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은애숙] 조 씨 할머니 -②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08-24 04: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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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자 일본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왔어.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남자가 뭘 원하는지 금세 알게 되었지. 남자의 손을 뿌리치자 남자의 주먹이 내 옆구리와 가슴으로 내리꽂혔어. 버둥거리던 내 팔을 붙잡더니 사정없이 엉덩이와 다리를 걷어차더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어.

 

 

[연재소설-은애숙] 조 씨 할머니 -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어느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벚꽃이 진 자리에 앙상한 가지만 처량하다. 눈물 젖은 가지 때문인지 마음이 심란하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웅성거림과 함께 찢어질 듯 절규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떼의 병사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무서운 장면이 펼쳐진다. 한 병사가 어린아이를 공중으로 집어 던지자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떨어지는 아이를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아우성을 친다. 병사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달린 총이 들려있다. 아악 하는 비명소리······. 어떻게 이곳에 왔지? 왜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된 거야. 의문이 들었으나 감히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퍼붓는 빗줄기 속에 진흙탕을 텀벙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린다. 버림받은 짐승마냥 소나기를 맞으며 웅크린 채 꿇어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군인 하나가 칼춤을 추자 사람들이 맥없이 고꾸라진다. 혼절할 듯 머리가 멍해져 어찌할 줄 몰라 서성거리는데 발에 무언가 밟힌다. 절단된 사람의 사지가 진흙 속에 삐죽 나와 있다. 나는 그만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악몽을 꾼 때문인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꿈이니 망정이지 그런 일을 실제로 당했다면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을 테지. 야만적인 살해가 행해지는 동안 죽어가는 이들을 향해 웃음 짓던 군인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곰곰이 꿈의 내용을 생각한 끝에 언젠가 본 처참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가 꿈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게 된다. 내 마음속에 내가 직접 겪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 의식의 강물을 따라 흐르다가 어느 순간 꿈으로 형상화된 것임을 깨닫는다. 짙은 어둠이 깔린 먼 거리를 헉헉거리며 달려와 어두운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그것들이 목소리로 바뀌어 말을 거는 듯 느껴진다. 너 뭔 생각을 그렇게 하니? 엄마가 불러도 들은 체도 안 하고. 약속에 늦지 않으려면 퍼뜩 준비해라. 엄마의 잔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오늘 선배 언니 졸업식에 가야 하는데······.

 

 

 

방학 동안 누리는 홀가분함은 판에 박힌 듯 일정한 스케줄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 때문일 게다. 연락이 뜸했던 고교 동창들과 만나 조잘대고 웃다 보니 얼굴 근육이 당겨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저녁에 부부동반 모임이 있으니 일찍 들어와 동생에게 밥을 챙겨주라는 엄마의 당부가 생각나 아쉬움을 남긴 채 친구들과 헤어졌다. 동창들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동안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히터를 튼 버스에 오르자 나른해지며 절로 눈이 감겼다.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가진 건 두 쪽밖에 없으면서 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친 그 놈이나 새앰샘이지.”

 

고개를 돌리니 뒤쪽 구석진 자리에 그 할머니가 보였다.

 

그놈은 사람이 아니야. 날 보기만 해도 짖어대는 걸 보면 멍멍이가 확실해. 원체 개란 동물은 영물이라고 하잖아. 서방 개는 대가리에 쉬가 쓸었는지 머리 쓰는 건 젬병이니 개보다 못한 거 같아. 어디 머리뿐인가! 몸뚱이에 붙었으니 겨우 사지 구실하지, 팔다리 움직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니······. 굼뜨기로 말하면 굼벵이가 형님하고 부를 정도야. 이놈의 영감탱이, 죽으면 썩어질 몸 왜 그리 아끼는 거야! 제 몸 귀하면 다른 사람 몸 귀한 줄 알아야지, 마누라 종년 부리듯 하니 원통하고 절통하다! 반백 년을 아등바등, 헐레벌떡, 조마조마, 그렇게 살았어. 눈감고 가만히 있어도 거저 생기는 사람 있고, 두 다리 떨어지게 동동거려도 빼앗기는 사람 있다더니 내 꼴이 꼭 그렇지 않은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았다고 허둥지둥 살겠나! 야들야들, 소곤소곤, 고상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다!”

 

 

 

화서 오거리가 가까워지자 할머니가 어기적거리며 버스 출입구로 걸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할머니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할머니, 시간이 된다면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할머니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도 동동대다 겨우 한 끼 먹었어. 젊은이가 어쩜 이리 속이 깊은가. 생전 처음 본 늙은이에게 밥을 사겠다니. 고맙네, 고마워.”

