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25화. 전무후무 희대의 스캔들 하희 (2)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10-03 08: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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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와 두 대부를 사로잡은 여인…끝내 아들의 화살이 진나라 군주를 쓰러뜨렸다

사랑과 욕망이 권력을 삼키다…주림의 밀회는 결국 군주의 죽음을 불렀다

 

 

 

이래저래 준비된 손님맞이 절차와 순서를 다하고 결국 밤을 맞았다. 진영공은 콧날만 번듯하였지, 남자로서 의행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이었다. 하희는 온갖 교태와 신음으로 상대를 만족시켰다. 남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에 감격하고 만족하여 깊이 잠들었다.

 

닭이 벌써 우니 계기명의 (鷄旣鳴矣)

아침이 이미 밝았겠네요 조기영의 (朝旣盈矣)

닭이 우는 게 아니라 비계즉명 (匪鷄則鳴)

쉬파리 소리일 게요 창승지성 (蒼蠅之聲)

 

동녘이 밝으면 동방명의 (東方明矣)

아침이 이미 환하겠네요 조기창의 (朝旣昌矣)

동녘이 밝은 게 아니라 비동방즉명 (匪東方則明)

달이 비치는 빛일 게요 월출지광 (月出之光)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제풍(齊風)편, ‘계명(鷄鳴, 닭 우는 소리)’

 

남녀가 만나 꼬빡 날밤을 새우고도 밝아오는 아침이 아쉬워 달빛에 동녘이 밝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내용이다. 노랫말처럼 첫닭이 울자 여자가 남자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속살거렸다.

“날이 밝았습니다. 공영 대부가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아직 어둠이 다 걷힌 것은 아니었으나 고개를 든 여인의 이목구비가 박꽃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진영공은 누운 자세 그대로 팔을 들어 여자의 머리카락을 훑어 내렸다.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은 여자의 나신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다. 여인에게 머리칼은 어떤 의미일까. 왜?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만이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공작새의 깃털처럼 어떤 매력과 유혹의 의미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희의 머리칼은 어둠보다 짙었고 젖가슴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면서 토마토보다 단단했다. 남자는 코를 벌름거리면서 킁킁 여체를 냄새 맡았다.

“그대를 품에 안고 보니 궁에 있는 비빈들은 다 허수아비 같구나. 그런데, 그대가 참으로 과인이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구나.”

하희는 팽팽히 긴장된 젖가슴을 추스르며 옷을 걸치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궁금할 것도 많다. 그나저나 눈치를 보니 내가 공영, 의행보 두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임금이 이미 눈치채고 있구나!’

그녀는 암탉처럼 목젖을 울리며 나직하게 웃었다. 그루루루….

“첩이 어찌 임금을 속이겠나이까? 지난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마음이 외로워 다른 사람과 관계가 없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일절 관계를 끊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지난날 관계했던 남자를 다 과인에게 말하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공영, 의행보 두 대부가 신첩의 자식을 여러모로 돌봐주었기에 고마운 마음에 관계를 맺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공영 대부가 그대의 몸이 신기하다는 걸 이야기하기에 내 수상쩍다고 생각했지!”

“다 지난 일입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세요.”

“아니다. 공영은 스스로 과인에게 그대를 소개해준 사람이다. 염려하지 마라. 다만 이제부터라도 늘 함께하면서 우리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머지는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과인은 그대가 한 사람에게 얽매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끝없이 갈구하는 소년이라도 된 듯이 다시금 여인에게 엉겨 붙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언제 이렇게 왕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날부터 진영공은 뻔질나게 주림을 드나들었다. 그는 묘한 변태가 있었다. 여인을 혼자서 소유하기보다는 함께 즐기는 데서 더욱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훗날 남북조 시절에 어느 황제는 사랑하는 애첩을 혼자서만 보기 아까웠던지 숫제 옥체횡진(玉體橫陣, 나체로 조당에 눕게 하고 다른 대신들에게 감상시킴)의 변태적인 고사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진영공은 떠들썩하게 다른 이들과 더불어 즐기는 것을 더욱 즐거워했다. 관계했던 남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하희가 수정같이 맑은 목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녀가 치마폭 하나로 임금과 대부 둘까지 녹여버린 상류 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은 저잣거리에 까발려졌고, 세간의 호사가들은 이를 놀림 삼았다.

“군신 간에 베갯동서가 났다.”

