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HOT] 가야史바로잡기 전남연대 출범

하성호 기자 / 기사승인 : 2022-05-05 0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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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박사 특별강연......「가야와 임나, 그리고 호남」

전남연대,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서 출범식

전남 각 지역의 공동대표와 지역대표 등 200여 명 참석

 

 

[NEWS HOT] 가야바로잡기 전남연대 출범

이덕일 박사 특별강연......가야와 임나그리고 호남

 

전남연대,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서 출범식

전남 각 지역의 공동대표와 지역대표 등 200여 명 참석

 

 

가야바로잡기는 2독립·통일·세계평화운동의미

한국 영토는 남북한 합해 3분의 2도 채 못 찾은 독립

, 노예역사를 독립운동역사로 전환 통일운동

현재 자녀들 역사 교과서 조선사편수회 출판과 같아

문재인 정부 입법·사법·행정권력↑↑촛불혁명불꺼

호남연대 성립, 불교 1천만+가락종친회 7백만 뒤집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사 바로잡기 전남연대(공동대표 김경자·유성수)출범식이 지난 2315시 목포 삼학도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제1(사회 김양규목포시의회의원), 2(사회 김은숙 목포연대 공동대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이덕일 박사를 비롯 목포시민과 무안, 강진, 진도 등 전남 각 지역의 공동대표와 지역대표 그리고 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1부에서는 김은숙 목포연대 공동대표의 결의문 낭독과 함께 전 참여인들의 힘찬 결의 구호가 있었고 기념 촬영과 폐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2부는 김은숙 목포연대공동대표의 소개로 이덕일 박사의 가야와 임나, 그리고 호남이라는 주제로 왜곡된 가야와 호남·영남지역·반도 등에 대한 일제 식민 사기꾼들의 ’~싶다강역과 억지주장·궤변 등에 대한 해답을 들었다.

 

일제 조선총독부 사관 계승의 이 된 해방공간의 미군정으로 인한 일제시대 친일 각료들의 재등장과 이승만 독재 세력의 민족 좌우 세력 제거 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이어져 박수와 함성 등이 수 차례 터지기도 하는 등 2시간여의 명강의가 있었다.

 

 

 

2부 이덕일 박사의 강연을 정리했다.

 

이덕일 박사 강의 정리

 

▲ 이덕일 박사

반갑습니다. 호남에 오니까 이순신 장군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그 말이 실감이 납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역사연대의 일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의 전남연대 출범식인데요. 이 출범식의 의미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2의 독립운동이고 또 하나는 통일운동, 세 번째는 동북아평화를 이루는 세계평화운동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용어 버리고 대일항쟁기라고 써야

 

왜 독립운동이라고 하냐면 일제강점기라는 용어에만 익숙해 있죠. 그런데 그 용어가 일제시대와 차이가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뭐라고 해야 하냐면 일본이 강제로 점령했던 시기로 하면 주어는 일본이 되지요? 그래서 일제에 맞서 싸웠던 대일항쟁기가 적확한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청중 박수) 대일항쟁기는 두 가지 영역에서 싸운 거에요. 하나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투였고 또 하나는 역사전쟁이었어요.

대일항쟁기, 역사· 영토 찾기 두가지 영역 전쟁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가 역사학자였어요. 단재 신채호 선생 아시죠? 백암 백은식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 등 대다수의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은 역사학자였습니다. 역사학의 논리에서 35년간 싸울 수 있었던 정신적 원천이 나왔던 겁니다.

 

1945815일 독립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영토는 남한만 보면 원래 찾아야 할 영토의 3분의 1밖에, 남북한을 합쳐도 3분의 2를 채 찾지 못했죠. 미완인 거죠. 그나마 영토는 조금이라도 찾았다지만 그러나 민족의 역사는 대일항쟁기에 역사관을 가지고 엄청 싸운 겁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조선사편수회 예산삭감 “0()” 노예민족 식민교육 전략

 

그런데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여러분들은 부모님들한테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심지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가지고 송진으로 연료를 때고 일제가 극심한 전쟁물자가 부족해 시달렸지만,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예산은 1원도 안 깎았지요. 이듬해 일본은 패전을 알았지만 그래도 조선사편수회 예산은 대포나 총알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본 겁니다. 그 전략이 주효해서 지금까지도 우리 자녀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썼다고 하면 딱 맞아요.