 

할머니는 추운 몸을 녹이는데 칼국수가 제일이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오거리에서 이십 여 미터 걸어가니 재래시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칼국수 메뉴판을 크게 써놓은 식당이 눈에 보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아직 손님이 들지 않아 한산한 듯 보였다. 식당 여주인이 할머니를 보자 아는 체를 한다. 조 씨 할머니가 우리 식당엘 다 오고. 오래 사니 신기한 일도 구경하네. 할머니가 뜨악한 눈길로 주인을 쳐다보자 웃음 띤 얼굴로 너스레를 떤다. 춥다고 들락거리다 국물 한 사발 얻어 자신 적은 있어도 돈 내고 사먹은 적 없잖아요. 할머니가 빽- 소리를 지른다. 장사 안 할 거야? 사설 그만 두고 여기 칼국수 곱빼기로 끓여와.

 

 

 

조 씨 할머니는 추위에 언 몸이 녹자 꽁꽁 언 수도꼭지가 녹아 물이 떨어지듯 입이 풀려 말이 술술 터져 나왔다.

 

할미꽃은 어려서도 할미꽃이지. 각시풀은 늙어 쇠도 각시풀이야. 내 이름이 뭔고 하면 애기야, 애기. 이리도 볼품없이 늙은 할망구가 애기라니? 내 소개는 이만하고 젊은이, 날 보고 맛이 간 노인네라고 생각했을 거야. 근데 신기한 건 마음껏 노래하고 떠들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거야. 뭉치고 꼬인 것들이 확 풀어져 체기가 내린 것마냥 시원해져. 남이 미쳤다고 수군거리면 못 들은 척 무시하면 돼. 이 노래 저 노래 흥흥거리고 사설 한 바탕 쏟아내면 날아갈 것마냥 마음이 가벼워지더군. 버스에서 떠드는 재미가 날 지탱해줬어. 남들처럼 쭉쭉 뽑아 놓은 자식이 있나, 허우대 멀쩡하고 속 깊은 서방이 있나?”

 

할머니, 자녀분이 없나 보죠?”

 

조 씨 할머니는 푸석푸석해 보이는 손등을 한 차례 비비더니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있기야 있지. 그래도 자식 농사, 완전 황은 아니야. 아들놈 하나는 지 에미 불쌍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니. 지금 세상은 무서운 곳 아닌가. 부모 재산 등쳐먹고 나 몰라라 하는 썩을 인간들이 수두룩하거든.”

 

할머니의 손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닭발 모양으로 주름진 손가락이 사람의 손이라기보다 짐승의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말하거나 음식을 씹을 때 입가에 진 주름이 깊게 패었다가 희미하게 자국을 남기곤 했다.

 

할머니, 봄나물 뜯으러 갔다가 사기꾼 꾐에 넘어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조 씨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멈추고 김이 나는 뜨거운 그릇을 입에 댄 채 호호 소리를 내며 국수물을 마셨다. 할머니가 옛일을 떠올리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성질이 원래부터 울퉁불퉁했던 건 아니야. 어른들이 날 보고 칭찬했어. 눈썰미가 뛰어나 어디에 내놔도 흠 잡힐 데 없다고.”

 

할머니는 주먹을 쥔 손으로 가슴을 치며 넋두리를 이어갔다.

 

나를 데려간 남자를 따라 먼 길을 갔던 게 생각나. 그 남자가 말해주었어. 여기가 만주라고. 중국사람 집에 며칠 동안 머물게 됐지. 해가 떨어지자 일본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왔어.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남자가 뭘 원하는지 금세 알게 되었지. 남자의 손을 뿌리치자 남자의 주먹이 내 옆구리와 가슴으로 내리꽂혔어. 버둥거리던 내 팔을 붙잡더니 사정없이 엉덩이와 다리를 걷어차더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어. 이름도 모르는 처음 본 남자한테 강간을 당했지. 나중에 들으니 짐승 같은 그놈을 군속이라고 부르더군. 그놈에게 당한 후 한동안 소피를 보는 게 고문당하는 것 같았지. 흘러나온 오줌이 연약한 그곳에 닿기라도 하면 칼로 찌르는 거 마냥 아팠으니. 아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

 

