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 <1410>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2 01: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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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 나무와 오얏(자두)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

무언가를 원하면, 두려움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우리는 그 원하는 것에 종속된다. 그래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까 자유롭고 싶으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지나치다면 버려야 한다.

 

 

▲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 <1410>

 

오늘은 한글날로 2013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어 휴일이다.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맞지 않은 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함이 많음이라. 내 이를 불쌍히 여기어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사용함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 라." 세종대왕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드신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더 자유롭고 편하게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이고, 소리의 표현은 일본어는 약 300, 중국어(한자)400여개인데 반해 한글은 무려 11000개 이상을 낼 수 있다.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문자이다. 세계서 유일하게 문자를 기념하는 나라가 우리이다.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오늘 나온 대통령의 다음 메시지에 나는 동의한다. “우리를 우리 답게 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하는 바탕에도 한글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글을 지키는 그 자체가 독립운동이었다, () 우리는 한글을 익혀 기적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길을 열었고, 문화를 일궈 세계 속으로 나아갔다. “K-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을 접하며 우리 문화에 매력을 느낀 많은 세계인이 한글을 통해 한국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행동하며, 이 사고와 행동이 축적되어 문화를 형성한다. 그래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고 했다.

 

오늘 아침도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에 두 번째 소개된 시를 공유한다. 13세기 페르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신비주의 시인인 잘랄루딘 루미의 것이다. 아침 사진은 어제 오후 산책길에서 찍은 것이다.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고 바라보는 저 들판이 시인 잘랄루딘 루미가 꿈꾸는 세상일까?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잘랄루딘 루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나는 작년 5월에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으며, 마음 수련을 하였었다. 그때 노트에 적어 두었던 시가 생각나 다시 공유한다. 이것도 잘랄루딘 루미의 것이다.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인내심을 가지고 걸으라.

중요한 보물을 발견하게 되리니.

그대의 집이 작아도, 그 안을 들여다보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찾게 되리니

나는 물었다.

"왜 나에게 이것밖에 주지 않은 거죠?“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바로 지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길 끝에 있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모든 작가들이 진정한 작가가 되기 전에 미완의 작품을 수없이 완성해야 하고, 모든 새가 우아하게 날 수 있기 전에 어설픈 날개를 파닥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정을 거치려 하지 않고, 우리는 삶에게 묻는다. "왜 나에게는 이것 밖에 주어지지 않은 거야?"하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 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삭임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과의 내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배철현 교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어제 오후에 읽은 사마천의 <사기> 한 구절이 저녁 내내 머리에 남았다.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 나무와 오얏(자두)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는 뜻이다. 배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무들은 일 년 내내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말없이 조용하게 정진해 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내리나 서리가 내리나, 그 나무에겐 열매를 훌륭하게 맺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니, 마침내 탐스런 복숭아와 자두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었다. 그 매력이 바로 인생의 지름길이다."

 

한문 '()'를 찾아 보면, 의미가 여럿이다. '좁은 길', '지름길', '발자국' 등이다. 혼자 생각해 보았다. 발자국을 난긴 좁은 길이 지름길이다. 지름길은 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요즈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군대에서 보냈던 허송세월을 사는 것 같다. ()하다. 그러나 복숭아나무와 자주 나무처럼, 말없이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하며 보낸다. 그 길이 지름길일 것이다. 일상을 지배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읽고, 글을 쓰고, 자연과 대화하며 산책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 줄기차게 와인을 마신다.

 

내일 독서 모임을 위해서 어제 오전에는 한참 동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 프로젝트 "책 읽고 건너가기"10월 책이 데미안이다. 7월에는 돈키호테, 8월에는 어린 왕자그리고 9월에는 페스트였다. 오늘 아침에 어제 데미안을 읽고 생각했던 것을 공유한다.

 

데미안이 화자 싱클레어와 처음 나누는 대화가 이 거다. "누가 놀라게 한다고 그렇게 놀라서는 안 돼." "() 너한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어떤 사람 앞에서 그렇게 두려워 떨면, 그 사람은 생각을 해보기 시작하는 거야. () 겁쟁이들은 언제나 불안하지.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너는 원래 겁쟁이가 아니야. , 물론 영웅도 아니지. 지금 넌 뭔가 겁나는 일이 있어. 겁나는 사람도 있구. 그런데 그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

 

한 장 넘기면,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 내가 널 놀라게 했지. 넌 그러니까 잘 놀라는 거야. 즉 넌 두려운 일이나 사람이 있는 거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한 거야. 예를 들면 뭔가 나쁜 일을 했어봐.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알고. 그럴 때 그가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는 거야."

 

나느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떠올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무언가를 원하면, 두려움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우리는 그 원하는 것에 종속된다. 그래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까 자유롭고 싶으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지나치다면 버려야 한다. 두려움, 걱정 그리고 불안 등은 원하는 것과 비례한다. 자유는 자유자재(自由自在)를 줄인 말이다. 사실 자유는 그냥 주워지지 않는다. 내가 자유자재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배워 법칙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면, 그 때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는누구인가?를 쉼 없이 또 성찰해야 한다. ? 뭐 좀 할줄 안다면, 우리 인간은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네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무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알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를 배려하고 나를 돕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곧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절제를 할 수 있다. 즉 멈출 줄 알고, 현실을 잘 직시하고, 무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제의 한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만큼만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지혜롭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이 세 가지, 즉 지혜, 아니 나란 누구인가를 깨닫고, 이어서 절제, 용기를 갖는 것이 삶을 '잘 살 줄 아는 방법인 것 같다. 내 마음 속에, 내가 만든 준칙이 만들어질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절제로 내가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더 배워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인문운동가 박한표님이 2 days ago에 게시

라벨: 202010월 사진과시 그리고 글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인문운동가 박한표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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