 

역사관 측면에서 지금도 1945814일 이전의 시대

 

박근혜 정권 때 국정교과서에 반대해서 제가 길거리 특강을 했어요. 그때 제가 한 말이 있어요. 국정에는 반대하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내용이다. 내용 자체가 얼마 바뀌지 않았어요. 총독부역사관을 그냥 배우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역사관에서는 1945814일 이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제2의 독립운동인 겁니다. 또 하나는 통일운동이라고 했죠? 왜 그러냐 하면 제가 김대중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습니다마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제를 지내면서 카메라가 지하 서재로 들어가서 쫙 비춘 적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분은 다독가이셨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정치권은 너무 수준이 떨어졌는데요.

 

김대중 서재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지도 붙어

지하 서고에 뭐가 있었냐 하면 저희들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라고 쓴 책의 부록에 고조선의 지도를 그렸는데 그 지도가 벽에 크게 붙어 있는 거예요. 저도 책이 많아 이사 갈 때마다 힘든데 김대중 대통령은 저보다 더 많은 책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그 큰 지도의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이분은 우리 민족사관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그분 대통령 당시는 행정 권력도 JP와 반으로 나눴죠. 의회 권력은 안 됐고, 사법 권력 다 저쪽에 있었죠.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지금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다 갖고도 식민사학자들의 판을 만들어 놨어요. 그 결과 촛불혁명이 5년 만에 부정이 된 겁니다.

 

통일운동, 노예사관 청산 위해 민족역사관 쪽 클릭 필수

 

이게 왜 통일운동이냐 하면, 남한의 역사하고 북한의 역사학은 근·현대만 다른 게 아니고 뿌리부터 다릅니다. 지금도 남한의 식민사학 이 분야는 한통속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하면 한국에서 한국역사학자가 말하는 거니까 마땅히 식민사학 해체했겠지, 이럽니다. 아예 국민들은 찰떡같이 믿는 겁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뿌리가 달라요. 해방공간이라고 하면 1945.8.15.~ 1948.8.15.일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즉 정상적인 경로를 못 거친 겁니다. 정상적인 경로를 찾아갔더라면 즉, 예를 들어서 1945.8.15.일 날 백범 김구 선생은 중국 서안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일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범, 광복군=참전국 못되고 해방외세 정국 주도 예감

 

어땠을 거 같습니까? 만세 부르고 박수를 쳤을 것 같지요? 전혀 아닙니다. 백범 선생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좌절을 느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참전국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가 패망했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은 외세가 주도하지 않겠는가?

 

여러분 백범 김구 선생이 운암 이승만보다 뭐가 모자라는 듯하다는 그런 말들을 하죠? 그런 말들은 전부 다 친일파들이 조작해 만든 얘기들입니다. 김구 선생은 정국의 미래를 꿰뚫어 보지 못한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초연히 혁명가의 길을 선택한 겁니다. 3.8선을 넘으며 남긴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나는 내가 이 3.8선을 베고 쓰러져 죽을지언정 분단 정권의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며 초연히 비운의 길을 걸어 간 겁니다.

 

프랑스, 인민전선+사회당 체제……공존공동체 발전

, 자유당(국민의 힘)+친일지주, 한민당(더민주) 뿌리

 

그래서 우리가 해방공간에서 프랑스 같았으면 우파 민족주의 운동을 한 사람들이 인민전선을 만들죠. 그러면서 나치를 더 많이 청산했어요. 그리고 좌파 레지스탕스들이 사회당을 만들어서 좌우가 공존하는 똘레랑스라고 하는 것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

 

사회주의 계열은 말할 것도 없고 백범 김구 민족주의 계열까지 다 제거된 다음에 자유당 계열이 여당이 (국민의 힘당 전신) 되고 친일 지주정당인 한민당(더민주당전신)이 야당이 되었죠. 그 뿌리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예요.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 같은 분이 계실 때는 이 정당의 성격을 백범 김구 선생이 주도하셨던 임시정부의 한국독립당의 성격에 비슷하게 맞춰 가시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평생에 걸쳐서 쌓아놓은 명분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겁니다.