어느덧 할머니의 눈 주위가 축축해졌다. 그걸 보자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원통하고 절통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조차 없었지.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것밖에 별 도리가 없었으니. 군부대 위안소에 가니 나보다 어린 여자들도 있더라. 하나같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왔더군. 위안소를 운영하는 업자들이 우리를 끝없이 감시하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지. 매일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목숨이 끊어져 송장이 될 때까지 그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으니. 숨을 쉬니 목숨이 붙어 있는 거지, 우리는 산 게 아니었어. 그런데 기막힌 건 지옥 같던 그곳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꼈다는 거야. 어느 날,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나는 거야. 콩깍지를 태워 아궁이 불을 때는 냄새가 났어. 그 냄새를 맡자 고향에서 먹던 음식들이 떠오르는 거야. 정초의 떡국, 대보름날의 약식과 부럼, 한식의 개피떡과 동짓날 팥죽까지······. 고향 음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더라.”

 

 

 

할머니는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자 나에 대한 경계심을 떨쳐버린 듯 비루하고 곰팡이 냄새 가득했던 끔찍한 일들을 더 털어놓았다.

 

위안소의 하루는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해. 위안소를 운영하는 일본인이 어찌나 인색한지 변변한 옷가지나 이불 같은 것도 없었어. 군인들이 줄을 서면 우리의 하루가 시작돼. 군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우리에겐 부끄러운 곳을 가릴 얇은 거적 한 장만 주어졌어. 적게는 네댓, 많게는 예닐곱 명을 상대했으니.”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위안소의 모습이 파노라마의 한 장면마냥 그려졌다. 군인 하나가 들어온다. 빡빡 깎은 머리와 시큼한 땀 냄새, 퀴퀴한 고린내가 섞여 있다. 급히 바지를 벗은 남자가 제물인양 바닥에 누운 그녀를 향해 달려든다. 망치같이 단단해진 뜨거운 것이 그녀의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사타구니를 후벼 파는 극심한 고통······.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괴성을 지르다 움직임을 멈춘다. 쿰쿰한 정액이 묻은 그녀의 하체. 고약하고 불쾌한 느낌으로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보낸 이 년의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토해냈다. 굳어간다는 건 죽는 거야. 그 짓을 하다 보니 일상생활처럼 여겨지더군. 어느 날 한 여자가 아편을 먹고 자살했어. 짐승마냥 땅에 묻히지도 못하는 걸 보고 결심했지. 시체는 왜 묻지 않았냐고? 엄동설한 매서운 추위에 땅을 팔 여력이 없었나 봐. 그게 아니라면 우린 군인들이 맘껏 희롱하다 망가지면 내버리는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던 게지. 그때 결심했어. 도망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위안소를 빠져나가야겠다고. 위안소를 드나드는 군인 중에 나와 고향이 같은 조선 사람이 있었어. 그 남자에게 무턱대고 도와달라고 했지. 남자가 그러더군, 꼭 살아야 한다고, 이곳에 있다가 개죽음당하느니 힘껏 도망쳐 살아남으라고. 남자가 생명 같은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줬어. 그다음 날 생리가 터진 거야. 죽겠다고 소리치며 데굴데굴 굴렀지. 위안소를 운영하던 일본인 업자가 그날 하루만 봐줄 테니 군인들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아직도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늘이 날 도와줘 목숨을 건진 게야.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다 깜깜한 새벽에 밖으로 나왔어. 용변을 처리하는 장소 곁에 개구멍이 뚫려 있는 걸 봐두었거든, 무조건 부대와 반대 방향으로 뛰었어. 뛰다 걷다 잠시 쉬다 또 달음질쳤을 거야. 그러다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는데 중국인 차림의 남자가 지나는 걸 보고 무조건 돈부터 내밀었어. 그 남자를 따라 집으로 갔지. 곡식을 보관하는 토굴 속에 날 숨겨 주었어. 그 남자가 죽은 마누라 옷을 내주더군. 매끈한 내 손을 보더니 진흙과 채소를 으깬 즙을 섞어 발라주었어. 어찌 됐건 농투성이 손처럼 꾸며낸 지 며칠 후 일본군이 민가에 나타났어. 남자가 일러준 대로 중국말 몇 마디를 쏼라쏼라 중얼거려 간신히 위기를 면할 수 있었지

 

  편에 계속

 

은애숙 소설가

은애숙 소설가 프로필

 

 

-연세대학교 가정대학 졸업 -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수상(소설)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문학회 시와 사람들회원 -소설동인회 스토리소동회원

-소설집 : 마리아의 환상 사용법,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소설 동인지 참여 : 오작교를 건너다, 엄마의 남자, 신부님과 여동생-문학회 시와 사람들동인지 참여 : 시의 길을 걷다(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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