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호사카 유지] “한국은 내게 영적인 생명을 준 나라”

하성호 기자 / 기사승인 : 2021-11-13 03: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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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돕는 “韓 홍익인간 사상” 세계선도… K-한류가 증명

일본 초고령화 65세 이상 인구 세 명 중 1명꼴 쇠락의 길 들어서

日도 모르게 추월한 한국 1인당 GDP 등 세 가지…세계가 놀라워해

광개토대왕비 탁본 해석 “고대 일본 가야지역 지배”가 왜곡 주범

 

 

일본은 저를 낳아준 어머니 같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은 제게 인생에서 사명감을 주었고 영적인 생명은 한국에서 받았다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많이 아는 일본인으로 통하는 세종대학교 호사카 유지(ほさかゆうじ) 교수는 한국과의 인연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호사카라는 성() 씨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백제 66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백제 유민이었던 생각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모국 일본이 남의 나라를 짓밟고 그토록 끔찍하고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면서 그토록 잔인해야 했던 이유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밝혀내는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23년 전 한국행을 결심한 동기를 밝혔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다른 나라를 도우려고 하는 한국의 홍익인간사상이 결국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로 만들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펼쳤다.

그는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공학부 졸업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한국에 들어와 2003년 대한민국 국적취득그리곤 세종대에 독도종합연구소를 꾸리고 호사카 유지의 일본 뒤집기(2019, 북숲코리아),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2019,지식의숲), 신친일파(2020, 봄이아트북스)등의 저서를 냈다. 그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하며 개명보다는 일본명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지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음은 지난 1030일 가졌던 특별 인터뷰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편집자 대담 인터뷰 및 기록=하성호 민족역사팀 부국장

 

 

 

-지난 1015일 한가람 역사연구소(소장 이덕일·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에서는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약칭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가 창립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권 공약인 가야사를 복원하여 영·호남의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 사기꾼들의 졸개들이라 할 수 있는 한국사학계의 99.99%의 강단사학계가 한국인 세금 12천억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유네스코에 일본서기(720년 편찬. 편찬자 모름)에 나오는 남원을 기문국으로 합천을 다라국으로 등재시키려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유네스코 실사단의 입국절차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즉 가야가 임나일본부라는 고대의 일본식민지였다는 거죠. 8.15 독립 이후 땅만 찾은 절반의 독립 후 지금까지 76년간을 혼돈으로 국민을 기만하며 완전한 역사독립까지는 거부하고 있는 사실이 바로 오늘의 한국의 정치상황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극우나 토착 왜구로 불리는 이들은 교수님의 저서인 신친일파와는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신친일파라는 책에서도 썼습니다마는 제가 얘기하는 신친일파라는 것은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한국에 퍼뜨리는 사람들그렇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가야사라든가 한국사학회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신친일파라는 것은 일본 극우의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 극우의 논리 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 독도문제 기타 일제강점기에 관한 여러 가지 일본 극우 쪽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론 황국사상(皇國思想)이라던가 청산되어 있지 않은 역사학계의 문제와는 간접적인 관계는 있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신친일파들은 또 기존의 역사학계의 세력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말하자면 본류가 아니라 아류라고 할 수가 있죠. 그런 면에서 지금 질문하신 역사학계의 문제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양쪽 다 청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호사카 교수님께서는 고교 시절 역사를 좋아했는데 가업을 잇기 위해 이공계로 진학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업이 흔들리면서 부친께서는 자식들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주셨던 걸로 압니다. 교수님의 한국과의 인연의 결정적 역사사건이 바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1895)’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야쿠자가 아유카이 후사노신이라는 사람은 아닌가요? 이 일제 식민사기꾼은 임나가 경남은 물론 경북, 충남, 전남까지 차지했다고 하며 역사 왜곡을, 차마 학자라 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해댄 것입니다. 그런 인물을 일제 식민사기꾼 야쿠자의 졸개들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칭송까지 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일본서 고교 시절 역사를 좋아하실 때의 일본서기와 한국에 귀화하셔서 일본서기는 어떤 느낌이 오던가요?

