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리는 주류에서 밀려났다’라는 자각이 지난 탄핵 사태에 이어 뼈저리게 각인되는 계기가 될 것
-정치권에 들어온 운동권 출신들은 여야를 막론, 적과 아군을 가르기 좋아하고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에 능하다
-천하의 김대중도 당내 비주류에 40%를 배려했다. 당시엔 제왕적 총재였는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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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원 선임기자 |
문자 그대로 역사적 패배였다. 4년 전 총선이야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한 가운데 있었다. 당시엔 여당인 민주당을 밀어주자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변명거리도 마땅치 않다. 분명 한달 전만 해도 국민의힘 과반수 전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이 받은 충격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후보 당선에 버금가는 듯하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것도 큰 사건이었으나 당시 보수 진영은 이인제 변수와 DJP 연대, 그리고 IMF 환란 등을 거론하며 “5년만 참자” 모드로 돌입했었다.
패배를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노 후보에게 다시 정권이 넘어가자 패닉 상태에 빠졌는데 이번 총선은 바로 그 때의 데자뷰라 할 만하다.
22대 총선은 대한민국 주류라 자부하는 보수층 사이에 ‘대한민국 주인인 우리가 주류에서 밀려날 수도 있구나’에서 ‘이미 우리는 주류에서 밀려났다’라는 자각이 지난 탄핵 사태에 이어 뼈저리게 각인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 50 대 50 구도가 분명해진 것이다.
# 보수는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광범위한 리빌딩 과정이 진행 중이다. 시대변화에 따른 노선을 제시하고 새로운 지지층도 흡수해야 한다. 성공하면 다시 주류로 복귀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민주당의 변화도 추동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이후 기존의 정치 문법으론 도저히 이해 못할 언행을 계속해 왔다. 승리 연합의 한 축인 이준석 대표를 축출하면서 스스로 권력 기반을 허문 이후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 등 당내 비주류 리더들을 차례로 무력화시켰다.
야당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채 시대착오적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등의 이념 공세를 펴는가 하면 미국과 일본까지 중국과의 대화를 새로 조율하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만 냉랭한 대중관계를 이어가는 등 미일 일변도의 협소한 외교정책에 갇혀있다.
날로 악화되는 민생 현안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김건희 여사 문제 등에 대해선 끝내 사과를 안 하면서 오만과 아집, 불통 이미지를 쌓아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바닥 여론에 이종섭 대사와 황상무 수석 건, 그리고 조국혁신당 등장이라는 3각 파도가 덮치면서 민심 폭발로 이어졌다고 진단한다.
# 도대체 윤 대통령은 왜 이러는 걸까. 무엇보다 기존 정치인들을 잠재적 피의자로 보거나 이견보다는 ‘일사불란’을 선호하는 '검찰주의자' 성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나아가 윤 대통령의 조언 그룹 중 이른바 ‘뉴라이트’들의 존재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철없던 젊은 시절 한때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위수김동 친지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중얼거렸던 부류다.
그들이 거대 담론에 약한 윤 대통령 같은 여권의 평생 관료들에게 특정 패러다임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에 들어온 운동권 출신들은 여야를 막론, 적과 아군을 가르기 좋아하고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에 능하다.
현 정부는 대선 당시 표 차이나 의석수로 볼 때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약체 정권이다. 윤 대통령은 우선 이걸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큼 정치 경험이 일천한 대통령도 없었다. 이것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최약체 정부에 정치 경험도 없는데 그립은 역대급이니 자꾸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극좌에서 전향한 분들은 상대방을 대화 상대 아닌 없애야 할 악으로 보던 습관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공격 타깃만 바뀐 셈이다. 이런 사람들의 거친 전략을 따르다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만 모르는 격이 된 게 아닌가 성찰해 봤으면 한다.
# 윤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3년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시급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국정의 주요 파트너다. 거대 야당과의 협치없이 해결할 수 일도 거의 없다. 만나서 대화를 해 보고 합의 가능한 현안부터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천하의 김대중도 당내 비주류에 40%를 배려했다. 당시엔 제왕적 총재였는데도 그랬다. 그 뿐인가? DJ는 야당의 이회창 대표는 물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전두환을 몇 번이나 청와대로 불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심지어 노태우는 정적이었던 김영삼 김종필과 아예 합당까지 했고 노무현도 임기 중반, ‘야당 주도 대연정’을 당시 박근혜의 한나라당에 제의한 바 있다.
왜 대통령이 사법부 영역인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미리 그 부담과 수고를 감수하려 하는가. 야당 인사들에 대한 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대한민국은 미래로 가야 한다. 그게 보수와 진보 모두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민심일 것이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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