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곤의 심리'는 배타주의를 낳고, '풍요의 심리'는 포용을 낳는다
- 우리가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이 딱 한 가지는 업(業 karma)이다.
-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만족(滿足)’이라는 한자를 보면서 행복은 욕심을 최소화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1
이제 나무들은 겨울 준비를 할 것이다.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무들은 나뭇잎을 떨군다. 나무의 겨울 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 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전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통해 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나무처럼 살기/이경숙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우리의 삶은 본래부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어떠한 인연에 의하여 세상에 빈손으로 벌거벗고 왔다가, 세상을 떠날 때도 빈 몸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본래부터 혼자 왔다가 혼자 가기 때문에 부부 든, 부모·자식이든, 인연이 있어 잠시 만났지만, 인연이 다하면 자연히 혼자 떠나는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진리이다. 그리고 떠날 때는 어떠한 사람도 가족도 재산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이 평소에 지은 행위, 즉 업(業)이다. 업은 반드시 가지고 간다.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karma)'라 하고 뜻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업이라고 한다. 선업이던 악업이던 그 지은 바 업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반드시 되받는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지은 바 업이 다르기 때문에 천차만별 모든 것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우리 인생은 본래 그러하기에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고독의 진실을 바로 알면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다. 우리가 없는 이 세상과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우주의 주인이며 세상의 주인이며 인생의 주인이다. 영화나 드라마(drama)에 나오는 잠시 주인공이 아닌 내 인생에 진짜 주인공이다.
2
세상은 불공평해도 세월은 공평하다. 세상이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푸는 것이다. 못 푸는 게 아니라, 안 푸는 것이다. 풀지도 않으면서 저절로 풀리기를 바란 거다. 인생 수능의 채점자는 세월이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 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조건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세월이 주는 가능성과 한계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세상과 세월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세상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세월이 이긴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준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세월이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과 맞서 싸우면, 언제나 세상이 이긴다.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세상 일을 선악(좋고 나쁨)으로 구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중국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갔다. 이에 이웃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몇 달 후 도망친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다, 이때 이웃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해 다리가 부러졌으나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는 내용이다. 새옹지마를 직역하면, ‘노인의 말’이다. 그 말(馬) 때문에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을 이해득실만 따지며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모든 게 엉망이라고 믿는 한 모든 건 계속해서 엉망일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는 순간 모든 게 변한다. ‘당나귀와 우물’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가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는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묻어 버리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 흙은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하여 우물 속으로 들여 다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하여 무사히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렸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리고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이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반대가 되는 거울 뒤쪽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도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세상과 맞서 싸우면 세상이 항상 이긴다. “세상이란 우연이 없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는 거야.”라고 말하자마자 세상일이 술술 풀려나가게 된다.
3
어제는 책장에 잠자고 있던, 김경일의 <<적정한 삶>>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사는 게 불안하기 때문에 내 눈에 이 책이 보였던 것이다. 부제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인지심리학의 위로와 통찰’이다. 그리고 책 제목 『적정한 삶』이 무엇일까를 사유해 보았다.
'적정(適正)'은 ‘알맞고 올바른 정도’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적절(適切), 적당(適當)과 뉘앙스가 다르다. '적정'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일반적이고 넓은 범위의 알맞은 기준을 말한다. 반면 '적절'은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 꼭 알맞은 구체적이고 좁은 범위를 뜻한다. 그리고 '적당'은 크게 문제 될 것 없이 대략적으로 알맞은 정도를 의미하며, 다소 주관적이고 느슨한 뉘앙스를 가진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에서 '적정'이 무엇일까?
제일 먼저 정지 상태인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심리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 흥미와 호기심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자극하는 심리 요소이며,
▪ 지루함은 사람을 막연하게 나마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다.
▪ 나쁜 것을 피하고 싶은 불안 역시 사람을 가만있지 못하게 만든다.
▪ 아무리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10분 이상 꼼짝도 못 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덕분에 게으른 사람이라도 아주 힘든 상태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움직인다.
