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35화. 전설이 된 자객 (2)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11-04 08: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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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검에 담긴 전제의 목숨 건 충의, 오왕 요의 최후와 합려의 탄생

 

 

오왕 합려 당시에 만들어진 칼 한 자루가 중국 산서성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버젓이 검신에 오왕광검(吳王光劍)이라고 새겨져 있다. 2,500년 전 칼이지만 지금도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강철을 제련하는 가장 좋은 온도는 1,200도~1,300도인데, 이는 참나무 숯으로 충분히 가능한 온도이다. 그런 탓에 처음 제련술이 발명된 이 시기에 이미 최고 수준의 검이 탄생하였다.

전제가 비수를 조용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피기 시작한다. 칼은 길이가 두 척 반, 비록 짧았지만 순수하게 강철로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칼자루를 쥐고 슬쩍 뽑았다. 칼날은 푸르고 잘 벼려져 창백했다. 비단처럼 매끄러워 보이지만 예리한 칼날, 맑은 물을 얼린 것처럼 아름답다. 칼날 폭은 넓은데 치수가 짧다. 도신(刀身)에는 손으로 만져보면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주름이 물고기 비늘처럼 새겨져 있다. 수없이 불리고 담금질하여 구름 같은 무늬가 아롱거린다. 살짝 튕기니 웅…, 하고 울었다. 칼잡이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명검이다. 전제는 조용히 손깍지를 꼈다.

“과연, 세상에 다시없는 칼입니다. 이거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소인은 어머니를 찾아뵙고 오겠습니다.”

전제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뵈었다.

“아범아! 이 무심한 사람아! 어디 갔다가 이제 왔느냐? 공자께서 너에게 일을 맡기시더냐? 충과 효는 함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어미 걱정일랑 말고 큰일을 이루어 가문을 세워라. 네가 세상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다면 어미는 죽어서도 썩지 않으리.”

채나라의 귀족이었던 노모는 자식이 저잣거리에서 노름이나 싸움질을 하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말이 좋아 협객이지 술과 노름에 빠져 사는 도시 건달이다. 그녀는 장꾼이나 왈짜들이 전제를 표자두(豹子頭)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다. 이제라도 아들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귀한 신분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제는 어머니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이렇게 연약한 몸으로 어머니는 위엄과 고결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말했다.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구나. 물 한 바가지만 떠 오너라.”

툇마루를 돌아 우물물 한 대접을 떠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어디 계시오?”

“조금 전 피곤하시다면서 뒷방으로 가셨습니다. 한숨 잘 테니 떠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히 뒷방으로 달려가 보니 노모가 대들보에 목을 매고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자식에게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게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문과 명예였다. 당시 지도층의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과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이 있었다. 죽음도 삶의 일부였다. 우리가 온 곳,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갈 곳의 경계는 명백하다. 그러나 ‘우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고 이승에서 맺어진 인연은 저승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이승에 오기 전에도 하나였고, 와서도 함께였고, 마지막에도 하나의 품으로 돌아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계속되고 이어진다는 ‘불멸’의 믿음은, 사람들을 안도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지만 맹목적으로도 만들었다. 영혼이 삶의 존재 가치가 되어 빛나던 시절이다.

공자 광이 요왕을 초대하였다.

“며칠 전에 우리 군사가 출병하고, 신도 시간을 아껴 전선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신도 출전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 신의 집에 요리사 하나를 새로 뒀는데, 태호에서 최고로 꼽히는 요리사라고 합니다. 신도 그가 구운 생선을 한번 맛보고는 다른 것은 먹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대왕을 한번 모시고 요리를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식가인데다 워낙에 구운 생선을 좋아하는 왕은 당장에 구미가 당겼다. 차제에 광의 사기도 올려줄 생각이었다.

