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무방비’만으로도 선관위 재조직(리셋팅 Resetting) 사유 충분
개표시스템 수개표(手開票)로 당장 바꾸고 선관위도 완전히 갈아엎어야
선거 조작에 취약한 '사전투표'의 존폐에 관한 새로운 검토도 필요
유럽 선진국들이 ‘수개표’를 고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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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 ‘투표시스템, 개표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됐다’는 결론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사진은 선관위가 사용하는 자동 개표기. |
설마, 설마 했다. 지난 정권 때 치러진 각종 선거 끝에 불거진 ‘부정선거’ 논란 때마다 그저 피해망상에 빠진 극우 선동가들의 오버(Over)에 불과하려니 하고 백안시해온 일이다. 뒤늦게 나온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 "투표시스템, 개표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됐다"는 결론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요, 뒤늦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격이다.
국정원의 보안점검은 국회 교섭단체 추천 여야 참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7월 17일부터 9월 22일까지 두 달여간 진행됐다. 선관위 내부망은 물론 투표시스템을 넘어서 개표시스템까지 해킹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선거 관리가 통째로 위험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정선거야말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최종 보루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선관위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 온 것인가?
보안점검에서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부터 인터넷을 통해 침투할 수 있었고, '사전 투표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바꾸거나 '사전 투표하지 않은 인원'을 '투표한 사람'으로 바꿔 표시할 수 있었단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유권자도 정상적인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에 인가된 장비가 아닌 외부의 비인가 컴퓨터도 연결할 수 있어 내부 선거망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권자가 최종 선택을 고민할 시간을 빼앗는 문제 등을 비롯해 기술적으로 선거 조작에 취약한 사전투표의 존폐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한 지점이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마저 맥없이 뚫렸다니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야 할 개표시스템에 해커가 접속해 개표 결과를 변경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는 대목은 기절초풍할 내용이다. 특히 투표지 분류기에 비인가 USB를 무단으로 연결해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인터넷 통신이 가능한 무선 통신장비도 연결할 수 있었다니 할 말을 아주 잃게 만든다. 선관위는 "그건 단지 가능성일 따름"이라면서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헛말만 거듭하고 있다. 보안점검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도 않았다는 뒷말은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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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의 가상 해킹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 /연합 |
지난 2021년 4월 실제로 선관위의 인터넷 컴퓨터가 북한 해킹 조직인 '김수키'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한 직원의 상용 메일함에 저장된 대외비 문건 등이 유출됐던 소동이 새삼 기억난다. 더욱이 그 끔찍한 사실을 국정원이 통보하기 전까지 선관위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간 투개표시스템이 해킹된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21대 총선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던 소란까지 망각할 수는 없다.
당시 보수 유튜버들과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득표율(군소정당 제외 수치)이 수도권에서 모두 63%대와 36%대라며 정부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문제 제기는 끝내 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세력이 선거 후 제기하는 유치한 불복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정통 언론들마저도 ‘내부고발’ 등 똑 떨어지는 증거가 없는 이 문제를 이슈화하기에는 부담이 커서 외면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나라 전체가 다 뒤집히고도 남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 부정선거 논란…‘불복 세력의 음모론’으로만 치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달에도 중앙선관위의 무책임한 대응은 어이가 없다. 국정원의 보안점검 결과 선거 관리시스템 자체가 한마디로 완전히 ‘개판’이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선관위는 ‘저항’과 ‘변명’만 일삼고 있다. 해킹에 의한 조작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고, 절대로 가능하지도 않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적된 문제에 대해 석고대죄하고 국민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만들겠다고 맹세해도 시원찮을 판 아닌가.
뒤늦게,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점검에 수상한 저항을 지속했다는 흔적마저 계속 드러나 놀라움을 던져준다. 선관위는 '시스템 구성도'의 경우 정작 IP주소나 서버 용도와 같은 핵심 정보는 모두 삭제한 뒤 국정원에 내줬고, 취약점을 탐색하기 위해 설치한 '점검 도구'를 몰래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해킹 피해를 입은 장비를 포렌식하려고 저장장치 제공을 요청하니까, 장비구매 예산 핑계를 대며 어물어물했단다.
선관위 보유 장비가 모두 6400여대 정도인데, 이번 보안점검은 그중에 고작 5%인 317대만 점검을 했다. 나머지 95%에 대한 전체적인 점검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핵심인 2020년 총선 관련 추가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지만, 당시 사용했던 임대 전산장비는 이미 반납됐고, 보안장비 로그 보존기록도 보관기한이 2년밖에 안 돼 사라졌으니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확실히 입증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한다. 갑갑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전산장비 ‘반납’, 로그 보존기록 사라져 의혹 해소 방법 묘연
국정원의 발표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 불복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비난하며 대들고 있다. “아무리 안전한 보안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문자 그대로 정신 나간 변명이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헌법기관이 이 무슨 헛소리인가. 보안관리는 내팽개치고 채용 비리에 전념한 타락한 헌법기관의 참담하기 그지없는 총체적 직무 유기다.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의법 처리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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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점검에 수상한 저항을 지속했다는 정황마저 계속 드러나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
“만약 수사 결과 모종의 조작 장난질이 있었고, 선관위가 몸통이거나 연루됐다면 주범들을 광화문에 목을 걸어 매달아야 한다”는 성난 목소리들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헌법기관이라는 허울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에서 친인척들을 끌어다 취직이나 시키면서 허술한 관리시스템을 방치한 국가기관에 대한 깊디 깊은 분노의 표출이다. 검찰은 중대한 사명 의식으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 농단을 찾아 반드시 그 죗값을 물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선거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은 만능이 아니다. 기술이 기술을 잡아먹는 시대에 제아무리 발달된 기술도 또 다른 기술에 장악당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해킹 가능성’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조작 가능성’이다. 물론 지금의 전산을 이용한 집중 개표방식은 기능 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산 부정 이외에 개표소 이송과정에서의 외부개입 부정 의혹 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개표방식부터 ‘투표소 현장 수개표’로 하루빨리 바꿔야
선거 개표방식을 아날로그로 되돌리자는 견해는 정치권에서 꾸준히 등장했었다. 시민운동 단체는 물론, 복수의 정치인들이 ‘투표소 수개표 도입 법안’을 주창해왔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투표소에서 즉각 수개표를 실시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등 서구 정치선진국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동안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사용한 키르기스스탄, 이라크, 콩고 등 여러 나라가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렸고, 특히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하야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콩고 선거에 한국산 전자투표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까지 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전자투표기 사용을 위헌으로 선언했다. 여러 유럽 선진국들이 ‘수개표’를 고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투표가 끝난 뒤 각 후보와 정당의 참관인과 경찰, 선거관리위원의 입회 아래 투표장에서 바로 개표하는 것만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공명성(公明性) 확보’가 비용 절감이나 속도보다 백배 더 그 가치가 높다.
굳이 옛날에 비유하자면, 선거 조작은 권력을 농단한 중범이니 ‘대역죄(大逆罪)’에 해당한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 과정에 부정과 음모, 조작이 개입될 여지는 결단코 없애야 한다. ‘해킹 무방비’가 드러난 것만으로도 선관위는 재조직(리셋팅 Resetting) 사유가 충분하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선관위는 이미 그 존재가치를 잃었다. 그냥 넘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선거관리위원회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용서받지 못할 중대 허물을 짓고도 ‘배째라식’ 방자를 떨고 있는 이들을 대체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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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선진국들이 현장 ‘수개표’를 고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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