 

역사학, 체제경쟁 수단사학자들 월북 종용 구체화

 

남북한의 역사관은 아주 질적으로 달라요. 그래서 핵심은 뭐냐 하면 남한의 역사관은 그냥 조선총독부 조선편수회 역사관을 아주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해방공간에서 세 그룹이 있었다고 했죠. 하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 사회주의 역사학계, 마지막으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구성원들이 만든 학회가 그것이죠.

 

북한은 일찌감치 역사학을 체제경쟁의 한 수단으로 삼았어요. 그래서 1946년부터 당시 북조선 임시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이 사람을 하나 파견해가지고 남한의 역사학자의 월북을 종용합니다. 이때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은 대부분이 북으로 넘어가요.

 

그러나 여기 남측에서는 해방과 동시에 미군정이 친일파를 재등용하는 바람에 친일파 세상이 되었어요. 여기서 많은 분노를 느끼던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또 월북을 해버린 겁니다.

 

북한 1961한사군 반도설폐기낙랑군 평양설유일

 

북한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1947조선역사편찬회란 걸 만들고 거기에서 여러 역사를 연구하면서 1961년에 한사군은 한반도 북한에 있었다고 하는 낙랑군 평양설을 다 폐기하고 낙랑군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고 하는 학설로 북한 역사학계의 치열한 논쟁 끝에 정리하게 된겁니다. 이미 60여년이 넘었죠. 남한학계는 아직도 낙랑군 평양설, 낙랑군이 평양에 있지 않았다고 하면 여러분들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보통 비판 받는 게 아니에요.

 

가야史 日 열도분국설, 임나=반도시정이 통일운동

 

우리가 지금 말씀드리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 이 사람들은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 극복했다고 거짓말하고 각론에 가면 임나는 일본이라고 말하죠. 북한에서는 1963년 김석형이라는 학자가 월북해 가지고 분국설이라는 걸 만들어 뿌리부터 다 해체했어요. 우리는 아직도 임나일본부설을 쓰고 있죠.

 

그래서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항상 얘기하는 것 보면 북한이 남한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얘기하잖아요. 그게 다 역사관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관을 바로잡는 것이 통일운동이 되는 겁니다.

 

동북공정도 조선총독부 역사왜곡 잔뿌리에 불과

 

또 하나 동북아 아베가 됐든 시진핑이 됐든 다 역사 왜곡이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왜곡을 할 필요가 없어요. 있던 사실대로만 써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농으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상 해외 가서 제일 잘된 집안이 어디냐? 하면 왕가라고 하지요? 열도로 건너가서 왕가가 되지요. (맞습니다)

 

그 사실만 일본이 인정하면 그 뿌리가 한국에서 건너갔다고 하면 역사왜곡은 못하게 되는 거죠. 중국이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부, 만주철도문제 등 이쪽에서 하는 역사왜곡을 그대로 중국이 받아 가지고 하는 거예요.

 

중국도 가서 보면 웃기는 나라에요. 8년 항전 1937년 중일전쟁 때부터 45년까지 일본하고 싸운 걸 가지고 중국 국민당이고 공산당이고 다 정통성을 갖는 것인데 이제 와서 그러면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가지고 동북공정을 하고 있으면 중국은 참 웃기는 얘기가 되죠.

 

한국, 민족운동역사관 정립 땐 ·침략 명분 멘붕

 

한국만 민족운동 역사관을 가지고 바로 서면 일본 중국에 다 그런 사실을 얘기할 수 있고 일본·중국이 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침략을 못 하고 동북아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동북아 평화가.