(사기꾼이라는 저속한 비어를 쓰는 것에 대해, 그만큼 기자는 분노의 표시라고 이해 바랍니다.)

 

제가 특히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던 건 사실이고요. 그 역사적인 사건을 알게 됨으로써 이게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한 감정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한국말로 한국분들하고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 한국에 오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실제로 명성황후를 누가 시해했는지 사실 안개 속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낭인들이 몇 사람 있었고 또 자신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일본에서 재판이 되어서 공판이 이루어졌지만 모두 히로시마에서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다 무죄가 되었죠. 그런 내용들은 일제가 사실상 권력을 사용하면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그렇게 낭인이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자신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것을 나중에 후회하여 큐우슈우에 있는 그의 집에 명성황후의 명복을 비는 비석 같은 것을 세웠습니다. 그러한 역사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로 명성황후를 살해했는지는 역시 안개 속입니다. 당시 명성황후가 궁녀들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명성황후였는지에 대해서 낭인들도 상당히 헷갈렸다고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서기는 제가 일본에 있을 때는 상당히 왜곡되어있는 역사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일본서기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일본서기의 왜곡된 부분하고 행간에는 숨겨진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이런 거를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특히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왜곡했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임나일본부설은요 정확하게 읽어보면 일본 쪽의 요청을 임나일본부가 많이 고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당시 일본왕조의 속국이 절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측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왕조는 백제에게 요청을 하여서 임나일본부 쪽에 요청을 하는 조치를 그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임나일본부가 혹시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거는 일본 쪽의 식민지라던가 그러한 개념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임나일본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가야계 일본인이라고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거는 가야사람이었는데 일본 쪽에 건너가서 다시 가야로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야 하고 일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교류가 많았습니다. 일황(천황) 중에서 가야 출신으로 보이는 그러한 일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야 12개 국가 중 어느 부분에서는 일본의 철을 공급하고 있었던 그러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일본은 철이 대단히 필요했기 때문에 가야 하고 일본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고요. 그러한 관계 안에서 그 가야계의 높은 사람이 일본에서 일황 천황이 된 정황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킹메이 천황이라고 하여서요 당시 백제의 성왕이 킹메이 천황에게 538, 552년인가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일본에 불교를 전했습니다. 그때의 성왕이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을 때에 일황이 킹메이 천황인데 그 천황이 사실상 가야출신이다라는 이야기가 쓰여 있지만, 당시 가야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나일본부는 하나의 건물이라던가 산성 그 정도의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야 전체로도 해설하는 것이 18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생긴 육군입니다. 육군이 역사적인 왜곡을 심하게 시작해서 임나일본부가 가야 전체였다는 그러한 왜곡을 하기 시작해서 그것을 일본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다라는 언설은 사실상 일본육군이 만들어낸 언설이고 일본서기를 정확히 읽어내어서 만들어내는 해석이 아닙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라는 그 명칭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만은 현재 일본 쪽의 학계하고 한국 쪽의 학계가 일단 합의한 부분은 가야지역 전체가 아니라 일본하고 대등한 관계로 교섭하고 있었던 산성 정도로 존립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기성학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고 그러나 일본의 극우들은 당시에 일본의 육군이 만들어낸 가야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거는 일본서기에도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남한의 강단사학이 없는 사람 취급한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대 한일 관계사 논문 300, 학술저서 30권을 저술한 분입니다. 이분 말씀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다 외우셨던 분)필자는 아무리 읽어도 일본서기에서 가야와 임나가 동일한 나라라는 기사를 찾지 못하였으며 또한 가야는 물론이려니와 이른바 임나가 일본부의 지배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는 주장은 일본인 학자들의 역사왜곡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서슴없는 국제공문서위조는 일본의 어떤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보십니까?

