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1662)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1-06-19 11: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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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에서 '자유'로, '증식'에서 '순환'으로 건너가야 한다

승화는 자신의 간절함이 원하는 바를 거침 없이, 자유롭게 행할 때 자신의 삶에 슬며시 일어난다. 그때 자유다.

현대 문명의 대전제는 소유와 증식이었다. 이러한 배치로부터 탈주하려면, 핵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주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더 좋은 음식과 거주지를 원한다면 탐욕이 작동한다. 탐욕은 필요 없는 욕망과 걱정을 야기하며 불행을 초래한다.

 

 

아침 침대에서 마경덕 시인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담벼락에 "애벌레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나비가 되게 하십니다"라 쓰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내가 나비가 되지 않은 것은 아직 끝이 아니다'는 말로 읽었다. 끝이 아니니, 다시 또 건너가기를 하라는 거다. 그래 내 심장은,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유목의 꿈"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박상옥 시인의 시처럼,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 "나비는 날아오르는 순간 집을 버린다./날개 접고 쉬는 자리가 집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천지개벽하는 장소인 고치 안에서 일어나는 변신을 우리는 승화(昇華)라 한다. 고치 밖에서 볼 때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인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승화는 고유한 생각과 말이 깊은 성찰로부터 나오는 삶의 방식이다. 승화는 자신의 간절함이 원하는 바를 거침 없이, 자유롭게 행할 때 자신의 삶에 슬며시 일어난다. 그때 자유다.

 

그러려면 욕망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소유'에서 '자유', '증식'에서 '순환'으로 건너가야 한다. 이는 노동과 화폐가 부여한 배치로부터의 탈주를 시도하는 일이다. 그건 동시에 우리 자신 안에 잠재하고 있는 야생성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야생적인 신체성을 동력 삼아 삶 전체가 "우주적 순환"(고미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20세기 문명이 만든 몸의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 쉽게 말해,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몸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직접 목소리로 통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소통하고, 걷지 않고 여기저기 차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몸의 정기가 순환되지 않는다. 따라서 밤에 잠을 못 자고, 술판을 벌여야 겨우 잘 수 있다. "낮의 활동에선 웅덩이처럼 고이고, 밤의 유흥에선 불나방처럼 타오른다."(고미숙) 멋진 표현이다. 그래 나는 어지간하면 걷는다. 몸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체와 과열로 불통(不通)이 일어난다. "통즉불통(通則不通)"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통하면 아프지 않다, 또는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낮에 몸을 움직이지 않는 데서 오는 정체와 밤에 '주색잡기'로 일으킨 과열이 작금의 우리들의 불통 모습이다. 이런 상태로 건강을 물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다, "자존감이란 발산과 수렴의 매끄러운 리듬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고미숙)

 

현대 문명의 대전제는 소유와 증식이었다. 이러한 배치로부터 탈주하려면, 핵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주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젠 혈연과 가족을 넘어선 우정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유를 향한 걸음을 멈추고 생명의 순환에 참여할 수 있는 길로 떠나는 "유목의 꿈"을 꾸어야 한다. 정말 집의 시대를 멈추고, 길의 시대로 건너가야 한다. 정주에서 유목으로 건너가야 한다. 여기서 꿈꾸는 유목은 소유와 증식, 서열 및 위계의 세계에서 상이한 방향의 힘들이 각축하고 서로 다른 윤리들이 좌충우돌하는, 무엇이든 실험을 할 수 있고 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세계이다. 그걸 우리는 '노마디즘'이라 한다.

 

 

 

유목의 꿈/박남준

 

 

 

차마 버리고 두고 떠나지 못한 것들이 짐이 된다

 

그의 삶에 질주하던 초원이 있었다

지친 것들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생각한다

한 꽃이 지며 세상을 건너듯이

산다는 일도 때로 그렇게 견뎌야 하겠지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때 머물렀던 것들이 병이 되어 안긴다

아득한 것은 초원이었던가

그렇게 봄날이 가고 가을이 갔다

내리 감긴 그의 눈이 꿈을 꾸듯 젖어 있다

몸이 무겁다

이제 꿈길에서도 유목의 길은 멀다

 

 

이런 <인문 일기>를 쓰다가, 오늘 아침 사진을 페북에서 만났다. 스페인 정부가 방문 중인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여준, 1730년대에 제작된 <조선왕국전도>의 사진이다. 이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아주 소중한 사료"이다. 나는 여기서 일본을 생각하며, "얕은 처세는 배신을 낳는다"는 문장을 만들었다. 얕은 처세의 특징은 '의리(義理)가 없다. 그러니 쉽게 배신한다. 그래 보여준 것이 스페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발 더 나아간다. 얕은 처세는 인간의 3대 악()을 낳기도 한다. 편견, 자만과 연결된 오만 그리고 악의(惡意)가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얕은 처세이다. 그 반대는 무엇일까? 세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로 깨달은 지혜, 겸손 그리고 선의(善意), 그냥 선의가 아니라 '선의의 양심'이다.

 

선과 악, '한끝' 차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하인리히의 재판을 보면서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한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의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높아야 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하려면 좀더 배워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없다. 악은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일 뿐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불행의 원인, 일상의 쾌락이 아닌 불쾌함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 그리고 무절제한 욕망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네가지 치료법은 다음과 같다. (1) 신을 두려워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그중 오늘 다시 소환하는 것은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으로 의식주(衣食住). 배고픔 목마름, 잠 등이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이 이에 해당한다.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지만,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성적인 쾌감을 충족시키는 일이 그 예이다. 이런 행위들은 자연스런 욕구이지만, 의식주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조절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

 

-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부자연스럽고 동시에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과도한 돈, 권력, 명예, 핸드폰, 자동차, 고급 음식, 사치품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약간의 불편을 느끼겠지만,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들도 아니다.

 

생존에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쉽다. 반면 명예와 권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선한 것은 단순하고 검소한 음식과 거주지이다. 이런 것들은 부와 권력과는 상관없이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더 좋은 음식과 거주지를 원한다면 탐욕이 작동한다. 탐욕은 필요 없는 욕망과 걱정을 야기하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니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니 나는 행복하다. '얕은 처세'에 현혹되지 말자. <우리마을대학> 일이 점점 많아진다. 욕심내지 말고 하나씩 해결하자. 노마디즘과 <우리마을대학>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라벨: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인문운동가 박한표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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