 

동북아평화가 세계평화에 아주 중요한 한 축이죠.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하시는 가야바로세우기 호남연대 발대식이 제2의 독립운동이자, 통일운동이자, 세계평화운동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군중 박수)

 

식민··학 담합 철통국민·공무원·정치가 등 史盲

 

여러분들 중에 사학과 나와 가지고 석·박사가 아니면 보통 어떻게 아느냐? 가야 건국은 언제 했는가? 하면 42년 김수로왕이 건국했다. 48년에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왔다, 그렇게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식민사학자들이 철저하게 카르텔이 있어 가지고 일반 국민들은 몰라요. 공무원·정치가들도 몰라요. 한국의 유수한 대학사학과 교수들이 말하는 거니까 다 맞겠지 하는 거예요.

 

일반 사람들은 여기 나오는 남한 강단사학계라고 하면 강단사학이 뭐냐고 물어봐요. 우리나라 해방공간에 세 역사그룹이 있다고 했잖아요. 사회주의 계열은 다 월북했고 민족주의 계열은 친일파들이 득세하니까 다 제거가 됐고 남은 그룹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와 신석호가 남아서 이병도는 서울대 사학과를 장악하고 학술원회장을 했지요. 신석호는 고려대 사학과를 장악하고 국사관이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게 바로 조선사편수회 후신이고 이게 바로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겁니다.

 

신석호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재직 자인 꼴

 

▲ 이덕일 박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에 국사편찬회사라는 책을 냈어요. 그 책에는 직원명부를 실었는데 신석호의 재직기간이 1929~1964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했다는 겁니다. 1929년부터 재직했다면 조선사편수회 후신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철의 카르텔이니까 절대 모르죠.

 

제가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다 했으니까 바로 그 내부에 있었으니까 아는 거죠. 이 분야는 정치학과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가야도 3세기 이후에 건국했다. 그러면 북한학계는 1세기에 건국했다. 왜냐하면 북한학계는 사료에 그렇게 나오고 과거사를 판단할 때 두 가지를 가지고 판단하잖아요. 하나는 문헌에 나오는 것과 또 과학적으로 어떻게 되느냐?

 

고고학·史料 가야 건국 1세기극우파·강단사학 무개념 3세기

 

1차적으로 사료인 삼국유사에는 42년에 건국했다고 나오고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도 42년에 건국했다고 나와요. 그리고 삼국사기에 보면 77년에 가야와 신라의 전쟁 기사가 나와요. 그러면 1세기에 가야가 있었다는 게 문헌에는 명확하죠.

 

고고학적으로도 김해 대성동 고분이나 창원의 다오리 고분 같은 데를 가보면 서기 2세기에 만든 도끼 같은 게 나오고 지배층의 무덤이 나와요.

 

그러면 문헌상으로 보나 고고학적으로 보나 1세기에 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 명확한데 오직 전세계에서 두 집단인 일본 극우파 역사집단과 남한의 강단사학자들, 이들이 바로 누구냐 하면 조선사편수회 출신학자들이 학계를 완전히 100% 장악해가지고 손가락 10개 가진 사람들이 손가락 9개 가진 사람들 속에서 병신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방한 외국 사학자 학문 자유 없다조선총독부학설 유일

 

우리나라에 대학사학과 많죠. 외국의 어느 사학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그랬어요. 이상하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사학과가 있는데 어떻게 학설이 딱 하나뿐이냐? 그것이 현재 조선총독부학설 딱 하나라는 얘기다.

 

그런데, 요 근래 들어서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가야사 전국연대에서 비판을 해대니까 합천·남원에서 학술대회를 열었죠. 강단사학자들과 저희들하고 학술토론회를 열었는데 남원토론회에서 강단사학자에게 제가 물어봤죠. 가야가 1세기에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건국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안 합니까? 하니까 이분이 변한의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해대니까 제 질문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인정하세요, 안 하세요? 해도 끝까지 답변을 안 하는 겁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고 나왔는데 남원연대 시민대표 한 분이 저한테 그러는 겁니다. “소장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우리가 이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남원으로 일본의 초중고 수학여행단들이 엄청난 수로 몰려올 뻔했어요.” 하는 겁니다.

