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2 00: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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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 너무 늦은 속죄는 속죄가 아니다

 

     

'어톤먼트(atonement)''속죄'의 뜻. 거짓 증언으로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린 자가 속죄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피해자의 고통의 세월은 보상될 수 있을까?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조 라이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소설의 디테일을 따라갈 수 없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섬세한 표정은 영화만의 특장점. 이런 특장점을 잘 살렸기에 꽤 볼만한 영화.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부잣집 딸과 가정부의 아들

 

1935년 런던. 아름다운 부잣집 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시골 저택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가정부의 아들이자 케임브리지대 의대생 로비(제임스 맥어보이 분)와 마주친다. 어릴 때부터 서로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서먹한 관계였던 젊은 남녀는 사랑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이들의 관계를 관찰하는 소녀

 

로비는 솟아오르는 연정을 글로 옮겨 그녀의 어린 여동생 브라이오니(아역 시얼사 로넌 분)를 통해 전달한다. 문제는 여기서 터진다. 작가 지망생인 브라이오니는 언니와 청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나치게 세심하게 관찰 내지는 감시해왔는데, 13세 소녀의 눈에는 그들의 관계가 이상하게 비치게 된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욕정이 가득 담긴 편지에 경악

 

로비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고민하며 써놓은 여러 개의 편지 버전 중 점잖은 어투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 그만 성적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을 보내고 만 것. 실수를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언니에게 전달하기 전 편지를 열어 본 브라이오니는 음란한 내용에 경악을 한다. 게다가 그날 밤 언니와 로비의 사랑 행위를 엿본 그녀는 로비를 색마(色魔)로 단정 짓는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그날 밤 자매의 오빠인 리온은 친구이자 백만장자 사업가인 폴을 데려와 파티를 여는데, 이때 사건이 발생한다. 이 집에 와 있던 친척인 쌍둥이 아이들이 안 보이자 모두들 찾아 나선 와중에 브라이오니는 쌍둥이들의 누나인 롤라가 성폭행당하는 충격적 장면을 목격한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위증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브라이오니는 경찰에게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범인이 '로비인지 알았다'라고 다소 애매하게 진술하는 그녀. 다그치는 수사관에게 '로비를 보았다'라고 진술을 바꾼다. 급기야는 "제 두 눈으로 그를 똑똑히 봤다"라고 확정적인 진술을 하게 된다. 사실은 폴이 범인인데, 그녀의 진술에 의해 범인이 뒤바뀐다. 누명처럼 억울한 일이 있을까.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소녀의 질투심이 낳은 불행

 

'어둠 속에 본 뒷모습'을 확실한 것으로 진술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로비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고, 질투심과 상상력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훗날 그녀는 '그때는 로비라고 믿었나?'라는 질문에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Yes and no)"라고 답한다. 자신의 소설 속 자문자답이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전쟁 속에 애절한 마음만 커져가고

 

로비는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던 중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옥살이 대신 전쟁터에 보내진다. 전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로비. "사랑해. 나에게 돌아와 줘"라는 세실리아의 말만 기억하며 버틴다. "널 찾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부끄럼 없이 살겠어"라는 말만 되뇌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생각하며 간호사가 되어 부상병을 돌보면서 재회의 날만 애타게 기다린다. 성인이 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속죄의 의미로 케임브리지대 대신 부상병을 보살피는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언니를 만나려고 하지만 세실리아는 거부한다. 얼마나 원한에 사무칠까.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한참 늦은 참회와 속죄

 

훗날 브라이오니는 언니와 로비가 함께 사는 집을 찾아가 속죄와 참회의 뜻을 밝힌다. "판사 앞에 가서 증거를 바꾸고 싶어. 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거 알아. 용서를 기대하진 않아." 세실리아와 로비가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보내는 장면이 아름다운 화면으로 펼쳐진다.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전쟁은 청춘 남녀를 삼키고

 

그러나 위의 한 단락은 작가인 브라이오니가 소설로 창조한 허구일 뿐 현실은 비극으로 끝났다. 두 남녀의 재회도, 브라이오니가 그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로비는 전장에서 죽고, 세실리아도 독일군의 폭격 때 숨졌기 때문.

 

     

자전적 소설로 속죄하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아 작가 생활을 해온 브라이오니는 깊은 속죄의 마음을 담아 생애 마지막 자전적 소설 <어톤먼트>를 쓴 것. 노년의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소설에서 그들이 잃은 것을 주고 싶었어요. 나의 마지막 친절로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지요.

 

▲ [유종필의 인문학적 영화 보기] <어톤먼트 Atonement>

  

단 한 번의 인생 누가 보상하나

 

그녀의 말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지? 단 한 번의 인생이 누군가의 위증에 의해 망쳐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진다. 아름다운 화면이 되레 슬픔을 더해주는 영화는 가슴 먹먹한 뒷맛을 남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처럼 너무 늦은 속죄는 속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유종필

필자 유종필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한국기자협회 편집국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원/민주당 대변인/5~6대 관악구청장

대학에서 철학과에 적을 두고 문사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오랜 시간 위대한 사상과 진리에 취해 책에 탐닉. 일간지 기자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세상맛을 보았다. * 인생길 동반자와 늘 연애하듯 살고, 혼자 있을 땐 자신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산다. * 10년 넘게 세계의 위대한 도서관 70여 개를 탐방, <세계도서관기행>(일본,대만.중국(예정) 번역출간)을 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보고 에세이와 같은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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