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병환] 한국인의 대일본 및 중국 인식, 계속 이래야 하나?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2 02: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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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대다수 한국인들의 의식에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존재한다. ‘가해자’가 여럿인데 어느 하나만을 원망하고 적대시한다. 이것은 일종의 기억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왜 우려의 목소리가 거의 없을까? 중국은 우리를 침략할 리가 없어서인가?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라 불과 70년 전인 6.25 전쟁 때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온 수십만의 중공군은 뭔가?

▲ [특별기고-박병환] 한국인의 대일본 및 중국 인식, 계속 이래야 하나?

 

한국인들의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인식을 보면 지나치게 고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객관성도 부족한 것 같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인과관계가 어떠했는지,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깊은 지식과 분석 없이 표피적인 가해와 피해 관계만을 되뇌면서 국가 간 관계에 대해 선악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공정하지 않은, 즉 이중 잣대의 사고이다. 이중 잣대는 제3자에게 결코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기 어렵다.

 

먼저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놓고 보자. 여타 강국들은 착한나라로서 조선의 주권과 독립을 지켜주려고 애썼는데 일본만이 악랄한 뜻을 갖고 있었던가? 특히 당시 청()나라는 어떠했는가? 청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하여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해 버렸고 이로 인해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청은 만만한 조선에 대해서는 계속 종주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조선을 사실상 속국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19세기 후반 청의 감국대신으로 조선에 와 있었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에서 저지른 횡포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파란 눈의 코리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을 사랑했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쓴 조선의 사라짐(The passing of Korea)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것(1884년 갑신정변 뒤 청군과 일본군 사이의 충돌에서 일본군이 패퇴한 일)은 일본이 중국에게 당한 첫 번째의 큰 역전이었고, 조선이 어디를 선택할지에 관한 물음은 뚜렷이 해결되었다. 조선은 이 뒤로 완전히 중국의 손 안에 들어갔고 10년 뒤 1894년에 일본이 현상을 뒤집을 때까지 그런 상태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조선의 독립에 대한 중국의 계속적인 침탈과 조선의 구제불능의 굴종이 있었고, 이런 사정은 조선의 가장 좋은 친구들의 호의를 거의 다 없애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 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조선을 지배하려 하였으나 청일전쟁에서 패하여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물러났을 뿐이다.

 

