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공자 광(光)은 평소 야인으로 살면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일들을 시원시원하게 추진하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촌 형제들의 숙청이었다. 숙청의 빈자리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등용해 채웠다. 피의 숙청을 통해 권좌를 유지하면서 백성을 안무하는 수법은 낯설지 않은 통치 방식이다. 농업과 축산업에 힘쓰고, 수리 시설을 새로이 구축하는 등 산업의 진흥에도 노력하였다. 특히 그는 제철 산업과 병기 산업에 힘을 쏟아 강소성, 절강성 등이 춘추 최대의 제철업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합려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해결사 오자서에게 상국(相國)이란 직책을 내렸다. 상국은 재상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오자서는 먼저 수도부터 옮겼다. 그는 장강의 하류 고소산(姑蘇山) 동북쪽 30리에 큰 성을 쌓았다. 바로 오늘날의 소주(蘇州)이다.
오자서가 혁신과 내실에 힘쓰고 있을 때 초나라에서 백비(伯嚭)가 망명해 왔다. 그도 비무극과 원수를 지고 도망자가 된 인물이다. 훗날 백비는 오자서와 권력투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오자서를 죽게 한 인물이 된다. 이 무렵 오자서는 또 한 사람을 왕에게 천거하였다. 제(齊)나라 출신으로서 《손자병법》을 쓴 손무(孫武)이다. 이때 손무는 필생의 역작 《손자병법》의 저술을 마치고 나부산(羅浮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 《손자병법》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병법서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에는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손자병법》 13편은 단순하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서가 아니다. 인재를 등용하고 조직을 이끄는 지혜를 담아 오늘날까지 시스템 경영에 원용되는 고전이 되었다. 오자서는 그 13편을 차례로 합려에게 들려주었다. 합려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 병법서야말로 반전의 연속이며, 신출귀몰이구나. 그런데 우리 군사의 숫자가 많지 못하니 그게 못내 아쉽다!”
“신의 병법은 비단 병사에게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라도 군령으로 다스리면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신에게 궁녀들을 훈련하게 해주시면, 한나절 안에 군사로 만들어놓겠습니다.”
“그것참 재미있겠구나. 그런데 아무리 흘러가는 말이라도 약속은 약속이다. 뒤에 과인을 원망치는 말아라.”
곧바로 궁녀 180명을 불러냈다. 손무는 이들을 두 패로 나누어, 진법 훈련에 들어갔다. 궁녀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도 만난 듯, 누구는 일어서는데 누구는 그냥 앉아 있고 뒤죽박죽이었다. 스스로도 우스워 웃고 떠들다 보니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지휘하던 손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왕이 가장 사랑하는 미희 두 사람을 불러내더니 가차 없이 목을 베어버렸다. 미처 말릴 겨를도 없었다. 가녀린 여인들의 목이 흙바닥에 뒹구는데, 믿을 수 없다는 듯 속눈썹 치렁한 눈이 몇 번이고 껌벅거렸다. 궁녀들은 졸지에 새파랗게 질려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재잘거리던 연병장은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엄숙하게 변하고, 손무의 지휘에 따라 척척 훈련에 열중하였다. 과연 한나절이 채 못 되어 그런대로 진법을 구사하는 군사가 되었다.
합려는 기가 막혔다. 손무가 훌륭한 장수일지는 모르나, 충실한 신하는 아니었다. 본인이 허락한 일이라 차마 손무를 죽이지는 못하고 도로 나부산으로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이때 오자서가 나섰다.
“대왕께서 아름다운 여인과 평생을 보내시려면 손무를 돌려보내십시오. 대신, 초를 정벌하고 천하 패권을 잡으시려면 손무를 대장군으로 쓰십시오. 부디…!”
