끝까지 후다닥 걸어 나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지는 동학도가 무신지도 모르구만요. 지는 아니구만요이. -

 

김석순은 화들짝 놀랐다. 최공우를 쳐다보며 뭐 하러 끼어들었느냐고 원망하고 있었다. 오히려 혹이 하나 더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김석순은 동학도가 걸핏하면 붙잡혀가는 것을 여러 번이나 봤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몰랐다. 그때마다 동학도들은 적지 않은 재물을 갖다 바치고 겨우 풀려났었다. 그렇기에 김석순은 죽을 맛이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 저 새끼들이 그짓말을 허는구만. 그런다고 누가 믿을 것 같냐? -

임한석은 김석순으로 그치지 않았다. 곁에 서있던 김치삼을 지목했다. 동학도로 싸잡고 있었다. 부보상들이 김치삼의 양팔을 우악스럽게 낚아챘다. 김치삼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김치삼을 번쩍 들어다가 임한석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려 놓았다.

 

- 저 두 새끼들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디지게 쳐라. -

 

마치 사또가 죄인을 닦달하는 말투였다. 바로 곁에 앉은 정숙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고을의 수령이 죄인 다루는 행세를 하고 있었다.

 

- 아이고 생사람 잡네. 지는 잘못한 것 없구만요. -

 

김치삼도 흠씬 두드려 맞았다. 그렇지만 오리려 부보상에게 맞서려 들었다. 그럴수록 매질이 거세졌다. 결국 김치삼은 견디지 못했다. 제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저 새끼들이 끝까지 그짓말허내. 그런게 보따리에 있는 인삼은 뭣이냐? -

 

김석순에게 다시 매질이 시작되었다. 마구잡이로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맞아 죽더라도 도둑으로 몰릴 수는 없었다.

- 도둑질한 것 아니구만요! -

 

- 그러면 너 같은 새끼가 어쩌케 인삼을 갖고 있어? -

 

- 장사밑천인디요. -

 

- 인삼 장사를 헌다고? 저 새끼들이 국법을 동네 강아지로 아네. 허허허. 정말 디질라고 환장허는 놈의 새끼들이네. -

 

- 무신 국법이어라우? 지는 세금도 꼬박꼬박 바쳤고요, 환곡도 제때 다 갚았구만요. 군포도요. 정말로 지는 국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어라우. -

 

- 시끄럽다 새끼들아. 지 주댕이로 이실직고해놓고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것을 보니 지 정신이 들 때까지 디지게 때려야 쓰겄다. -

 

임한석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석순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제대로 비명조차 지를 새가 없었다. 부상들이 떼로 몰려들어 주먹과 발길질도 모자라 몽둥이질까지 했다.

 

- 어이 사람 죽일 란가? 저러다 죽겄네, 그만 좀 혀. -

 

엉겁결에 나온 최공우의 말이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맞아죽고도 남을 만큼 매질이 사납고 무작스러웠다.

 

- 국법을 어긴 새끼들인디 죽으먼 어뗘? -

 

임한석은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즐기며 약이라도 올리겠다는 태도였다. 여차하면 최공우도 저렇게 만들어주겠다는 투로 어깨를 거들먹거렸다.

 

- 나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몰러……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어. 이 사람들은 여그서 만났구만 동학교도가 아니어. 듣고 보니 굶어죽지 않을 라고 인삼 몇 뿌리로 장사혀서 살아보겠다고 나선 것인디 너무 허네. -

 

정숙조는 만취해 있는 모습이 분명했다. 제자리에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몸통을 이리저리 건들거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고함소리가 나고 비명소리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임한석이 눈짓을 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었느냐는 태도로 변했다.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우렁찼다. 위엄이 넘쳤다.

 

- 가만히 보니 저 놈도 동패로구나. 저놈을 잡아다가 매우 쳐라. -

 

정숙조의 목소리와 말투는 임한석과는 확연히 달랐다. 오랫동안 고을수령으로서의 관록이 제대로 묻어나왔다.

 

- 나리. 저자는 동학도 접주라는 잡니다요. 동패가 분명합니다요. -

두 사람이 언제 술상 앞에 마주 앉아있었느냐는 태도였다. 임한석이 정숙조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최공우를 지목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드는 게냐? -

 

정숙조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임한석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노기를 띠어 꾸짖었다.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아 들고 있었다. 그동안 한두 번 맞춰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 이 새끼들아! 나리 말씀을 무스로 듣냐! -

 

임한석이 또 맞장구를 쳤다. 마치 이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숙조의 말을 고함으로 옮겨 놓았다. 부상들이 고함을 신호삼아 최공우를 에워쌌다. 하지만 최공우도 만만치 않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태도였다. 움츠러들지 않았다. 되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주먹을 불끈 쥐어 가슴팍으로 올렸다. 눈을 크게 떠 부라리며 부상들을 을러멨다.

 

- 뭘 꾸물거리냐. 저 새끼를 당장 나리 앞에 꿇려놓아라. 어서! -

      

<04>편에 계속

     

 

 

이성수 소설가

 

[작가 소개]

   

이성수 소설가

 

아호 쾌술(快述)/전북 고창 출생/한국문인협회 회원/수원문인협회 소설분과 위원장/한국소설가협회 회원/소설동인회 스토리소동 회원/장편소설 '꼼수', '혼돈의 계절',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 칠십일의비밀' 외 단편소설 다수

 

 

 

 

 

 

[저작권자ⓒ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주요기사

+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