 

학자들 8~90년 때 김해·큐우슈우 유물 등 조사

김해열도흐름 인정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김해지방의 유물들하고 일본지역의 큐우슈우 지역의 유적유물을 비교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 흐름을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봤더니 일반적인 흐름이 김해지역의 정치세력이 큐우슈우 지역으로 갔다고 분석해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적유물도 조사해보니까 가야지역이 10배가 많은 거예요. 고대 가야계가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유물유적을 만든 것보다 10배가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의 고고학자들도 임나일본부설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인정한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일본의 극우파재단인 사사카와 등에서는 한국의 대학생들을 일본으로 불러다가 장학금을 주고 생활비까지 주면서 일본의 한국의 유학생들을 친일파로 만들고 식민지사학을 하도록 유도해 나갔던 것입니다.

 

일본, 유학생에 장학금·생활비 등 주며 식민사학 독려

 

또 방학 때만 되면, 한국의 역사학자들을 일본에 초대하여 강연하며 일본 전역을 한 바퀴 돌고 나서 5천에서 1억까지 주었다는 겁니다.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아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 오면 한국의 식민사학 카르텔이 워낙 강건하니 대학교수 되기 쉬워요.

 

또 다른 부류들은 역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등에 들어가서 또 임나일본부설을 떠들고 하니까 일본에서는 자 보아라 한국의 가야사 연구자들과 전공자들이 가야는 임나라고 했지 않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를 갖고 유네스코에 신청까지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김석형 일본서기속 고구려·백제·가야·임나 등열도 분국

고구려 광개토왕이 일본의 야먀토 왜에게 조공을 바쳤을까요? 일본 극우파와 남한강단사학자들은 일본서기가 사실이라고 합니다.

북한으로 월북한 김석형 교수가 일본서기도 역사책인데 어떻게 전부 다 거짓말만 기록해 놓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사실도 상당 부분 담고 있다면 그 사실은 무엇이겠는가 하고 연구를 했지요.

 

그랬더니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의 나라가 아니고 일본열도에 진출하여 세운 소국, 분국들이라는 사실을 1963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라는 논문에서 말했지요. 그 논문을 일본의 재일사학자 이진희 선생이라는 분(당시 광개토왕비문을 일본 참모부에서 조작했다는 것을 발표해 상당히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사학자)1964년에 북한의 김석형 교수가 쓴 논문을 일본어로 번역해 가지고 일본의 학술지에 실리면서 일본의 학자들이 그야말로 또 한 번의 원자폭탄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요. 당연히 자기네들이 봐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한날한시에 모여갖고 야먀토 왜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요.

 

야마토200년 한국 지배?지명 증거 全無

 

일본이라는 나라는 6세기 중엽까지 제철기술이 없던 나라에요. 그런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의 극우파들과 남한의 강단사학자 두 단체만 일본이 제철기술이 없지만 군사강국이라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안 됩니다)

 

그러니까 김석형이라는 학자가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임나는 대륙의 국가가 아니고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정치체제를 만들었는데 고구려는 고구려라고 썼고, 백제는 백제, 신라는 신라라고 썼고 가야계는 가야라고 쓴 데도 있고 임나라고 쓴 데도 있다고 한 겁니다. 실제로 일본열도에 지금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계 지명이 수두룩해요. 왜 이런 지명이 남아있느냐 하면 고대에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살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거에요.(맞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식민사학자들 주장처럼 야마토왜가 고대에 우리나라를 점령해서 200년을 지배했으면 그 지명이 남아있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하나도 없고 0()개에요. 그런데도 이 두부류들은 지배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만 임나가 가야다, 이렇게 주장하는 거잖아요.