 

이 부분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요 일본이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강한 일본 만들기 이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일본 육군이 한반도하고 중국에 많은 간첩을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서 1880년대에 그 간첩 중 한 사람이 발견한 것이 광개토대왕비였습니다. 그런데 그 광개토대왕비에 탁본을 만들어서 일본에 많이 가지고 갔습니다.그 탁본을 해석하는 가운데서 일본육군은 고대 일본이 가야지역을 지배했다는 왜곡을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와있는 하나의 부분을 상당히 왜곡해서 해석한 것이고 결국은 당시 한반도 남쪽의 왜가 광개토대왕하고 싸웠다는 내용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광개토대왕에게 패배하여서 왜는 일본 쪽으로 퇴각한다고 나왔지만 그러나 한동안은 임나일본부가 가야지역을 지배했다는 것을 일본서기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광개토대왕 비문을 왜곡시켜서 만들어 낸 일본육군이 본 소리였고, 그것은 일본육군이 한반도를 지배한 강한 나라였다는 사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라든지 일본군이 만들어낸 허상 이것을 또 교과서에 싣기 시작해 가지고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이 일본의 왜곡으로 발전되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님의 성() 호사카는 희귀한 성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친께서는 조상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족보를 살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조상의 뿌리가 한국에서 건너간 백제계의 후손일 것이라고 유튜브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조상이 한국에서 건너간 시기를 구체적으로 A.D몇 년인가는 알 수는 없는가요?

 

제 아버지가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호사카라는 성()에 대해서 역사학자하고 함께, 그리고 일본에서는 씨라고 하는 성씨를 연구하는 사람하고 함께 호사카의 뿌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호사카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후지와라 씨라는 호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후지와라 씨의 시작은 600년대 초입니다. 특히 후지와라 씨가 섬긴 사람은 일본에서 덴지 왕이라고 말합니다. 덴지 왕의 활동을 보면 백제에서 건너간 부여풍(요분장=)하고 모습이 겹치는 것입니다. 부여풍은 의자왕의 형 혹은 동생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여풍의 행동하고 일본의 덴지 왕의 행동이 일치됩니다. 또 백제가 망해 가지고 그 일본에서 많은 병사를 백제에 보냈을 때 옛 백제의 땅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을 하겠다고 말해서 기실 복신이라는 의자왕의 측근이 일본에 가 있는 부여풍을 다시 한반도로 보내달라 고 일본의 당시 여왕이었던 사이메이 여황에게 요청합니다. 그때 부여풍에게 먼저 5,000명의 군사를 붙여서 사이메이 여황은 다시 부여풍을 한반도에 보냅니다. 그리고 그때 특이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부여풍이 백제의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백제왕으로 즉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이거는 상당히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왕조가 부여풍을 백제왕으로 즉위시킨 것은 어떤 권한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즉위시켜 한반도로 보낸 거죠. 이것은 당시 왕조하고 백제왕조가 사실상 하나의 형제 왕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고 그리고 또 더 기이한 내용은 부여풍이 옛 백제 땅으로 건너간 이후 3년간은 일본서기에서 일본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대신 부여풍이 3년간 백제부흥운동을 옛 백제 땅에서 하는 한반도의 역사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냐 하면 일본서기라는 것은 일본 천황, 일황의 역사가 기록된 그러한 책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3년간 일본 역사를 쓰지 않고 부여풍에 대해서 한국 역사 옛 백제부흥운동에 대한 역사를 썼다는 자체가 부여풍 자체가 일본의 왕이었다라는 것을 일본서기가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백제부흥운동이 실패해 가지고 부여풍은 고구려로 도주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뒤 6개월 후 일본에서 그때까지 3년간 모습을 감춘 덴지 왕이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게 660년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또 그 질문에 돌아가지만 그 시절에 후지와라 씨가 덴지 왕의 측근으로써 아주 큰 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연구를 보면 그 후지와라라는 가문이 역시 백제에서 건너갔다라는 연구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조상이 후지와라 씨이고요. 그래서 호사카라는 이름은 많지 않지만 유서 깊은 성씨이고 쭉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그러한 성씨이기도 하고 후지와라에 도달하고 후지와라 씨는 백제계로 알려져 있는 그러한 일본의 당시 1400여년 전쯤의 그 호족입니다. 그 이후 계속 일본 역사에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660여 년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족보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호사카라는 성 씨에 대한 연구. 일본에서 족보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옛날까지는 없습니다. 한국 하고는 좀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금 남원시 가야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상임대표 곽충훈)’에서는 관·민이 일치된 화합과 정서 속에서 유네스코 실사단이 아무리 비밀리에 입국해도 바로 알 수가 있고, 바로 고분군을 폐쇄할 강력한 수단을 행사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안심을 당부했습니다. 남원의 정서는 일본과의 전투에서 한()을 크게 두 차례나 가진 고장입니다. 첫 번째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군의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성스러운 장소로 사적 272호인 만인의총(萬人義塚)이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교토시에 있는 귀 무덤을 모두 고향으로 이장하라고 지금 일본 측에 압력을 행사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또한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 다음 제2의 장군인 김개남 장군이 남원에 집강소을 설치하여 천민출신 신분 동학 농민군부대를 편성하여 천여 명을 뽑아 사력을 다해 충성을 다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장에서 지난달 19기문가야 선양회주최 국민대 김재용 교수가 지리산 소극장에서 연설을 하는데 남원시민들은 바로 그때 벌떡벌떡 일어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며 소란이 일어났고 강의가 중단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국민대학교 김재용 교수는 무서워 벌벌 떠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자는 식민사학도 이제 임계점을 지났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수님은 앞으로 내년에 있을 유네스코에 과연 식민사학자들의 의견대로 남원은 기문국, 합천은 다라국으로? 등재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 제가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국민대 교수께서 무슨주장을 하는지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답변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 그 내용은 저도 모르지만 제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전에는 식민사학자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해도 조용했지 않습니까. 지금 남원시민들이 바로 벌떡 일어나서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느냐하니까 나중에 벌벌 떨더란 이 말이에요, 무서워서. 그것을 이제 알리고 싶었던 겁니다.