또한 작동하는 인간을 쉬게 만드는 심리 기제 역시 존재한다. 육체노동을 많이 한 뒤엔 정서적으로도 피로하고, 지쳤다는 느낌이 들면 멈추고 쉰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욕망 추구를 멈출 수 있게 만드는 심리 기제도 있다. 심리학자들을 그것을 '만족'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 인간은 비로소 하던 일을 멈춘다. '만족'이라는 심리 기제가 인간을 쉬거나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효율적인 제동 장치이다.
만족(滿足)이라는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만(滿)은 ‘가득하다’, ‘차 오르다’ 라는 뜻이고, 족(足)은 그냥 '발'이라는 뜻인데, 어째서 만족에 굳이 발 족(足)자를 쓸까? 발목까지 차 올랐을 때 멈추는 것이 바로 '완벽한 행복' 이라는 뜻이라는 거다. ‘만족(滿足)’이라는 한자를 보면서 행복은 욕심을 최소화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발목까지만 따뜻한 물이 차올라도 온몸이 나른해지고, 발만 시원해도 온몸의 땀구멍으로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일이 떠오른다. 지금껏 종종 목까지 차오르고 머리끝까지 채워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늘 외우는 문장을 공유한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라야 흡족해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自足)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비결은 오히려 자족이 아닐까? 요즈음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 으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심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빈곤의 심리'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그 반대가 '풍요의 심리'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이다. 이런 '빈곤의 심리'는 배타주의를 낳고, '풍요의 심리'는 포용을 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노동윤리의 몰락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일찌감치 고기잡이를 다녀온 뒤 선창가에서 졸고 있는 노인 어부에게 도시에서 온 관광객이 이렇게 묻는다. “왜 고기를 더 잡지 않느냐? 더 많이 잡으면 어선도 늘리고, 냉동 창고, 훈제공장을 마련해 큰돈을 벌 텐데요.” 그 질문에 어부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오?” 관광객은 “이 항구에 편히 앉아 햇빛을 즐기고 바다를 보며 꾸벅꾸벅 졸 수도 있다.”고 답하자 어부는 “나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어요. 당신이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로 나를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관광객은 가난한 어부에게서 부러움을 느끼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그것들을 최대한 즐기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 김경일에 의하면, 인간은 만족이라는 심리에 대체로 둔감하다. 잘 연마된 도구처럼 섬세하고 재빠르게 가져오는 불안 심리와 대조적이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은 끊임없이 탐한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이윤을 추구하고, 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간다. 물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 생존에 유리할 때도 있었다. 인간의 수명이 짧았을 때다. 그러나 지금은 만족을 모르고 한 우물을 파기에 너무 긴 시간을 살아야 한다. 삶은 길어지고 더욱 다양화되어 있다. 여러 직업이 요구되고, 개인의 개성이 중요해진다. 기존의 극대화된 사람은 더 이상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생태계에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만족감을 모르는 인간은 긴 인생에서 길 잃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쉽게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족감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거다. 만족감을 섬세하게 다듬어서 친근한 심리로 만든다는 거다. 이를 위해 할 첫 번째 일은 만족하면 곧 안주한다는 통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적정한 삶' 에 대해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정리하고 공유할 생각이다.
4
감정에 집중하는 거다. 현재 내 감정에 불안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안정되지 않은 경제생활과 앞날에 대한 걱정, 나쁜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슬픔이다. 인간이 평생 동안 힘든 정서는 불안만이 아니다. 공포, 분노, 무기력 그리고 우울이다.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지심리학은 '생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히는 학문' 이라 말할 수 있다. 생각의 작동 원인을 밝혀내서 꾀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 인간이 더 좋은 판단, 더 탁월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고,
▪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며
▪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이성과 논리만이 역량이 아니라, 감정도 엄연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감정도 사람의 역량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감정이 왜 중요한가? 인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감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정상적인 감정 상태의 뇌는 중요한 결정뿐만 아니라, 내가 뭘 먹어야 하는 지와 같은 쉬운 문제조차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결정 장애와 정서 장애를 동의어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의 제니퍼 러너(Jenifer Lerner) 교수의 연구진에 의하면, 판단과 결정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 뇌에서는 감정을 다루는 영역인 변연계와 전두엽에 불이 켜진다. 한편 술김에, 홧김에 엉뚱한 결정을 할 때는 전두엽과 변연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이 보다 잘 그리고 빠르게 결정을 한다. 그러니까 감정이 발달해야 결정도 잘 된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감수성이 발달한 여성이 결정을 잘 한다.
