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34화. 전설이 된 자객 (1)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10-31 0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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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역사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히 발명이라 할 만하였다. 공자의 《춘추》를 위시한 전통적인 역사서는 지배 계층 중심의 편년체(編年體,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기술) 서술 방식이었다. 사건에 따라 등장인물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이로써는 얽히고설킨 사건의 진행과 인물의 활약상을 유기적으로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기전체(紀傳體)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의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의 전기(傳記) 형식으로 역사서를 기술한다. 그 구성은 본기(本紀, 제왕들의 기록), 표(表, 연대표), 서(書, 제도와 문물에 대한 기록), 세가(世家, 열국 제후의 기록), 열전(列傳, 당대에 이름깨나 날린 풍운아의 기록)으로 이루어진다. 첫 순서인 본기(本紀)의 기(紀) 자와 마지막 순서 열전(列傳)의 전(傳) 자를 따서 ‘기전체’라고 불린다. 이후 수천 년 동안 동양의 역사서는 주로 기전체로 씌었다. 우리나라 김부식의 《삼국사기》, 정인지의 《고려사》 등도 예외 없이 기전체이다. 왜일까? 물고 물리는 역사의 스토리를 이보다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시스템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전체로 쓰여진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왕족과 귀족을 비롯하여 하찮은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코 〈열전〉이다. 열전은 《사기》 130권 가운데 70권을 차지할 만치 중요하고 화려한 부분으로서 귀족, 관료, 장군, 책사, 자객, 토호, 미희 등 그야말로 별의별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 변방 오랑캐의 이야기로서 〈조선열전〉과 〈흉노열전〉,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베트남, 태국 등)〉도 있다. 도적들의 이야기는 〈유협열전(遊俠列傳)〉, 희극배우 코미디언들의 이야기는 〈골계열전(滑稽列傳)〉, 점쟁이들의 기록 〈일자열전(日者列傳)〉, 거부들의 이야기 〈화식열전(貨殖列傳)〉이 있는가 하면 킬러나 테러리스트의 인생 스토리 〈자객열전(刺客列傳)〉도 있다.
그 〈자객열전〉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이 전제(專諸)이다. 그는 보통 키에 날렵해 보이는 체격이었다. 눈이 양 갈래로 찢어지고 제비턱에 수염을 길렀다. 머리 형상이 표범을 닮은 데다, 노리는 게 있으면 틀림없이 획득한다고 해서 저잣거리에서 그를 부르는 별호가 표자두(豹子頭, 표범 대가리)이다. 갸름한 외모와 달리 그는 엄청난 싸움의 고수였다. 오자서는 그를 오추(吳趨)라는 장터거리 패싸움에서 처음 보았다. 수십 명의 패거리가 두 패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상대는 안면을 트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댓바람에 박달나무 작대기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이놈, 죽어봐라!”
명색이 표범 대가리, 표자두가 그냥 당하고 있을 리 없었다. 날렵한 그는 후려치는 작대기를 반걸음 몸을 뒤틀어 비키더니 내닫는 자의 안다리를 발끝으로 슬쩍 튕겼다. 제힘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놈의 면상을 밟아 땅바닥에 갈아버리는가 싶더니만, 상대의 등을 지지대 삼아 훌러덩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두 팔을 날개 삼아 벌리고 한차례 도움닫기로 또 다른 상대의 키를 넘어, 가는 길에 꼭뒤를 밟듯이 걷어찼다. 놈은 얼굴부터 앞으로 꼬라 박혔는데, 정작 찬 사람은 땅바닥에 내려서는 착지까지 완벽했다.
그가 바로 전제(專諸)였다. 덩치가 큰 장정들도 그의 앞에서는 족제비 앞의 생쥐 같은 사냥감일 뿐이었다. 짧은 꼬챙이 하나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들쑤셔대는데, 찌를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쓰러졌다. 잠시 후 널브러진 상대편 두목의 얼굴을 발로 밟고 윽박질렀다.
“나, 전 씨 나리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한 번만 더 이 장바닥에 얼씬거리다가는 평생 앉은뱅이로 만들어주마!”