오자서의 말은 스스로 격앙되어 우렁우렁하게 들렸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듯 합려가 껄껄 웃어 보이더니 손무를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자신이 찼던 칼을 내주어 군령을 세웠다. 합려는 과연 영웅의 풍모를 지녔다. 버려진 마이너리그의 인재들이 이제 대범한 군주를 만나 공포의 ‘외인군단’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산적이나 수적, 유랑민들도 신분을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채용하여 하급 장교나 장졸로 편입시켰다. 앞으로 장강의 열국은 기존에 만나보지 못한 가공할 군대와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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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군사를 조련한 손무는 먼저 서성(舒城) 땅을 겨누었다. 서성은 서(徐)나라와 종오(鍾吾)나라, 그리고 오, 초가 인접한 접경지대로서 교통의 요지이다. 이곳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는 한 지역이 아니라 대륙의 동남부를 호령할 교두보를 얻는 문제이다. 지금 그곳에는 요왕이 파견한 엄여와 촉용의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
둘은 당대 최고의 맹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엄여는 죽은 요왕의 외숙으로서 병법에 밝았고, 촉용은 타고난 장사로서 팔 척이 넘는 키에 얼굴을 덮은 구레나룻으로 흡사 시꺼먼 괴물 같았다. 그들의 소문은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둘은 손무의 군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바탕 너털웃음부터 날렸다.
“크하핫핫!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애송이 놈이!”
곧바로 서나라, 종오나라와 함께 동맹군을 결성하고 손무군에 맞섰다. 엄여의 군사는 3만, 이에 맞서는 손무군은 2만으로 양군은 복양 땅 평원에서 조우하였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손무는 이 전투에서 당시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묘기를 구사하였다. 처음에 안익진(雁翼陣, 기러기 무리 형태의 진형)으로 상대를 에워싸듯이 대처하다가, 화살 거리 앞에서 갑자기 진형을 어린진(魚鱗陣, 물고기 비늘 형태의 진형)으로 바꾸어 적진을 파고들었다. 평소 그는 넓히고 좁히고 조이고 푸는 기동 훈련과, 종대에서 횡대로, 횡대에서 종대로, 원형에서 일자로, 일자에서 기러기 형태로 바꾸는 이런 훈련을 수없이 반복하였다. 당시 누구라도 싸움이 벌어진 전장에서 이렇게 진법을 바꿔가며 군사를 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익진에 맞서던 엄여군은 갑자기 상대가 어린진으로 나오자 허둥지둥 당황해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리는데도 전투는 끝이 나질 않았다. 그날 밤은 달빛도 좋았다. 기세등등한 손무의 공격을 받은 엄여군의 후미를 오자서, 백비 등이 나누어 십여 차례나 쫓고 두들겨댔다. 전쟁이라고 하기보다 숨고 도망치고 쫓는 토끼 사냥이 전개되었다. 상처 입은 촉용도 난전 중에 오자서와 마주쳐 결국 그의 창날에 죽었다. 밤새 시달린 엄여는 몇 안 되는 군사와 함께 언덕 위로 쫓겼다. 잠시 에워싼 적진을 굽어보았다. 어둠이 덜 걷힌 조릿대 덤불 틈에서 여기저기 바쁘게 군사와 말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밝은 날 마지막 공격을 위해 준비하는 중이리라. 잠시 주춤하던 그는 마음을 다잡고 칼을 뽑았다.
“대왕이시여! 신이 부족하여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패했나이다. 못난 신을 용서하소서!”
그가 그토록 절절히 부르짖는 대왕은 죽은 요왕이다.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가치는 있다. 엄여와 촉용이 죽고 나서야 이 전투는 끝이 났다. 병법서란 게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개념으로 가르치기 마련인데 손무가 진형의 변화를 구사한 사례 한 가지를 보아도 그의 전략이 간단치 않음을 알겠다.
그 후 종오나라와 서나라는 별반 힘도 써보지 못하고 손무에게 정벌당하고 종묘사직을 닫았다. 군대를 움직이면 싸울 때마다 이기고 나라 둘까지 병합시키자 합려는 이제 손무의 능력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기왕에 내친김에 초(楚)의 영도까지 쳐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손무가 이를 말렸다.
“일단은 퇴각했다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립시다.”
오자서는 애가 탔다. 이 시절의 그는 한시가 바쁘다.
“어느 세월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허허! 무작정 기다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슬슬 부채질은 해야겠지요. 상대의 교만과 욕심을 부추겨 승리할 것입니다.”