 

. 그러면 식민사학자들이 무엇을 주장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일본강점기에 일본에서 거짓으로 만들어놓은 학설을 만들고 있다면 이것은 배척해야 할 부분이고요. 이러한 내용은 정확하게 발표할 필요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학교에 있는 사학자들이 모두 식민사학자라고 하기는 어렵고, 그러나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거짓 역사를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에 최남선이라던가 이런 사람들이 가담을 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서 한반도 역사 자체를 엄청나게 왜곡하는 그러한 일본 측의 역사학계를 1915년부터 한반도에 설립을 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저도 알고 있기 때문에요. 그러한 부분들이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어느정도 청산되었는가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고 일반 시민들이 그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일본이 줄기차게 죽이려는 우리의 실존 조상 단군조선 47(B.C2333~238) 시대의 서적은 중앙일보 1999126일 자 제목에 단군 관련 史書 日 왕실도서관에 가득을 비롯 한겨레 신문 1998926일 자에 ……(전략) 일본 황실문고에서 일하다 해방 직후에 귀국한 박창화(당시 56·사망) 씨는 일본 황실문고에서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사서를 분류하고 내용을 파악하는 일을 했다면서 당시 같이 근무했던 일본인으로부터 이런 중요한 사료들은 모두 빼앗아 왔기 때문에 한국에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중략)……사단법인 한배달은 일제는 합방 직후인 191011월부터 12개월 동안 전국에서 그들이 지목한 불온서적에 대한 1차 압수수색을 실시, 5120여만 권을 수거했다는 기록이 총독부 관보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왕실도서관 서릉이라는, 한국 관련 서적만 그득한 그곳을 과연 일본이 열어줄 날이 올 것인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일본 왕실이 또 상당히 개방되어야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왕실이 민주화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사실 왕실이 현재 내각이 결정하는데로 움직이는 것이 일왕의 위치이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적입장이 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경우는 일본정부 바로 일본 내각이 보다 진보적인 세력이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일본강점기에 여러 가지 약탈된 문화재라던가 이런것들이 또 한국에 돌아오기도 하고요. 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극우적인 정당이 10년이상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본 왕실에 있는 여러 가지 서적들이 우리가 열람할 수 있는 날은 상당히 먼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상황은 그렇습니다.