“하하, 과인이 내일 낮에 형님 집에 가리다. 너무 과한 준비는 하지 마시라.”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하루에 두 끼를 먹던 식사 습관이었기에, 낮이라고 하면 당연히 저녁 식사를 말한다. 대신 어둠이 내리기 전 일찍 먹는 편이었다. 이튿날 왕의 행차는 광의 저택으로 향했다. 골목마다 겹겹이 군사들이 에워쌌고, 연회석이 마련된 대청 주위에는 직속 시위 백여 명이 경계를 섰다.

사슴 고기, 거위 고기, 쇠고기 사태 등이 그때그때 조리되어 나오고, 향기로운 술 항아리에는 매화꽃이 둥둥 떴다. 피리와 비파를 다루는 악공들도 만찬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조리사가 직접 요리를 왕 앞에 날랐다. 몇 가지 전채 요리가 나오자, 집주인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삔 발목이 가끔 쑤십니다. 이럴 땐 비단으로 발을 꽉 묶어야 진정이 됩니다. 대왕께선 어주(御酒)를 들고 계십시오. 신은 잠시 안에 들어가서 발을 좀 싸매고 나오겠습니다.”

 

▲AI 이미지 생성

 

광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안채로 들어갔다. 무장한 군사 둘이 창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왕이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잠시 후 드디어 오늘의 메인요리로 전제의 생선이 나올 차례가 되었다. 전제가 오늘 준비한 요리는 잉어구이였다. 그는 자못 삼가는 몸가짐으로 생선 접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나타났다. 군사들은 요리사의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무기도 나오지 않았다. 전제는 요리 소반을 받쳐 들고 무릎걸음으로 왕에게 다가갔다. 시위 군사들이 양옆에서 그를 이끌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군사들의 사슬 갑옷이 철렁거렸다. 그런 자세로 그는 어전 앞에까지 이르렀다.

“그대가 태호에서 왔다는 요리사인가?”

“예! 그러하옵니다.”

전제는 태연하게 요리 접시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팔뚝만 한 잉어가 맵시 있게 얹혀 있었다. 왕이 미식가답게 구운 생선을 찬찬히 살피는데 유독 배가 불룩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 생선은, 내장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전제는 움찔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에다 거칠게 살아온 저잣거리 내공이 있는 만치 임기응변이 빨랐다.

“그렇습니다. 이 생선에는 내장이 들어 있습니다.”

“어째서 빼지 않았는가?”

“그것이 소인의 요리법입니다. 내장째로 구워서, 드시기 바로 전에 어장을 빼내야 생선의 맛이 더욱 좋습니다. 또 내장 중에 어떤 부분은 별미로 드시기도 합니다.”

표범은 먹잇감 앞에서 떨지 않는 법이다.

“핫하하 그래? 그런 말은 또 처음 듣는구나. 오늘 별미를 맛보게 생겼구나. 어서 내장을 빼보아라.”

전제는 물고기 배 속을 열었다. 그런데 그가 끄집어낸 것은 내장이 아닌 명검 잠로였다. 그는 비수를 물고기 배 속에 숨겨 왕 앞에까지 왔던 것이었다! 흥미롭게 전제의 손놀림을 살피던 왕의 눈이 순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어! 어엇.”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전제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자객은 무릎을 굽힌 그 자세대로 몸을 움츠리는가 싶더니 날아가듯이 왕의 심장을 찔렀다. 아무르 표범이 몸을 날려 먹이를 낚아채는 자세, 일격필살의 초식이다. 그와 동시에 시위 군사들의 칼날이 하나는 전제의 등판을, 다른 하나는 정수리를 내려쳤다.

그런데 왕은 그날 비단 겉옷 속에 청동제 엄심갑(掩心甲,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을 받쳐 입고 있었다. 잠로의 칼날은 청동 갑옷에 막혀 삐끗 미끄러졌다. 대신 힘 실린 군사들의 칼은 자객의 등판과 정수리에 그대로 떨어졌다. 순간 전제의 동물적인 감각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칼날이 미끄러지는 즉시 내리깔았던 눈이 번쩍 빛나더니 반사적으로 칼을 위로 치켜올려 상대의 목젖을 가르고 들었다. 전제의 머리가 빠개지고 허옇게 뇌수가 분출되는 순간 그의 칼날도 왕의 목동맥을 가르고 있었다. 전제도 자신의 칼날을 보고 있었다. 뇌수를 쏟으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과연 표자두 전제! 해냈다.”