19세기 이전은 어떠했는가? 물론 일본의 침략은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오천 년 역사에서 한족이든 거란족, 몽골족, 만주족 등 북방민족이든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이 훨씬 더 자주 있었다. 이에 대해 대륙세력의 경우는 우리의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은 적은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한 차이는 당시 우리나라가 그러한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에 따른 것이고 침략자의 악의의 정도에 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침략의 근본적인 유인은 국력의 현격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자연현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 한국인들의 의식에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존재한다. ‘가해자가 여럿인데 어느 하나만을 원망하고 적대시한다. 이것은 일종의 기억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의 심리적 기저에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게 당했다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서부터 지겹게 들어온 이야기가 있다. 조선통신사와 관련하여, 맨발인 일본의 하급 무사들이 통신사 행렬을 호위하였고 통신사 일행의 숙소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와서 조선 관리들에게 시()를 청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는 조선이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과연 그랬을까? 객관적으로 말하면 당시 조선 식자층이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도와 한문 실력에서 일본인들보다 다소 나았다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일본의 우경화 및 재무장에 대한 우려가 있어왔다. 아베 수상의 집권 시기에는 소위 평화헌법의 개정,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이 이슈가 되었다.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우려할 일이고 대비하여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 혹시 일본군이 미군과 더불어 또는 단독으로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최근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 도전할 정도로 강화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왜 우려의 목소리가 거의 없을까? 중국은 우리를 침략할 리가 없어서인가?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라 불과 70년 전인 6.25 전쟁 때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온 수십만의 중공군은 뭔가? 이로 인해 우리의 통일은 좌절되었고 바로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2년 반이 지나서야 그것도 휴전으로 마무리되었다. 중공군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국군 및 유엔군 장병들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만 하였다. 우리는 걸핏하면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1991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북한과의 단교 요청은 고사하고 중공군의 6.25 참전에 대해 사죄하라고 말이라도 하였을까? 중국의 침략은 과거의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일본의 침략은 두고두고 되새기고 규탄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5백여 년간 서당에서부터 성균관에 이르기까지 한문으로 된 교재로써 중국의 역사와 사상만 배우고 우리 것은 곁다리로 들어왔던 세월의 유산인가? 그 유산은 그렇게 강한 것인가? 2017년 중국 방문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기업인들 모임에서 한국과 중국은 운명공동체라고 하고, 베이징 대학교 연설에서는 큰 산봉우리 중국 앞의 작은 나라 한국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북한 주민은 우리에게 동포이나 김씨 왕조의 북한은 어쨌든 우리의 이다. ‘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를 운명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나? 성리학을 숭상하던 조선의 모화사대주의자들이 21세기에 부활하지 않고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다 보니 우리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주저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으로 역사 왜곡 문제를 살펴보자. 일본 역사교과서의 침략사실 미화가 여러 번 문제가 되었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문제가 되면 어김없이 일본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린다.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하여 심어놓은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원론적인 비판이지 각론에 들어가면 여전히 식민사관을 답습하고 있다. 해방된 독립국가 대한민국이 자국 역사를 기술하는데 일본이 간섭이라도 하고 있는가?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 왜곡에서 중국의 왜곡은 임나일본부설로 대표되는 일본의 역사왜곡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통시적이다. 중국은 한반도 북부가 진()나라 때부터 중국의 영토이었으며 고구려 및 발해는 중국 왕조의 지방정권이어서 중국 역사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동북공정의 역사관이다. 2017년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한 발언은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대해 당연히 격렬한 반중 시위라도 있었어야 마땅하나 주한 중국 대사관 앞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김영삼 대통령 때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당시 마치 한국과 중국이 함께 일본에 압력을 가하자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한-일 갈등 요인 가운데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우리 편을 든다면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중국은 우리 편을 든 적이 없다. 또한 아직 한국과 중국은 해양 경계선을 획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잠정적으로 중간수역이라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를 무시하고 중국 어선들이 떼를 지어 우리 영해까지 침범하는 행위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해적이 한강 하구 군사분계선 해역까지 침범하여 유엔군사령부가 나선 적도 있다. 일본 어선들이 이런 짓을 하였다면 국내에서 어떠하였을까? 언젠가 필자가 기자들에게 중국의 영해 침범행위에 대한 보도가 왜 중앙지에는 실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자주 있는 일이어서 기삿거리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중국 공안의 통제를 받는 행사장 보안요원들이 한국 사진기자들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상당수 우리 언론이 중국 측을 비난하였으나 여권 인사들은 우리 사진기자들이 맞을 짓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반응이다. 당시 중국 측에서 진상 조사를 하여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다는데 언론보도로는 그 뒤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만일 이런 일이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어떠하였을까?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의 국세가 약화되는 것을 반기겠지만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지역패권을 장악하고 일본은 쪼그라드는 것이 과연 한국의 입장에서 바람직하기만 할까?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끊어버리고 싶은 악연일 뿐인가? 중국은 한국이 참고 함께 가야할 운명공동체인가? 그들 모두 우리에게 경계의 대상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를 능멸하거나 적대행위를 하려 한다면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중국과 더불어 일본의 압박에 대처할 수 있고, 일본과 함께 중국의 횡포에 대응하는 것이 외교 아닌가? 그러한 외교적 유연성이 발휘되려면 일본에 대한 감정 과잉과 중국에 대한 기억 편향 모두 극복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유족의 입장에서 일본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정부 차원에서 그들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행태는 국익에 반하는 것이다.

 

 

박병환 소장

<필자 소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등 4차례에 걸쳐 11년 간 러시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 현재는 각종 매체에 한·러 관계와 러시아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  [신간] 한국 외교에는 왜 러시아가 없을까? -박병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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