이 사실은 국가 기밀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나, 저잣거리 백성들조차 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무엇 하러 주림 숲에 갔을까 호위호주림 (胡爲乎株林)

하남(夏南)에게 가는 거라네 종하남 (從夏南)

주림 숲에 간 게 아니라 비적주림 (匪適株林)

하남에게 가는 거라네 종하남 (從夏南)

 

네 필 말이 끄는 수레 몰아 가아승마 (駕我乘馬)

주읍 들판으로 가 쉬다 설유주야 (說于株野)

네 마리 말을 타고 승아승구 (乘我乘驅)

주읍으로 가 아침을 먹었지 조식우주 (朝食于株)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진풍(陳風)편, ‘주림(株林, 하희가 살던 지명)’

 

진풍(陣風)이니 하희가 활약한 진(陣)나라에서 유행하던 노래가 맞는다. 여기서 ‘하남’은 하징서를 말한다. 하징서의 자(字)가 남(南)이었다. 말하자면 여자 때문에 주림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아들 ‘하남’을 만나러 간다는 말이다. 마지막 소절 조식우주(朝食于株)에서 ‘조식’ 즉 ‘아침밥을 먹었다’라는 말은 만족스러운 밤을 보냈다는 의미를 돌려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희의 아들 하징서도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됐다. 그도 남녀 관계를 짐작할 나이가 되었다. 진영공은 애인을 기쁘게 해주려고 그를 일거에 사마(司馬) 벼슬에 봉했다. 사마는 군사를 지휘, 감독하는 병권을 담당하는 중책이다.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분명 파격적인 인사였다. 임금과 하희의 관계가 또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며칠 후 임금은 공영과 의행보와 함께 주림 땅으로 행차했다. 이날은 하징서가 벼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임금을 접대했고, 대신 하희는 내실에 있었다. 부쩍 사이가 가까워진 임금과 신하는 시시덕거리며 서로 비릿한 웃음을 주고받더니, 취흥이 도도해진 진영공이 습관처럼 객쩍은 소리를 시작하였다.

“암만 봐도 하징서는 몸매나 하는 짓이 꼭 너를 닮았구나. 네 자식이 아니더냐?”

“눈매가 주군을 닮은 게 아마도 주군의 소생인가 봅니다.”

“주군과 의행보는 그런 자식을 두실 연세가 아니시니, 하징서는 아마 잡종인가 봅니다.”

그때 하징서는 병풍 뒤에 있었는데 그들의 말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젊은 그는 수치와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무슨 결심이 섰는지, 시위 군사들을 불러 모았다.

“집 안에 도적이 숨어들었다. 주군의 신변에 위험이라도 있으면 큰일이다. 너희들은 집 주위를 빈틈없이 지켜라. 내가 도적을 잡고 임금을 보호하겠다.”

칼을 뽑아 들고 후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엉겁결에 내관 몇이 앞을 막다가 칼을 비켜 맞았다.

“죽고 싶지 않거든 비켜라! 음탕한 도적놈을 처단할 것이다.”

일행은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말 등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하징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틈에 공영과 의행보는 뒤꼍 개구멍으로 빠져나가 내친김에 초나라까지 달아났다. 하징서는 그대로 군사를 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가 임금이 술자리에서 급살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주군께서는 큰 공자에게 군위를 계승하라고 유언하셨소.”

자연스럽게 세자 오(午)가 임금 자리에 올라 진성공(陳成公)이 되었다. 그도 대충 이 사단의 내용을 의심하고, 짐작하는 게 있었다. 그러나 하징서가 군사를 장악하고 있어, 우선은 일 돌아가는 형편을 지켜볼 뿐이었다. 워낙에 전대미문의 희한한 사건이라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이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였다.

“진영공이 대부 공영, 의행보와 함께 하희와 통간했다.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가 서로를 희롱하기도 했다. 대부 설야(泄冶)가 간하기를, ‘군주와 신하가 함께 음란한 짓을 일삼아서야 어찌 백성에게 군주를 따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진영공이 그 사실을 두 대부에게 말해주었고 그들은 설야를 죽여 버렸다. 진영공 15년, 문제의 군신(君臣)이 하희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진영공이 두 대부를 놀리기를, ‘하희의 아들 하징서가 자네를 닮았네!’라고 했다. 두 대부가 대꾸하기를, ‘주군을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밖에서 이 말을 들은 하징서가 크게 수치스러워 마구간에 숨어 있다가 활로 임금을 사살했다.”

초나라로 달아난 공영과 의행보는 초장왕에게 군주 시해 사건을 호소했다. 물론 자신들의 음란한 행태는 쏙 빼놓았다. 왕은 신하들을 조당에 모으고 이 사건의 처리를 논의하였다. 이때 조정에는 신공(申公) 굴무(屈巫)가 있었다. 지금의 상해 일대, 신(申) 땅을 관장하는 지방 호족으로 키가 8척에다 문무를 겸비한 귀족인데, 결정적인 흠은 지나치게 여인과 신선술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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