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사라지는 서울의 기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이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10-12 09:29:04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김동욱 ‘을지로3가 240, 241’ 디지털 c-print 2019


누가 뭐래도 서울은 아름답다.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완벽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지녔다. 한 나라 수도로서 이만큼 좋은 입지 조건을 지닌 경우를 찾기 쉽지 않다. 약 600년 전 조선은 이 터를 수도로 삼았다. 궁궐을 짓고 사대문을 세웠다. 조선 개국 이래 면면히 이어진 질곡의 세월이 서울의 역사를 증명한다. 명당 조건을 완성하는 요소는 자연만으론 부족하다. 그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서울의 생명력이 예전 같지 않다. 이른바 근대 이후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 멀리서 보면 서울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역사 도시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꼭 그렇진 않다. 사대문 운운하며 들먹인 서울은 분명 옛날얘기다. 서울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강남 아파트 값, 재개발, 교통난, 환경오염 등 비극에 가까운 단어가 서울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서울은 이미 없어졌다. 그저 기억 속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김동욱 ‘명동2가 90’ 디지털 c-print 2019


사진으로 기록한 서울의 초상


도시의 운명은 생성과 파괴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현재를 구성하는 총량은 변함없다. 사라지는 어제와 내일을 향한 건설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오늘인 까닭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제보다는 내일을 지나간 것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진작가 김동욱이 그런 경우다.


‘서울, 심야산보(深夜散步)’는 김동욱 작가의 흑백 사진작품 시리즈 제목이다. 사진에 찍힌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오래돼 낡은 건물이다. 가깝게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50~60년 전부터 멀리는 해방 직후 무렵에 지어진 것들이다.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명동, 무교동 일대, 청계천과 서울역 주변 등 사대문 안에 간간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지어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근대화를 지향하는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신축 고층빌딩과 재개발 열풍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동욱은 이런 건물을 사진으로 찍는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억과 사라지는 풍경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김동욱은 이렇게 말한다.
“도시에 밤이 찾아오면 낮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분주히 움직이던 자동차 행렬, 생계를 잇기 위해 바쁘게 오가던 사람도 사라지고 간간이 보이던 취객의 흔들리는 걸음마저 어둠에 묻히면, 한낮에 위용을 자랑하는 신축 빌딩 사이에서 남루하게 서 있던 오래된 건물이 당당한 자태로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가 어떻게 생기고 바뀌어왔는가를….” 

 

▲김동욱 ‘서린동 127Ⅰ’ 디지털 c-print 2019


인문학에서 출발한 사진 예술


밝은 대낮이 아닌 어두운 밤에 촬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사진은 추운 한겨울 밤부터 새벽 사이에 촬영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깊은 잠에 빠진 도시. 이파리를 다 떨구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가로수, 낡고 남루한 외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들, 차갑지만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가로등. 어쩌면 작가는 사라지는 것들을 대하는 아쉬움과 먹먹함 때문에 차마 벌건 대낮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 사진들은 순간 포착한 이미지가 아니다. 수백 분의 일, 심지어 수천 분의 일 속도로 순간적으로 열렸다 닫히는 카메라 셔터로 찍은 것이 아니다. 카메라를 세워놓고 장 노출로 서서히 조금씩 (가로등) 불빛을 모아서 기록한 광경이다. 섬광처럼 밝은 하이라이트와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풍부한 중간 회색 톤은 흑백사진 특유의 맛과 멋을 자아낸다.


작가 김동욱은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홍익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오랫동안 신문사 사진기자로도 일했다. 1995년 첫 개인전은 ‘농민 : 또 다른 백 년을 기다리며’, 남녘땅에서 일하는 ‘사람들’, 동학의 후예를 모델로 삼았다. 이후 약 10년 동안 ‘강산무진(江山無盡)’ 시리즈에 천착했다. 역시 흑백사진으로 조선 진경시대 대표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그림의 발자취를 좇았다. 이 시리즈는 사진으로 재해석한 ‘현대적 진경산수화’였다. 사라지는 근대도시 서울의 흔적을 기록하는 김동욱의 최근작은 인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진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저작권자ⓒ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주요기사

+

포토뉴스