싱거운 싸움이 끝나자 바가지 물로 대강 입을 가시더니 떡 한 덩이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구경꾼 쪽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장사(壯士)로다. 정말 대단한 장사로다!”
이 시대 장사라는 호칭은 오늘날의 힘깨나 쓰는 폭력배와 달리 의(義)와 협(俠)을 위해 목숨을 거는 협객을 이름이다. 오자서는 대뜸 그를 따라갔다. 그날부로 두 사람은 신분을 밝히고 서로 사귀게 되었다. 전제는 소를 잡는 백정이었다. 원래부터 천민은 아니었고 아버지 대에서는 그도 채(蔡)나라의 귀족이었다.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아비가 죽은 뒤 오나라까지 흘러들어와 백정이 되었다. 그만치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한낱 떠도는 저잣거리 싸움꾼에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이름을 올린 지사가 된 것도 바로 그런 자부심에 기인한다. 비범한 용모와 식견을 가진 오자서가 결의형제를 맺자고 하니 전제도 두말없이 의형제를 맺었다. 오자서가 공자 광(光)에게 전제를 추천한다.


▲AI 생성 이미지


“오추(吳趨) 땅에 표자두 전제라는 호걸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대하시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줄 인물입니다.”
“그런 협객을 내 어찌 앉아서 부르겠는가? 내일 직접 찾아가 만나야겠다. 그러면 되겠지?”
다음날 공자는 오자서와 함께 전제를 찾았다. 귀인이 길거리에 협객에게 예를 갖추어 친소 관계를 요청한다면, 그것은 극단적으로는 목숨을 내어달라는 말과도 같다. 협객으로서 죽음을 예약한 셈이고, 이로써 쿠데타를 위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어느 날 오자서가 전제에게 말했다.
“지금 요왕에 대해 불만을 가진 대부들이 많다네. 어떻게든 왕만 해치운다면, 그러고 수몽대왕의 유지를 천명한다면 모든 신하와 백성이 기꺼이 따를 것이네. 그야말로 명분이 있는 일일세.”
문제 해결의 방식이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어쩔 수 없이 음흉한 꿍꿍이가 숨어 있다. 요왕이 왕위를 욕심낸 것이 순리에 어긋난다면, 공자 광의 탈취 욕심 역시 온전히 야심과 원한에서 비롯되었다. 전제가 대답한다.
“이 몸에게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공자께 바로 이 목숨을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그제야 광(光)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도 그대의 어머님이 늙으셨고 아들은 어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나저나 어머님은 안녕하신가?”
“예, 여전히 잔소리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다행이다. 노인은 집안의 보배다. 잘 모셔라. 그러나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대의 재주가 아니면 일을 맡길 수가 없다. 성공하기만 하면 그대의 어머니와 아들이 곧 나의 어머니며 아들이다. 내 어찌 의리를 저버리겠는가! 오(吳)가 있는 한 그대의 자손들은 대부로서 살 것이다.”
사흘 뒤 전제가 오자서를 찾았다.
“형님! 형님도 나를 자객으로 알고 의형제를 맺었소?”
“그렇지 않다. 동생과 죽이 맞아 형제를 맺었다. 그런데 공자님의 소원은 세상에서 동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부탁은, 부탁하는 쪽이나 부탁을 받는 쪽이나 외골수의 감정이 된다. 의식 구조를 지배하는 영웅심리 협(俠)의 정신이 작동하는 경우이다. 결국 마음을 굳힌 전제가 물었다.
“수십 길 물속에 있는 고기를 잡으려면 먼저 그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부터 알아야 합니다. 왕이 즐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선이라네. 특히 양념을 잘 바른 적어(炙魚, 구운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네.”
전제는 당장 요리를 배우려고 태호(太湖)를 찾았다. 태호는 지금의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의 접경 지역에 있는 호수이다. 48개의 섬과 72개의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천하제일의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호수는 지금보다 열 배나 넓었으며, 돈과 계집이 흔한 고장답게 색주가부터 향기롭고 화사했다. 전제는 중원의 대갓집 자제로 행세하며 반가(潘家)라는 주점에 머물렀다. 반가는 당시 천하제일을 자부하는 유흥주점이었다. 한량들 사이에 떠도는 노래가 있다.