 

 

 

- 1905년 가쓰라-테프트 밀약에서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 일본은 대한민국을 점령한다는 사실을 몰래 합의했습니다. 한국의 지성인들은 남북분단의 책임을 일본의 한일합방으로 봅니다. 더군다나 일본 전범 책임을 한국에 떠넘겼습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뒤 동서로 나뉜 것은 승전국들이 전범 국가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학살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그 책임을 일본에 식민지 피해를 당했던 한반도를 일본 땅으로 보고 남북으로 가른 것이었습니다. 한국 속담에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인 개인에게도 운수가 있듯이 국가에도 운세는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뇌를 다쳐 머리가 바보가 되었다가 신통·영통 신선을 만나 눈에서 눈으로 기()를 넣고 눈에서 손가락 사이로 기()를 넣은 적이 있습니다. 세 차례 기()를 받았는데 두뇌가 확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이젠 일본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시절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도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이고 밝게 보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교수님께서 한민족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어떤 것에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까지의 역사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하고 대륙세력이 싸우는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해양세력하고 대륙세력의 샌드위치가 되는 연해지역에 있는 나라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한국이었던 거죠. 그래서 항상 한국은 중국이나 남하하는 러시아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일본이나 미국에게 협공 당하는 입장이 한반도였고 또 한반도가 평화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 사상이 대단히 평화스러운 민족이었기 때문에 무력을 많이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대륙세력 그리고 해양세력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한반도는 특히 남한은 일본을 추월 1인당 GDP수준에서는 2018년에 일본을 추월했고요. 여러 가지 경제지표는 일본을 추월한 것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북한도 따라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평화공존을 한다면 이제 해양세력도 대륙세력도 한반도를 넘볼 수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코로나 19 팬데믹 현상(세계적 대유행)에 의해서 인류의 적도 바이러스 그러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래서 인류가 무기를 들고 인류끼리 싸우는 그런 싸움이 점점 종식되어서 인류의 바이러스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역시 그러한 방역문제에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서도 세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의 크기 문제보다도 나라의 기술력이나 또 다른 나라를 도우려고 하는 홍익인간 사상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를 선도할 것이고 그리고 한류, K-pop으로 볼 수 있듯이 인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가 또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지금 말씀하셨습니다마는 한국에는 기()가 있는 산들이 많습니다. 서울에 있는 북한산이나 옛날에 삼각산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삼각산을 중심으로 하여서 경성, 옛날에는 한양이라고 하였죠. 한양은 삼각산을 조종산으로 하여서 도읍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산의 기()를 많이 받을 수가 있는 그러한 한국의 지형을 볼 때 한반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학을 초월하는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 개인이 또는 대단히 우수한 사람들이 나오는 그러한 요소를 갖고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여러 가지 예언들이 21C는 한국의 한반도의 시대가 된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 가지고 저도 그런 부분은 많이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그러한 시대가 완전히 갔고 이제 일본은 쇠퇴의 길로 들어갔고요. 그거는 특히 많은 일본인들이 65세가 되었고 초고령화사회가 되었습니다. 거의 30%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65세 이상이 되어서 3명 중 한 사람은 65세 이상은 된 거죠. 그래서 일본이 활력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한국도 고령화사회가 계속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러나 아직은 65세 이상이 한국에서는 14%밖에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젊은 피들을 많이 만들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러한 한국 나아가서는 남북한의 시대는 만들 수가 있다 그렇게 저는 낙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 NBS방송에서 한국의 위상에 대하여 교수님께서는 질문을 받고 한국은 IT강국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단기간일지라도 세계최고경제대국도 해봤고 주로 미국 빼고는 최고라는 방심에 빠져있을 때 일본도 모르게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부분을 1국가경쟁력 종합순위 2SP국가신용등급 31인당 GDP 비교 등 크게 세 가지를 꼽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매체에서는 한국에 대한 부족한 점으로는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남남갈등이 너무 심하다고 짚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성 등도 말씀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중립국 통일 한국즉 미···일 등 어느 나라와도 교역을 하고 북한의 체제엔 간섭하지 않고 철도사용료를 톡톡히 줄 테니 정차하지 않고 북한 철로 사용만 가능토록 해 영국(유럽아프리카까지도 왕복 가능한 신()실크로드 철로의 희망은 꿈에 지나지 않을까요? 교수님의 통일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통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과 남한의 체제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통일사례만 봐도 그것은 평화통일이었지만 흡수통일이기도 했습니다. 동독이 사실상 붕괴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보수 쪽에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은 남한에 있어서도 상당히 위험이 큽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그렇게 될 경우에는 북한사람들이 거의 다 남한으로 내려와 버린다는 위험성도 있고요. 그리고 또 동서통일의 차이하고 남북통일의 차이는 동독은 서독도 핵무기는 없었다 하는 것이죠.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일통일하고 남북통일 그리고 평화공존 이것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공존이라고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통일은 아니라 평화적으로 공존한다는 거죠. 그래서 종전선언이 필요하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불가침, 절대 침략하지 않는다라는 그러한 약속을 하여서 그러한 군사적으로 균형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신()실크로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통과하는 철도를 만들어 가지고 그러나 북한에서는 서지 않는 거죠. 어떤 면에서는 무정차하고 사용료만 많이 내고 지나가는 것이라면 오히려 북한 핵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다음에 그런 내용도 실행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제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어가면서 한반도가 하나가 되어도 그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유럽하고도 연결될 수 있다면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실크로드에 대한 얘기는 토인비의 줄을 잇는 버금가는 21C미래학자 미 하와이대 명예교수 짐 데이터의 조언입니다. 집권 자민당 신임총재에 한-일 위안부합의의 주역인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됐습니다. 한때 아베노마스크로 일본을 들썩거렸던 거 같은 새 총리가 당선되었지요. 기시다 후미오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이자 외무대신과 자유민주당 정조회장을 역임했으며,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 대신을 지냈습니다. 지역구는 히로시마현 제1구입니다. 신임총리에 대한 전망은?