그러나 감정이나 결정력에도 후천적인 영향이 존재하며, 다른 역량들과 마찬가지로 갈고 닦고 개발해야 하는 영역이다. 근거를 들어 설득하려고 애쓰다 보면 논리력이 향상되듯, 감정 또한 폭넓게 이해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다 보면 개발되고 다듬어진다.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다스리는 것은 불쾌감을 피하고 건강을 증진 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판단의 질을 향상시키고 탁월하고 유능한 인재가 되게 한다. 같이 일하기 정말 힘든 상사는 못된 상사, 게으른 상사가 아니라 결정을 내려 주지 않는 상사이다. 좋은 결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감수성이 좋다는 사람은 좋은 '촉'을 뽐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촉'이 좋다는 것은 감수성이 좋다는 말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멘탈 시뮬레이션'이라 한다. 이들은 느낌이 좋으면 온 힘을 다해 진행하고, 뭔가 께름칙하면 잠시 멈추어 살핀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그동안 축적된 경험적 데이터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인지, 해석, 판단, 결정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상호 작용하여 벌어진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과거의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요소를 피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상대와 공동체의 분위기를 읽어 내야 한다. 그것을 해내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며 이때 바탕이 되는 것은 감정이다.
나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활동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절하고, 풍요롭게 표현하는 것은 더 나은 일상과 인생을 열어 주는 작지만 위대한 비밀이다. 나의 감정을 잘 알아야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
마음도 몸과 똑같이 대우해줘야 한다. 감각은 객관적이라면, 감정은 주관적이다. 마음이란 몸이 객관적으로 감각한 것이 주관성이 개입하여 감정이 되어 머문 것이다. 그래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감정 관리를 해야 한다. 감정을 무조건 억압만 하면 안 된다. 예컨대, 자신의 마음을 툭 털어놓고 누구와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치명적인 질식 상태로 몰아 넣는다. 흔히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쌓아 놓는다. 이런 경우 마음의 환기가 필요하다.
감정은 마음의 감각이다. 감각은 몸이 느끼는 것이다. 감정은 마음이 느끼는 것이다. 몸은 객관적이라면, 감정이 마음속에 있는 주관적인 생각이 만들어 내는 감각이다. 감각은 우리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감각 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예컨대, 우리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다쳐도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통증을 비롯한 감각들은 우리 몸에 이상이 있을 경우 빨리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는 신호기 역할을 한다. 마음의 감각인 감정이 하는 역할도 똑같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것이 보내는 신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때 우린 마음의 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남의 아픈 마음도 헤아릴 수 있다. 우리 뇌에서 공감의 능력에 작용하는 세포를 작동시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다. 공감 능력을 높이려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감정이 풍부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왜? 기쁨과 슬픔은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을 도와 협력을 증진 시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는 긴장감을 높이는 호르몬을 내보내 근육의 민첩함을 돕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갈리는 야생에서 절대적이다. 자동차로 보면 감정은 가속 페달이고, 이성은 브레이크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의 제어 역할이 이성인데, 감정이 메마르면 이성 역시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서 한 번 밟아주어야 차가 잘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감정을 키워야 마음도 정신도 풍요로워지고, 정서적 균형을 이루게 된다. 너무 이성으로 제어를 하면, 내 차처럼 동네에서만 움직이니 차가 제대로 안 나간다. 사람도 그렇다.
-하략(下略)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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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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