병법서를 저술한 만치 말로써 손무를 이길 사람은 흔치 않다. 《손자병법》의 전략은 인(忍), 세(勢), 패(覇)의 세 단계가 있다. 곧 참을 인(忍)으로,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고…, 세(勢)로써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며…, 결국 때가 오면 허점을 노려 무너뜨리고 승리한다는 전략이다. 노림과 기다림이야말로 《손자병법》을 무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동안 초나라에서는 간신 비무극이 권력 다툼 끝에 낭와에게 죽고, 낭와가 영윤 벼슬에 올랐다. 그런데 낭와도 멀쩡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비무극과도 달랐다. 욕심이 많고 야심만만한 데다, 교활한 인간이다. 손무는 이런 낌새를 알아채고 곧바로 ‘내부로부터 흔들기’에 들어갔다. 이른바 교병지계(驕兵之計, 적의 교만함을 키우는 계략)의 계책으로서 뇌물과 이간질의 뜸 들이기였다. 먼저 낭와에게 취임 축하 선물부터 보냈다. 금으로 만든 엄심갑 한 벌에다 젊은 여인 여덟을 딸려 보냈다. 낭와는 순금 엄심갑만으로도 입이 찢어졌다. 게다가 강남의 미인은 상류층 인사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사치품이다.
“뭐니 뭐니 해도 계집은 강남 계집이라니까!”
“암만! 흐흐흐, 중원 천지에는 그만한 물건이 없지.”
초소왕에게는 따로 명검 한 자루를 보냈다. 합려의 보검 사랑은 특별한 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 속에 3천 자루의 보검을 함께 묻어달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칼을 좋아하는 군주였다. 합려가 이때 초소왕에게 보낸 명검은 바로 어장검과 함께 만들어진 반영(磐郢)이란 이름의 칼이었다. 반영은 자루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보석을 일곱 개 박은 칼로서 칠성보도(七星寶刀)라고도 불리었다. 초소왕이 예물을 들고 온 사신에게 물었다.
“귀국이 과인에게 칼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오?”
“이 칼, 반영은 북두의 정기로 만들어져 허리에 차고 있으면 천하가 복종한다고 합니다. 우리 군주께서 오늘 대왕께 반영을 바침은 몸을 낮추어 대국을 섬기고자 하는 진솔한 바램입니다.”
더없이 반가운 말이었다. 초나라가 공식적으로 오와 화친하고 상호 불가침 조약까지 맺자 이웃의 제후들이 줄줄이 축하를 드렸다. 당나라 임금 당성공(唐成公)과 채나라 임금 채소공(蔡昭公)도 영도를 찾았다. 채소공은 예방의 선물로서 패옥 두 개와 은초서구(銀貂鼠裘, 흰담비 모피 외투)로 불리는 갖옷 두 벌을 준비했다. 선린 우호를 다짐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두 군주는 함께 패옥을 차고 갖옷을 입고 연회를 즐겼다. 그런데 영윤 낭와는 채소공의 은초서구와 백옥패에 욕심이 났다. 그래서 넌지시 물었다.
“이 사람에게 군주의 백옥패와 갖옷을 보여줄 수 없겠습니까?”
물건을 선물하라는 압력이었다. 채소공은 낭와가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게 불쾌해서 단박에 거절하였다.
또 당성공에게는 보물처럼 아끼는 명마 두 필이 있었다. 털이 비단같이 희고 다리는 늘씬한 게 미인을 연상케 하는 암말들이다. 당성공은 이들을 숙(驌)과 상(騻)이라 이름 짓고 지극히 사랑하였다. 이번에도 그는 숙상이 끄는 수레를 타고 왔다. 낭와가 말을 보더니 덜컥 탐을 내면서 그중 한 마리를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아끼는 암말들이라 수말에게 흘레붙이기도 아까워하던 당성공으로서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낭와는 무안했다. 신흥 강국 오나라조차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는 판인데 세상모르는 채소공이나 당성공이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바로 초소왕에게 꼬드겨서 일러바쳤다.
“채, 당 두 나라는 겉으로 복종하지만 다른 속셈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영도에 잡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은 귀가 얇았다. 이 시절에는 특히 무엇이든 낭와의 꾐에 따랐다. 말만 왕이지 국가 체제에 대한 개념이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채소공과 당성공은 별도의 관저에 연금되었다. 둘은 열 달이나 억류당해 있다가, 당성공이 숙상을 바치고 체소공은 은초서구를 바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그들은 굴욕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오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만에 하나라도 귀국이 초와 전쟁을 벌인다면 참전해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하나가 자존심이다. 낭와는 이웃 제후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 원한을 남겼다.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있었다. 때는 무르익었다. 초나라는 비무극과 낭와로 이어지는 권신들의 만행과 젊은 왕의 어리석음으로 열국의 인심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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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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