 

중국 사료, 임나/가라 별개 나라 열도에 각각 있어

 

중국 사료는 임나와 가라를 다른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가 28……사지절 도독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 제군사를 봉했다.

(二十八年 加使持節 都督 倭 新羅 任那 加羅 秦韓 慕韓 六國 諸軍事 -송서(宋書) 원가(元嘉) 289451)-

왜 국왕 스스로 임나와 가라가 다르다고 말함

이 나라들은 모두 열도에 있던 나라들

 

 

 

북한학자 강단사학사학의 노예아예 무비판

 

북한 역사학자들은 남한 강단사학자들을 아예 비판도 안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일본학자의 노예로 보기 때문이죠. 즉 일본 사학자들의 노예학자로 보는 겁니다. 지금 일본인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독도문제를 들여다보자. 지금 독도가 일본 소유라고 논문과 글 쓴 사람이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이에요.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가면?한국인 일본 땅논문 더 많아

 

일본이 주기적으로 독도 도발을 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를 가자고 하잖아요. 가면 일본에 져요. 왜 지느냐 하면은 독도에 관한 1차 사료는 전부 우리나라 거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언제 한문으로 된 문서를 연구해서 사료를 보고 판단하겠습니까? 그래도 빠르게 판단하려고 독도 관련 논문을 보겠죠. 일본돈 받고 독도가 일본 거라고 쓰는 사람들이 국내에 부지기수예요. 그러니까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독도는 일본 땅이 되는 겁니다.

 

김현구 고대 명예교수 청중 질문에 독도 어느 나라 땅인지 몰라

 

경상북도에 공무원 강의를 간 적이 있어요. 제 앞 강연을 한 분이 서울대 법대 국제법 교수인데 독도가 일본 거라고 하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초청자한테 왜 이런 사람을 초청했느냐고 따진 적도 있어요.

 

제가 임나일본부설 비판하다가 재판까지 받았잖아요. 그런데 저를 고소했던 고려대 역사학과 김현구 명예교수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연구한 사람인데 우당기념사업회에서 초청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 사람이 일본 가서 임나일본부설을 연구했으니까 당연히 부정하겠지 하고 초청을 한 거지요.

 

그런데 자꾸 이 양반 말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한 청중이 질문을 했습니다. “독도가 한국 것입니까? 일본 것 입니까?” 하니까 저는 독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한일 고대사 연구해가지고 와세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단 사람이 그리고 평생을 고려대 교수로 있었던 사람이 자기 전공이 아니어서 모르겠단다.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대신 백제문화연구소있어야

 

▲ 이덕일 박사
군산대에 가야문화연구소가 있어요. 제가 전북 장수 강연 갔을 때 보니까 가야문화연구소장이 제 강의를 알고 대학원생 1명을 보냈어요. 그리고 저를 막 비판하더라고요. 군산대에 역사문화연구소가 있으려면 백제문화연구소가 있어야죠. 왜 제 말이 틀려요? (맞습니다

 

북한학자 조희승 , 전라도·충청도까지 식민지배 영역 넓혀

 

북한 학자 조희승 씨는 북한학계의 가야사연구를 통하여 지난날 일제 어용 사가들은 고대 시기 남부조선 일대가 일본(야마또)식민지였다는 것을 조작하고 가야의 영역을 혹심하게 왜곡 날조하였다. 그들은 가야의 영역을 일본서기임나 관계 기사에 나오는 지명들에 기초한다고 하면서 오늘의 전라도나 심지어 충청도까지 포괄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였다. 그것은 가야의 영역이 넓어야 일본의 이른바 식민지지배영역이 넓어진다는 지배주의 관점에 바탕을 둔 궤변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분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가 1895년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석유통을 들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에게 방대한 문헌고증을 통하여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남 경북 및 충남 전남까지 확장시켜서, 임나는 경주지방 부근과 부여·공주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칭송(?)하고 있지요.