그 순간 태호의 주루에서 아름다운 몸을 제공하기 전에 귓전에 맴돌던 미희의 비파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몽환적인 환락의 기억과 함께 그의 영혼은 영원의 망각 속에 묻혔다. 시위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칼과 창으로 자객을 찌르고 베었다.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를 잃고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내실에는 오자서가 있었다. 연회장에서 비명이 터지자 문 뒤에 숨어 있던 오자서는 광을 따라온 군사 둘을 베어 죽였다. 광은 일이 성사되었음을 직감하고 숨겨둔 사병들을 내보냈다.

“왕은 죽었다. 겁낼 것 없다. 시위 군사들을 모조리 죽여라!”

사병들이 시위와 싸우기 시작하였다. 시위들은 힐끗힐끗 왕의 상태를 곁눈질하였다. 목젖이 잘린 상처 사이로 샘물 쏟아지듯 울컥 벌컥 피가 솟구쳤다. 왕이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간대도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자서는 공자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갔다. 광이 문무백관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거사를 선포했다.

“영악한 요가 감히 수몽대왕의 유지를 어긴 죄를 오늘에야 추단하였다. 백성들에게 선포하노라! 나는 오늘 요를 처단했을 뿐 결코 왕위를 탐내서 거사한 것은 아니다. 잠시 섭정 대리로서 정사를 돌보다가 진(晉)에 가 계신 계찰 숙부가 돌아오면 수몽대왕의 유지대로 그 어른을 왕위에 모실 것이다.”

명분은 항상 중요하다. 그런데 누구도 광의 말처럼 숙부에게 왕위를 돌려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명분은 그냥 명분일 뿐이다. 계찰을 모셔 오기 위해서 오자서가 진(晉)으로 떠났다. 진과 오(吳)는 달포 길이다. 그런데 산천 유람이라도 하는지 돌아오는 여행길은 보름께나 더 걸렸다. 그동안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찰은 매리성에 돌아와 광을 만나면서 스스로 신하의 예를 취하여 단 아래에서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는 아예 연릉 땅으로 물러가 죽을 때까지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섭정 대리 광은 흡족했다.

“일이 그렇게 되는구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그의 나이 51세였다. 공자 광은 즉위하여 스스로의 호를 합려(闔閭)라 칭했다. 여느 왕들처럼 추존된 시호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왕의 이름이었다. 오늘 그가 내건 ‘합려’란 명칭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춘추오패’의 영광이 되었다.

《춘추》의 해석서인 《좌전》에는 闔廬(합려)라고 썼다. ‘누추한 오두막집’을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사기(史記)》에는 闔閭(합려)라고 달리 썼는데 그 뜻도 그리 고상한 게 아니다. ‘길가에 세워진 여닫이 문짝’ 정도의 의미이다. 본래 광(光)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지닌 사람이 보위에 오른 뒤 왜 이런 누추한 이름을 선택할 것일까? 과연 천 길 물밑에 숨어 있는 이무기다운 발상이다.

이날로부터 명검 잠로는 어장검(魚腸劍, 물고기 배 속의 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전제는 천하의 협객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칼잡이 전제가 노모와 자신의 목숨을 희생으로 삼아 협(俠)을 완수하자 합려는 그 아들을 돌보아 약속을 지켰다. 전제의 아들 전의(專毅)에게는 상경(上卿) 벼슬을 주고 식읍을 내려 대부로 살게 하였다. 야인이자 자객의 아들이 일약 귀족이 된 것이다. 이 역시 중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전제의 아들 전의는 16년 후 합려가 취리(檇李) 전투에서 월나라 군사들에게 쫓길 때 끝까지 곁을 지키다가 죽게 된다. 그들 부자는 합려와 함께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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