 

.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카리스마가 없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도 병용해보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현재까지 보여왔고 이번에도 거의 공약을 여러 가지 내세웠지만, 그 공약을 굉장히 많이 변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일본사람들이 기시다 새 총리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후에 있는 극우 아베, 아소 등 자신의 신조인 온건 보수 노선을 걸어갈 수 없고 극우적인 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는 일본인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아무튼 기시다 내각은 단명으로 끝날 것이다, 하는 것이 일본에서 나오는 대체적인 이야기입니다. 언제까지냐 하는 것인데, 내년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직후에 기시다 내각은 다른 내각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기시다는 9개월밖에 총리를 못 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아주 좋고 인격적이지만 카리스마가 없고 공약도 못 지키는 사람이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혼란은 계속 가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끝으로 1998년 입국, 200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시고 독도연구의 효과를 위해 지인들의 얘기를 존중해 개명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한국인 아내와 군대를 다녀온 두 아드님을 두신 가장임도 압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일본은 저를 낳아준 어머니 같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은 제가 인생에서 대하는 사명감을 주는 나라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생명은 한국에서 받았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 유민이었던 생각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도 아주 강합니다. 한국분들은 저에게 굉장히 잘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한국이나 한국분들한테 받은 애정 사랑에 대해서 제가 앞으로 많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들 응원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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