 

일본 고대사, 3C 말 가야계 열도진출 야먀토왜 만들어 시작

 

일본 고대사라는 게 뭐냐 하면 가야계가 열도에 진출하여 일본의 큐우슈우 정치체계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 야마토 왜의 시작이에요. 그다음에 위 세력들이 나라(오사카지역)에 갔을 때는 백제계가 주도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일본 고대사의 흐름인데 이것을 거꾸로 얘기하고 있는게 오늘날의 현실이에요.

 

큐우슈우 남부에 미야자키시에 가보면 사이토바루 고분군이 있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왕가의 발상지라고 말하고 있지요. 저도 가봤습니다. 시기가 3세기 말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야마토 왜의 시작으로 보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사이토바루 고분박물관의 철모하고 고령 지산동 철모하고는 똑같지 않습니까?

 

사이토바루 고분박물관 철모와 고령 지산동철모 똑같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전시회를 했을 때 가야의 구슬이 일본에서도 보인다고만 써놨어요. 사이토바루 고분박물관 소장 철모하고 고령 지산동 가야 철모를 사진 1장으로 보여 주면 될 텐데요. 탁순이라는 지명이 나와요. 탁순을 일본학자들은 대구라고 하는 거예요.

 

대구라고 보는 이유가 뭐냐 하면 대구의 옛 이름이 달구벌이라고 했잖아요. 탁순하고 달구벌하고 이름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발음이 비슷해요? (아니요) 이따위 말로 쓰에마스 야스카즈가 대구를 탁순으로 규정했어요. 그랬더니 김현구가 똑같이 탁순을 대구로 비정했지요.

 

그러니까 북한학자 김석형이 뭐라고 규정했냐 하면 이런 일본학자들의 비정은 억지와 거짓을 면치 못한다고 했지요. 남한에서 김석형 설을 따르면 엄청 왕따 당하고 비판 당하고 심지어 저는 재판까지 당했잖아요.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 받았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어요?

 

촛불정권, 12천억 써 유네스코 기문국 등 몰래 신청

 

그런데 촛불정권에서는 이런 논리가 바뀔 줄 알았더니 한 술 더 떠가지고 국고 12천억을 쏟아붓고 하는 바람에 이렇게 유네스코에 남원은 기문국, 합천은 다라국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남원분들 엄청나게 분개하고 계시는데요. 남원에는 만인의총이 있어요. 정유재란 때 만 명이 싸우다가 전사한 곳인데 그 지역을 또 일본 고대 때 야마토왜의 식민지 기문이라고 하니 조용하겠습니까? 처음엔 남원이 기문이라고 하니까 좋은 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기문선양회라는 사단법인까지 생겼지요.

 

남원=기문근거? 민족사서 따르지 않고 일본서기따라

 

남원이 기문이라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하니까 우리 민족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따르지 않고 일본서기에 따라 유네스코 등록 신청을 한 거죠.

 

백제(무령왕13)에서 조미문귀 장군, 주리즉이 장군을 혜적신압산에게 딸려 보내서 오경박사 단양이를 바쳤다. 백제 임금이 따로 황제께 주문을 올려서, “반파국이 신의나라 기문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엎드려 원하옵기는 하늘의 은혜로 판단하셔서 본래대로 속하게 해주소서라고 주청했다. (일본서기계체(繼體)7)

 

아이들 민족사관 계승경제·정신적 세계에 우뚝 선 나라 돼야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전남연대에서 활동하시는 것에 대해 제2 독립운동이고, 통일운동이고, 동북아평화 즉, 세계평화운동이라고 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보니 정확한 말씀이죠? (. 청중 박수)

 

호남연대만 잘되면 바뀐다고 봅니다. 가락종친 700만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1천만 불교계도 알기 시작했어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도 식민사관 가야고분 세계유산 추진 중단하고, 가야불교도 공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남연대가 이미 활동 중이고 호남연대만 똑바로 서면 진정한 독립국가가 되고 여러분들의 자손이 더 이상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고 실제로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 독립운동 역사를 계승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세계에 우뚝 선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하성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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