술은 술집에서, 좋은 차는 찻집에서,
계집은 태호의 반가에서

예나 지금이나 술집이 노골적인 유흥의 장소라면, 찻집은 은밀한 교제의 공간이다. 태호의 동정산에서부터 다릿목마다 지천으로 걸린 게 술집과 찻집 깃발이던 시절이었다. 전제는 그 후 2년 동안 세상의 온갖 환락을 맛보면서 틈틈이 생선 요리를 배우고 익혔다.
그동안 영도(郢都)에서는 초평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에는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었다.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자식의 여자까지 탐했던 왕도 죽음의 장애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초평왕은 죽으면서 맹영의 아들 진(珍)에게 왕위를 넘겼다. 바로 초나라 28대 임금 초소왕(楚昭王)이다. 이때 진의 나이 겨우 열한 살이었다. 오자서는 초평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종일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광이 의아해서 물었다.
“초평왕은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원수가 죽었는데 어째서 이리도 슬퍼하는가?”
“원통해서 웁니다. 아내와 자식의 복수는커녕 원수의 코빼기조차 못 봤는데, 그가 죽어버렸습니다. 무능한 자신이 너무나 분합니다.”
오자서는 사흘을 상심 속에 있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요왕과 공자 광의 일만 하더라도 결행을 늦추는 것은 비밀이 새어 나갈 위험만 커지는 노릇이다. 마음을 다잡은 오자서는 광(光)을 찾았다.
“지금 초나라는 군주가 죽고, 어린애가 임금으로 등극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라 할 것입니다. 요왕에게 엄여(掩餘)와 촉용(斸庸)으로 초나라를 치자고 권해보십시오.”
엄여와 촉용은 요왕의 측근들로서 병권을 잡은 실세들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설사 일이 성사된다 치더라도 계찰 숙부를 제치고 내가 직접 왕위에 오르기에는 명분이 없다. 그 또한 난처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점은 따로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요왕에게 계찰 숙부를 진(晉)에 사신으로 보내자고 하십시오. 공자께서 왕위에 오르시는 그 순간만 계찰이 없으면 누가 감히 반대하겠습니까?”
이래서 해결사이다. 광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튿날, 광은 수레를 타고 궁으로 들어가던 중 갑자기 바퀴가 내려앉는 바람에 낙상하였다. 발목을 젖혀 절뚝거리며 입궐하였다. 왕이 물었다.
“다리를 다친 모양인데 요양하지 않고 어찌하여 나왔소?”
“지금 초나라는 국상 중입니다. 더욱이 왕위에 오른 임금은 열한 살이랍니다.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십니까?”
“누구를 보낼지 점 찍어 둔 사람이라도 있소이까?”
왕의 눈이 일순 샐쭉해지면서 눈치를 살피는 기미가 보였다. 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이 출전해야겠습니다. 엄여와 촉용 두 장수를 딸려주시면 기필코 초를 정벌하고 개선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북방에 진(晉) 말입니다. 초(楚)와 함께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입니다. 먼저 관계를 다지는 게 필요합니다. 계찰 숙부를 사신으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형님의 계책이 여러모로 훌륭하오. 다만, 이번 원정에는 엄여와 촉용 두 장수를 보낼 터이니 형님은 잠시 몸을 돌보다가 후진으로 가는 수군을 맡아주시오.”
마침내 엄여와 촉용은 정예 군사 2만과 함께 초나라로 쳐들어가고 계찰은 진(晉)나라로 떠났다. 엄여 등이 출정하던 날 밤에, 광이 오자서와 전제를 부르더니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투명하게 빛나는 단검을 달을 향해 견주는데, 칼날에 부서진 달빛이 오싹한 한기(寒氣)를 품었다.
“이 칼은 잠로(潛盧)라는 명검이다. 지난날 부왕께서 내게 내리신 칼인데, 밤이면 신비스럽게 빛을 발한다. 그 빛을 보노라면 염치없는 요(僚)의 피를 기다리는가 보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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